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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se Dec 02. 2015

피메아나카스의 환영

[일상의 틈에서 잠시 바라보다 #6]


  그러니까 작년 겨울 어느 날, 그는 캄보디아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 우뚝 속은 피메아나카스 신전을 오르는 중이었다. 그는 그 자신조차도 그 날 먼 이국땅에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

  그의 연인에게조차 알리지 않은 여행이었다. 그곳으로 간 이유가 딱히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원래는 그의 선배가 학회 학술 기행의 일환으로 떠나기로 되어 있었는데, 비용을 모두 지불한 상태인데다 환불도 어려워 대신 그에게 연락이 왔던 것이다. 연락을 받은 그는 캄보디아를 떠올려 보았다. 뜨거운 태양과 흙먼지를 날리며 달리는 버스가 떠올랐다.  그때 한국은 곳곳에서 한파로 인한 피해가 속출할 만큼 추운 겨울이었다. 그리고 얼마 전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코트 앞섬을 여미며 뒤돌아서서 사람들 사이로 사라진 그의 연인을 떠올렸다. 그녀의 표정은 도시에 닥친 추위보다도 더 차가워 보였다. 그러자 불현듯 추위가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게 다가왔다. 


  “나는 시골에서 살았으면 좋겠어. 조용하잖아. 도시의 삶은 어쩐지 갑갑해. 아니,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당연히 그런 게 아니라, 여기 서울은 이상하게 아프게 해. 내가 자주 아픈 것도 서울이어서 그런 지도 몰라."

 

  평소 그의 연인은 가끔씩 그에게 도시 혹은 시골 중 어디에서 살고 싶은지를 묻곤 했다. 그는 도시에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것도 아파트 단지나 주택이 아닌, 커다란 주상복합 아파트처럼 철저히 단절된 그곳에서. 그러면 그녀는 전원생활이 꿈이라고 말했다. 


  “거기에서 그냥 그림을 그렸으면 좋겠어.” 


  그녀는 조용한 곳에서 자연과 숨 쉬고 대화하며 살아가기를 바랐다. 그는 미술 전공인 그녀와 썩 잘 어울리는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생활을 꿈으로 가져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와 그녀는 동경하는 삶이 서로 달랐다, 어쩌면. 


  *

  그와 그녀는 꽤 오랜 시간을 알고 지냈지만 정작 알고 있는 것은 몇 가지 되지 않았다. 그것도 아주 피상적인 것들뿐이었다. 농촌을 좋아한다거나, 도시에서 살고 싶다거나, 몇 사람을 사귀어 본 경험이 있다거나, 좋아하는 옷의 스타일은 어떤 것이며, 몇 개의 향수를 갖고 있다거나 하는 것들. 그러나 그들은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이런 것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 너머의 것들에 대한 호기심으로 팔딱거렸다. 

  그건 그들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몇 명의 가수가 있다고 해서, 그들의 음악적 취향이 같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공통적일지언정 좋아하는 이유가 다를 수가 있고, 또한 그것마저 같다고 하더라도 그 이외에 좋아하는 가수들이 다르다면 그들의 취향이 꼭 같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니까 그들이 궁금했던 것은 바로 그 부분이었다. 서로가 공통적으로 좋아한다고 말했던 바로 그 가수가 아닌, 그 외의 가수들. 그들이 알고 있는 서로에 대한 사실들 이외의 것들, 그리고 그것들이 내포하고 있는 무한한 변칙적인 가능성들. 마음 깊은 곳에 내재한 욕망의 덩어리. 그게 늘 그와 그녀를 숨 막히게 했다. 


  “사람의 욕망이란 거 이해하잖아? 네 안에도 분명히 있어. 새로운 것에 대한 욕망, 사귀어보지 않은 새로운 사람에 대한 욕망. 그런 가능성 자체를 만들고 싶지 않아. 그런데 그게 가능하겠어?" 


  “나는 사람 따위 믿지 않아. 너도 네 안을  들여다봐. 말로는 믿는다, 이해한다, 고 내뱉지. 그런데 정말 그래? 어떻게 나 자신이 아닌 사람을 믿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어? 그러니까 너를 믿으라고, 나를 이해할 수 있다고, 그런  말해 봐야 소용없어."  


  늘 반복되는 대화였다. 그는 그녀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도 그녀와 같은 생각을 하곤 하니까. 그런 그녀의 믿음을 저버려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문제를 먼저 제기한 것이 그녀였기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늘 약속하는 것은 그였다. 이러면 되겠어? 저러면 되겠어? 그녀가 신경 쓰일 모임자리는 애초에 거절했고, 혹 그녀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는 지인이 있으면 연락을 끊어버렸다. 그럼에도 그녀는 늘 힘들어했고, 누군가와의 관계를 지속시키는 일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너 자신을 속이지 마. 나에 대한 마음이 한결같을 거라고? 참지 마. 속으로는 그렇지 않으면서 참아내는 모습을 보는 게 더 힘들어." 


  그녀는 그를 조소하듯 그의 눈을 피해 다른 누군가를 만나거나, 그가 보는 앞에서 그녀가 처음 그를 만나 그의 마음을 끌기 위해 했던 행동들을 다른 이에게 서슴없이 했다. 그러면 그는 질끈 눈 감아버렸다. 그 스스로도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태어나서 만난 그 누구보다도 그녀를 사랑해서? 아니, 그렇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그의 머릿속에는 딱 한 단어만 남아있었던 것 같다. 약속. 그녀에게 했던 약속과 그것을 지켜야만 한다는 무의식. 

  그러는 동안 그녀는 그를 떠나고 또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그녀는 그를 조소하거나 믿지 않으면서도 정작 완벽히 떠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가 완전히 지쳐 마음을 접고 체념할 즈음이면 다시 돌아와 말했다. 나를 떠나지 마. 그런 과정이 반복될수록 그와 그녀의 삶은 비정상적으로 뒤틀려버렸다. 서로에 대한 욕망과 그 욕망의 좌절에 대한 불안감만 더욱 팽팽해졌다. 

  하지만 그렇게 평생을 살 수는 없었다. 이번에는 그가 그녀를 떠났다. 그 결심의 시작이 바로 캄보디아 행이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결심한 여행이 부담이 되었는지, 아니면 캄보디아의 여러 환경이 맞지 않았는지 그는 몸살로 침대에서 일어나기는커녕,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결국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는 것은 어렵다는 결론을 내리고 다른 사람들은 먼저 이동하고, 그는 몸이 나아지는 대로 출발해 합류하기로 했다. 

  그는 열 때문에 깨어 있긴 해도 깨어 있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눈은 부은 것처럼 잘 떠지지 않았고, 몸의 부피를 느낄 수가 없었다. 

  잠을 자는 동안에 곳곳을 누비고 다녔다. 전혀 가본 적도 없는 사막 한 가운데에 있기도 했고, 어느 가을날의 바람처럼 고궁 담벼락 옆을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그가 태어나기 훨씬 이전에 이 세상에 존재했던 자들의 목소리를 듣거나 혹은 휑한 도시를 홀로 거닐기도 했다. 그녀가 있기도 했고, 아니,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도 늘 그녀에 대한 생각이 따라다니고 있었다. 


  *

  그가 간신히 정신을 차린 것은 정오가 조금 지나서였다. 내가 그의 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는 멍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내가 남아 그와 함께 움직이기로 한 것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나는 자주 캄보디아를 다녀가곤 했고, 따라서 이곳 사정을 그나마 잘 아는 내가 그를 챙기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일행들과 합류하는 것도 중요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몸살로 침대에만 누워 있던 그가 안쓰럽게 생각되었다. 그래서 그의 몸 상태를 확인한 뒤, 봐 두면 좋을 만한 곳으로 그를 끌고 다녔다. 그리고 그는 말없이 나를 따라다녔다. 몸이 제 상태로 돌아오려면 더 시간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그를 데려간 곳은 피메아나카스 신전이었다. 

  원래 이 신전은 소마 공주의 궁전이었다. 소마 공주는 낮에는 뱀의 모습을 하고, 밤에는 사람의 모습을 했는데, 매일 밤 크메르 왕과 동침을 했다고 한다. 이 시간은 왕비도 첩도 어쩌지 못했다고 한다. 이를 거역하면 왕에게 죽음을 내렸으므로. 


  “이 이야기는 매우 잘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중국의 주달관이라는 사람이 기록 한 내용이라 여러 곳에 잘 알려져 있지요. 그런데,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소마 공주와 관련된 이야기지요." 


  나는 그에게 소마 공주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를해주었다. 

  소마가 살기 시작한 훨씬 이전에, 이 신전에는 뱀의 왕이 살았다. 뱀의 왕은 머리가 아홉 개였다. 그는 달의 여신을 사랑했는데, 그래서 달의 여신에게 사랑을 받아달라고 오래도록 구애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달의 여신이 뱀의 왕을 찾아와 역정을 냈다. 너처럼 머리가 아홉 개나 달린 추한 모습을 하고 어떻게 나를 사랑한다고 하느냐. 그러자 그 말을 들은 뱀의 왕이 대답했다. 그럼, 제가 머리를 하나만 남겨두고 모두 없애면 당신은 나를 받아주시겠습니까? 달의 여신은 그러겠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뱀의 왕은 신전의 계단을 힘겹게 오르며 자신의 머리를 하나 씩 하나 씩 찢어버렸다. 그리하여 단 하 나의 머리만 남게 된 것이다. 여기에 감동받은 달의 여신은 뱀의 왕과 결혼을 했고, 둘 사이에는 아이가 생겼다. 그게 바로 소마 공주이다. 

  그는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신전을 올려다보았다. 신전 꼭대기로 이어진 계단은 가파른 경사로 위태위태해 보였다. 그는 신전에 오르려 했다. 내가 아직 열이 있는데 괜찮겠냐고 묻자 그는 괜찮다고 말하고 신전 꼭대기로 향했다. 그는 붉은 정기는 둘째 치더라도 이야기 때문에라도 올라가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럼 조심히 올라갔다 내려오라고 말했다.  그동안 먼저 간 사람들과 통화를 할 생각이었다. 그는 염려 말라고 말했다.

  한 발씩 조심조심 내디딘 끝에 그는 신전의 꼭대기에 올랐다. 앙코르 툼의 주변 광경들이 눈에 들어왔고 시원한 바람이 얼굴을 씻고 지났다. 그는 조심스럽게 올라온 계단을 내려다보았다. 달의 여신은 자신의 얼굴을 하나씩 자르면서 계단을 올라 자신에게 구애하는 뱀의 왕을 어떤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었을까. 자신의 머리를 하나만 남기고 다 자른 뱀의 왕은 확신이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일시적인 욕망에 자기를 모두 던져버린 것일까. 그런 후에 다 떨어진 자신의 머리를 보며 후회하지는 않았을까? 후회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결과에 순응하고만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며 아래를 내려다보다 순간 아찔해져서 난간 귀퉁이를 재빨리 잡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일까. 신전 꼭대기를 향해 계단으로 힘겹게, 피 흘리며 올라오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는 힘겹게 계단을 오르는 그녀에게 조용히 말했다.

  너는  온몸이 상처투성이인데도 웃고 있어. 우리는 무엇 때문에 그렇게 서로를 향해 힘겹게 올랐던 것일까. 어떤 확신 때문에? 아니면 서로에 대한 순간적인 욕망 때문에? 그것도 아니면 이젠 더 이상 어찌할 수 없어서 모든 것에 순응해버린 건가? 

  그러는데 문득, 어쩌면 그녀는 그에게 계속 고백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자신을 그 자체를, 자신의 나약하거나 혹은 거짓되거나 부정적인 모습을 그에게 모두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다음에 하나씩 잘라내며, 한 걸음, 한 걸음, 숨기거나 그게 당연한 거니 어쩔 수 없다는 식의 가면을 모두 잘라내고, 그렇게 그에게 다가오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럼 그는 어떻게 했는가.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해 무엇을 했는가. 늘 조바심만 냈는지도 모르겠다. 그가 뱀의 왕의 입장이었다면 순순히 머리를 잘랐을까. 그 고통을 견디며, 단 하나의 머리만 남긴 채 나머지 머리를 모두 잘라냈더라도 달의 여신이 약속을 어길지 모르는데, 그는 과연 그의 머리들을 잘라낼 수 있었을까. 단지 하나의 머리 뒤로 나머지 머리들을 숨기기만 하지는 않았을까. 때로는 확실하지 않은 것을 위해서도 자신이 가진 여덟 개의 머리를 자르고 앞으로 향해야 하는 것이 삶인지도 모른다. 

  갑자기 길을 잃은 것만 같았다. 생각해온 모든 것이 흐려지고, 어디로 흘러가 야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현기증이 일어 신전 꼭대기 석문에 기대어 한참을 앉아 있다가 간신히 아래로 내려왔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많은 것이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계단을 내려오는 내내 그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

  그리고 그는 이 모든 이야기를 지난달에 일부러 찾아와 내게 해주었다. 

  나는 수화기로 넘어오는 그의 이름을 듣고 누구인지 몰라 당황하다 늦게야 알아챘다. 그는 무작정 한 번 만나자고 했다. 적당한 친분을 가진 사람과의 사적인 자리를 피하는 편인 나는 그 만남이 불편해 거절하려고 했다. 그러나 통사정을 하는 바람에 결국 그 날 밤 자리를 갖게 되었다.

  사무실 근처에서 만난 그는 이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더니, 이야기 끝에 가방에서 무엇인가를 꺼내 내게 주었다. 바로 청첩장이었다. 그러니까……


  “그 이야기의 주인공인 그 분과 결혼을 하게 되었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나는 그의 잔에 술을 채우며 다시 물었다.


  “그런데 아직도 저는 어리둥절할 따름입니다. 그 일이 저를 찾아올 만한 일인가 싶어서요.”


  “만약 그 여행을 하는 동안 저를 혼자 남겨두었더라면, 아니 그곳에 저를 데리고 가지 않으셨더라면, 이런 결말은 맞이할 수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지요? 내가 선택하는 것들이 특정한 미래를 불러오는 거라면, 정말 좋은 선택을 해주셨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나는 다시 그에게 물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어쨌든 잘 된 일이라는 거지요?”


  그러자 그가 웃으며 대답했다. 네……


  “잘 된 일입니다.”


  그가 술잔을 들며 대답했고, 우리는 결혼을 축하하며 그 술을 단숨에 마셔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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