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으로 남은 공간 #1]
내가 기억하는 선술집이 하나 있다. 여러 종류의 어묵과 정종을 파는 가게였다. 밖에서 볼 때에는 여느 술집과 별반 다를 게 없지만, 한 번이라도 가게에 가본 사람이라면 그 유별난 분위기를 잊지 못해 다시 찾고는 했다. 그것은 주인의 유별난 성격 때문이기도 했다. 주인은 열고 싶을 때 가게를 열고, 또 그런 때에도 안주를 준비해 놓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손님들이 안주를 좀 만들어달라고 통사정을 해도 귀찮다며 국물만 조금 끓여서 내줄 뿐이었다. 상호가 엄연히 ‘오뎅가게’인데도, 오뎅을 먹을 수 있는 날은 별로 없었던 거다. 아주 가끔 부글부글 끓는 국물 속에 어묵 꼬치들이 가득 차 있는 날이 있기도 했다. 사람들은 놀라면서 웬일로 제대로 장사를 하느냐고 물었다. 그럼 주인 말이 더 가관이었다.
“오뎅가게에서 오뎅을 파는데 그게 이상하냐?”
가게를 찾은 손님들은 서로 쉽게 친해졌다. 가게가 비좁은 탓에 다닥다닥 붙어 앉은 영향도 있겠지만, 손님들을 보면 말을 걸고 아는 체하고 싶어 하는 주인의 성격 때문이기도 했다. 새벽 즈음에는 가게에서 노래판이 벌어지기 일쑤였다. 요즘의 호프집과는 다른 분위기인 것이다. 그런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그곳에 들를 때면 무거웠던 마음이 괜히 가벼워지는 듯 여겨지곤 했었지.
그 술집 이야기를 길게 하는 이유는 그곳에서 겪은 어떤 일 때문이다. 나는 모든 일에는 저마다의 이유가 있다고 여기는 편이다. 다시 말해, 아무 이유 없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는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오래전 그날 내가 가게를 찾은 것도, 그리고 가게에서 어떤 것을 목격한 것도 그 말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그날 오후, 나는 강남역 중앙차로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 밤샘 작업을 한 터라 제정신이 아니었다. 비몽사몽인 상태로 서 있는데, 내 앞쪽에 서서 버스를 기다리던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한참 그 여자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순간이지만 여자가 잠시 몸을 비튼 사이 나는 그녀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녀의 얼굴을 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언뜻 스쳐 지나며 봤을 뿐인데, 내가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정신이 든 게 아니라 밀려들던 잠보다 훨씬 달콤하고 치명적인 기운에 일순간 취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르는 버스 위에, 그녀를 따라, 재빨리 올라탔으니까.
여자는 나를 보지 못한 듯했다. 동행자가 한 명 있었는데, 대화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여자를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힐끗 곁눈질만 했을 뿐이다. 사실 그 순간까지도 나는 내가 쫓고 있는 사람이 내가 아는 사람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했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본 게 벌써 몇 해 전이었다. 만약 대상이 다른 사람이었다면, ‘누구 아닙니까?’라고 물어봤겠지만, 그녀에게만은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예전에 그녀와 나는 자주 만나 함께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거나, 아니면 찻집에 앉아 느긋하게 책이나 내가 쓴 소설들을 읽은 후 토론하곤 했다. 음악을 함께 듣기도 했는데, 당시 그녀는 Keren Ann의 <Not Going Anywhere>를 유독 즐겨 들었다. 연인 사이였던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그런 식으로 나름의 우정을 쌓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모두 남 몰래 연애하는 거라 했고,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애써 부정하곤 했다. 하지만 지금 고백건대 내 심정이 과연 말과 같았을까. 스스로 인정하고 또 상대에게 확인한 사실만 없을 뿐이지, 내 마음도 주변 사람들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는 않았으리라.
“파란 피를 갖고 싶어.”
그녀는 종종 입버릇처럼 중얼거리곤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손목을 만지작거렸다. 그 길고 하얀 손목에는 선홍색 상처 자국이 옅게 남아 있었다. 내가 모르는 그녀의 시간에 남은 상처였다. 그녀가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가까스로 화제를 돌리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바람이 많이 불던 어떤 날엔 유난히 말 돌릴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 무심코 묻고 말았다. 대체 그 파랗다는 게 어떤 거야?라고.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게 있어. 어스름히 어둠이 찾아올 무렵을 말하는 거래. 왜 그런 때 있잖아. 낮이었는데 갑자기 어두워지는 그 사이의 순간. 그 시간에 옆 마을로 놀러 갔던 개들이 돌아오는데, 그 개들 사이에 늑대가 숨어 들어온다는 거야. 그래서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고 부른대. 그때의 하늘은 어둡고, 세상은 아주 짙은 푸른빛 기운이 감돌지. 사물의 경계가 흐릿해져 개인지 늑대인지 구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그때 직감했어야 했다. 그녀가 어느 저녁에 푸른빛을 따라 사라질 거라는 사실을. 만약 그랬다면 혼자 남겨진 자리에서 좀 더 다부지게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친구들은 나를 위로한답시고 전화를 해서 어떻게 우리에게 이럴 수 있냐는 말만 되풀이했고, 나는 나대로 한 달 가까운 시간을 폭음으로 보냈다. 그렇게 해야만 그녀가 갑자기 사라진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그 어디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았고, 시간은 그렇게 흘러가버렸다.
어느덧 버스가 종로 2가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그녀 일행이 내리는 것을 보고, 나도 허겁지겁 버스에서 뛰어내렸다. 거리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횡단보도 앞에 서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사이, 잠시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그녀가 짧게 나를 돌아봤다. 그러나 나는 뒤돌아본 그녀의 시선을 온전히 받아낼 자신이 없어, 외면해버리고 말았다.
신호가 파란불로 바뀌었고, 나는 몇 발짝 간격을 두고 그녀를 뒤따랐다. 도대체 뭘 어쩌려고 그러는지 나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지도, 다 관두고 돌아서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녀의 눈치를 보며 따라가기만 하던 어느 순간, 날카롭게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이 있었다. 마치 살이 베인 것처럼 아려서 얼굴을 쓰다듬었다. 그것은 막 나무에서 떨어진 잎사귀였다. 그런 일이야 예사로 일어나는 일 아닌가. 그런데 그날은 별안간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음습한 기운이 차올랐다. 달력의 숫자가 아닌, 내 몸과 마음의 가을은 바로 그 순간 시작되었던 것이다.
내가 걸음을 늦춘 사이, 그녀가 입고 있던 초록빛 원피스가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고 있었다. 뛰어 쫓아가려다 그 자리에 우뚝 서고 말았다. 문득, 그냥 그걸로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버둥을 쳐도 움켜쥘 수 없는 게 있다는 것을 알만 한 나이인 것이다. 한참 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하고 멍하게 있다, 결국 나는 ‘오뎅가게’로 발걸음을 돌렸다.
가게에 도착한 것은 꽤나 어둑해진 시각이었다. 나는 창가 구석진 곳에 홀로 앉아 말없이 소주만 들이켰고, 드문드문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저 먼 곳의 고산지대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거나, 빛바랜 시간 저 귀퉁이에서 우산 없이 비를 맞고 있던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였을 것이다. 술자리라는 것이 보통 그렇듯, 그 자리에서도 꽤 많은 사람들과 시간들과 사건들이 테이블 사이를 넘나들고 있었다.
여러 생각에 빠져 소주만 들이키는 사이, 사람들이 하나 둘 가게를 떠나 남은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중앙 바에서 국물이 끓으며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남은 이들의 대화는 드문드문 간신히 맥을 이어가고 있었다. 왁자지껄 떠들던 사람들의 대화와 노랫소리가 사리진 자리에 침묵이 무겁게 들어앉았다. 술을 마셔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그 자리에 다른 무엇인가가 들어와 차 있는 것 같았다. 함께 앉아 있던 사람들 각자의 지나간 시간 따위가 찾아온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마시고, 또 그러다 화장실에 다녀오는 사이,
나는 오래도록 길을 읽고 먹먹한 표정으로 헤매고 있던 게 분명하다.
화장실에 다녀와 확인한 휴대폰 액정에는, 길을 읽고 헤매던 여행자의 눈앞에 나타난 이정표처럼 발신번호 하나가 찍혀 있었다. 나는 머뭇거리다 휴대폰 버튼을 눌렀다.
잠시 뒤,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와 대답하는 내 목소리.
그녀에게 지금의 안부를 묻는 것만도 고역이었다. 그녀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고 해서 그 이상 뭘 어쩌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불과 몇 년의 시간이 관계와 기억 그리고 의문들마저 흐릿하게 뭉개 놓았던 것이다. 때문에 오래전 그녀가 떠난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바로 그 날 낮에 강남역에서 버스를 타고 종로 2가로 가던 것이 그녀였는지 따위는 묻지 않았다. 다만 그 순간 들려오던 목소리를 통해 그냥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안심이었다. 그녀를 떠올릴 때마다 어쩐지 그녀와 그녀 손목의 선홍색 상처가 함께 떠올라, 차라리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생각을 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던 것이다. 얼마간의 시간이 흘러 내가 통화를 끝냈을 때에는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눈시울이 붉어지듯 메마른 도시의 골목골목이 천천히 젖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 다들 불콰한 얼굴로 앉아 국물이 말라붙은 빈 접시만 쳐다보고 있는데, 내 앞에 앉아 있던 어떤 손님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혼자 와서 소주를 마시던 여인이었는데, 내내 말없이 앉아 있더니 돌연 기타를 달라고 했다. 노래가 시작되었다. 그런데! 그 손님의 입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는 그녀와 내가 종종 들었던 바로 그 노래, <Not Going Anywhere>였다. 가는 목소리가 스멀스멀 빠져나와 우리를 짓누르던 공기 사이로 스며들었다.
그래. 가끔은 이런 때도 있는 거다. 꿈처럼, 그리고 푸른빛이 충만한 어느 저녁의 이야기처럼, 갈피를 잡지 못하고 서성이는 내 앞에 불현듯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들을 목격하기도 하는 거다. 나는 열병에 걸린 사람처럼 그 순간을 잊지 못해 현실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또 한참을 지켜보기만 하며 서 있겠지. 지난 시절의 나 혹은 타자들이 어느 골목길에서 비 맞으며 서 있었듯이.
나는 망연히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빗줄기가 거세졌다. 찬바람이 머금은 물기가 느릿하게 흐르던 시간과 사람들의 목소리와 뒤엉켰다. 문득 비 오는 골목으로 뛰쳐나가 지나가는 아무나 붙잡고 사랑을 구걸하고 싶어졌다.
그러는데, 가게 밖 노란 가로등 아래, 누군가를 기다리며 비를 맞는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우두커니 서 있는 게 보였다. 자세히 쳐다보니 그것은 오래전 그녀가 떠난 빈자리를 견디지 못해 정처 없이 배회하던 나였다. 어쩌면 서울 한복판에서 그녀의 모습을 본 것도, 종로 한 가운데서 낙엽과 만난 것도, 그리하여 이 가게에까지 찾아와 그녀가 좋아했던 노래를 듣게 된 것 모두 이 순간을 맞이하기 위해서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말없이 고개만 연신 끄덕이다 창밖 어둠 속에 서 있는 그를 향해 조용히 잔을 들었다. 그러자 그가 시간 저편으로 말없이 떠나갔다.
* 일본말인 '오뎅'이 아닌 '어묵'으로 표기하는 게 맞겠지만, 실제 상호가 '오뎅가게'였던 것을 감안하여 그대로 표기하였다.
* '오뎅가게'는 이미 몇 년 전에 폐업했다. 얼마 전 우연히 그 근처를 지나며 보니, 지금은 다른 가게가 영업 중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오뎅가게'의 실내 풍경과 만난 사람들과 겪은 일들과 그곳에 앉아 정종을 마시던 순간의 감정들을 기억해낼 수 있었다. 물론 모든 기억이 그렇듯 이 기억들이 전부 사실이라고는 확신할 수 없다. 다만, 그 공간이 있어 마음을 위로받았던 시간이 있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