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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톡톡부부 Jun 11. 2020

01. 톡톡포즈의 탄생

코타키나발루, 말레이시아

전 세계를 누비며 각 나라의 랜드마크, 아름다운 자연, 알 수 없는 곳 등 다양한 장소에서 같은 포즈를 찍으며 사진으로 남긴다. 훗날 여행이 끝나고 사진을 보면서 남들은 느낄 수 없는 우리만의 추억으로 길고 길었던 여행을 회상하기 위해서다. 말은 거창하지만 이 유치한 일을 우리가 해냈다. 한창 여행 붐이 불던 2016년에는 같은 포즈로 장소만 바뀌면서 사진을 찍으며 여행을 하는 게 유행이었다. 막연히 우리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지금까지 찍은 톡톡포즈의 사진을 모와 보니 400장이 넘는다.


1,171일 톡톡부부 세계여행의 서막은 말레이시아 사바주의 주도인 코타키나발루로 갔다. 이 곳을 선택한 이유는 단순하고 간단했다. 아내와 술 한잔하며 세계여행의 첫 여행지로 어디가 좋을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우연히 핸드폰에서 들린 노래 가사가 우릴 사로잡았다. 매력적인 보이스를 가진 가수 10cm의 아프리카 청춘이다 노래 가사를 따라 부르다가 서로 눈이 마주쳤다. 700글자가 넘는 노래 가사 중 ‘코타키나발루 좋. 겠. 다.’라는 부분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일단 생각하면 질러버리는 성격 덕분에 바로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행 항공권을 예매했고, 첫 여행지가 단순하면서도 황당하게 결정되었다.


겸사겸사 결혼부터 직장생활까지 그동안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세계 3대 석양이라고 불리는 탄중아루가 있는 그곳,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그곳. 아내보다 2개월 먼저 퇴사한 나는 첫 여행지인 코타키나발루의 여행 정보를 수집했다. 숙소, 맛집, 관광, 환전 등 한여름 피서를 떠나는 것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준비했다. 일정도 넉넉히 9박 10일. 언제 마침표가 찍힐지 모르는 긴 여행, 시작부터 고단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휴양지 중 가장 만만하다고 느낀 코타키나발루로 선택했다. 그해 여름에는 곧 세계여행을 간다는 이유로 제대로 휴가도 가지 않았기에 휴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마다가스카르, 바오밥
볼리비아, 우유니

약 5시간의 비행기 이동 끝에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는 대한민국을 뒤로하고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에 도착했다. 해외여행은 결혼 전 필리핀, 신혼여행으로 간 멕시코 칸쿤, 결혼 후 일본까지 딱 3번이 전부인 우리는 모든 게 신기하고 새로웠다. 이곳에 살고 있는 말레이시아 사람들부터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나는 습한 동남아의 날씨, 향신료가 강한 음식까지 낯설지만 곧 익숙해질 모습들이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미리 알아본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계획했던 일정대로 움직였다. 코타키나발루에 10일을 여행하는 동안 숙소를 3번이나 옮겼다. 편하게 휴식을 취하러 갔으면서 왜 3번이나 옮겼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여행 경비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경비가 넉넉하다면 좋은 곳에서만 묵으면 되지만, 앞으로 어디에서 어떻게 지출될지 모르는 정해진 액수에 저렴한 호텔과 고급 리조트를 번갈아 가면 움직여야만 했다. 세 곳의 숙소 중 두 번째 숙소는 신혼여행지로 많이 찾는 고급 리조트였는데, 리조트 내에서만 생활했고 따로 외출을 하지 않았다. 리조트가 워낙 넓어서 생활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고, 바로 앞에는 탄중아루 해변이 있어서 석양을 감상하기도 좋은 곳이었다.


지상 낙원이라고 했던가. 신혼여행 이후로 처음 느껴보는 고급 시설에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모르겠다. 여행에는 정답이 없다고는 하지만, 리조트 시설을 누리며 이렇게 쉬고 있는 게 잘하고 있는 여행인가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배고프면 밥 먹고, 더우면 수영하고,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남들이 흔히 말하는 호캉스를 제대로 즐기고 있었다. 여행 시작한 지 이제 갓 일주일도 안된 배낭여행자들이 앞으로 어떤 사건, 사고가 생길지 염두하지 않은 채 지금을 즐기고 있었다. ‘가족, 친구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하고 놀아도 되나?’ 죄책감이 들기가 무섭게, 될 대로 되라며 그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으니 지금 이 순간만큼은 우리에게 주는 작은 보상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첫 톡톡포즈)

우스꽝스럽지만 강렬한 톡톡포즈는 이곳, 코타키나발루에서 처음 생겼는데, 사진이라고는 셀카도 싫어하는 내가 삼각대를 설치하고 구도를 잡으며 카메라를 만지고 있는 모습이 여간 어색하기만 했다. 리조트 내에서 마음 내키는 대로 마음껏 포즈를 잡으며 사진을 찍었다. 다양한 포즈를 찍고 개인 인스타그램에 업로드를 했다. 지인 외에는 아무런 관심도 없겠지만, ‘우리 여행 잘하고 있어요~’라는 안부 목적의 포스팅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우리 포즈가 귀엽고 웃긴다며 잘 어울린다고 덧글을 남겨주셨다. 생각보다 반응이 좋자, 아내와 다짐을 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 혼자 다짐을 했던 것 같다. 세계 방방곡곡을 다니며 이 포즈로 사진을 넘기겠노라고. 그때만 해도 나는 관심병이 가득한 초보 여행자였다. 훗날 관심병은 연예인병으로 도졌을 정도였으니. 누가 보면 인스타그램에 올릴 사진을 찍으러 여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사진에 집착했고, 유독 톡톡포즈에 집착했다.


하지만 톡톡포즈는 남들이 보면 유치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적어도 우리에게는 특별한 포즈이다. 이 포즈로 인해 기쁘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다. 다양한 일이 생긴 애정 가득한 포즈. 톡톡부부의 이름처럼 우연히 만들어진 이 포즈는 전 세계를 누비며 종횡무진했고, 우리를 본 적이 없더라도 이 포즈를 기억하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여행 초반에 톡톡포즈로 찍은 사진을 자주 올렸는데, 가끔 같은 포즈를 하고 찍은 사람들이 해시태그를 하며 자신의 SNS에 업로드하는 일까지 생겼다. 웃기면서도 귀여운 그 포즈로 인해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고 좋아해 줬다.

그리스, 산토리니

지금은 같은 포즈, 다른 장소에서 사진을 찍는다는 게 한물갔지만 유행은 돌고 돌아 제자리에 오지 않는가! 훗날 세계 여행을 하는 사람들에게 또다시 유행되길 바라며.


네팔, 히말라야트래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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