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년간 밴쿠버로 밀려 들어온 이민자, 유학생의 규모는 렌트비 폭등을 만들었다.
이번에 1년 렌트 계약으로 집을 구한 우리는 이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방 2개, 화장실 2개의 콘도. 한국으로 치면 24평 남짓한 아파트로 보면 된다. 이곳에 사는 우리는 아무것도 안 하고 숨만 쉬어도 한 달에 무려 320만 원이 나간다. 게다가 전기, 인터넷 요금은 별도이다.
중국인 리얼터 L을 통해 이 집을 소개받고 뷰잉(계약을 결정하기 전 집을 둘러보는 과정)을 하러 갔다. 신축이라고 느낄 만큼 깨끗한 컨디션과 전 세입자의 미니멀리즘 스타일 홈 데코레이션은 우리 부부를 매료시켰다.
리얼터에게 ”우리는 1년 동안 임대료를 잘 낼 수 있는 세입자입니다. “ 를 증명하는 이런저런 서류를 제출하고 신원 확인을 당한 뒤, 계약서를 작성했다.
반대로 우린 집주인에 대해서 이름 말고는 알 수 있는 정보가 없었고, L만 믿고 진행해야 했다. 첫 계약인만큼 의심과 걱정이 많았던 우리는 구글 검색을 통해 L이 진짜 리얼터라는 것을 확인한 뒤 계약서에 최종 사인을 했다.
이곳으로 이사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우리의 첫 신혼집인 이 공간을 예쁜 가구들로 채우고 꾸미느라 여념이 없다. 그러던 중 며칠 전 L에게 연락이 왔다.
요약하자면 집주인은, 몇 년 전 이 집을 구매할 때 집 내부를 동영상으로만 보았고 이후로도 계속 세를 주었기 때문에 이제껏 집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가 이번 주말에 이곳에 오니 집을 한번 보러 가도 되겠니?
사실 그동안 우리는 베일에 싸인 집주인 J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 부유한 중국인 중년 남성이 아닐까? 이름에서 그런 느낌이 와.
- 아니야 의외로 멋있는 커리어 우먼 언니일지도?
- 숨만 쉬어도 한 달에 320만 원을 번다니 정말 부럽다. 어쩌면 이런 집이 몇 채 더 있을지도 몰라.
안 그래도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는데 why not?
집주인이 오기 하루 전날부터 우리는 구석구석 청소를 했고, 당일 아침 환기를 한번 쫙 시키면서 손님맞이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드디어 집주인을 만났다.
평범하지만 깔끔한 옷차림에, 룰루레몬 크로스백을 맨, 중국인 중년 남성이었다. 화사한 컬러의 니트티셔츠에 심플한 핸드백을 든 아내와 함께였다.
집주인 J는 2006년에 캐나다 수도 오타와에 처음 왔고, 그 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살았다. 현재는 중국 베이징에서 살고 있고, 이 집은 2020년에 구매했다.
- 2020년이면 코로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거래도 어려운 시점 아니었나. 그때 이 분은 과감한 결정을 했구나.
침대 밑에 숨어있던 우리 고양이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도 베이징에 고양이 한 마리와 함께 살고 있다고 했다.
- 그래서 우리 고양이를 받아주셨구나. 펫 디파짓을 후하게 깎아주신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자신의 한 친구가 이 콘도 37층 펜트하우스에 친구가 살고 있어서 지금은 거기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 유유상종이라더니 이 사람들 전부 중국 부유층 아니야?
그는 집을 찬찬히 살펴보면서 일전에 리포트했던 노후된 부분과, 빌트인 가전의 소음은 어떤지, 통풍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등에 대해 L과 우리에게 질문을 하기도 했다.
언젠가 집을 꼭 구매하고 싶은 우리는 집주인 부부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할 일을 마친 그는 필요하면 이메일로 연락하라는 말을 남기고 곧 자리를 떴다.
처음 본 나의 집주인 중국인 아저씨는 마음에 여유가 있어 보였다(물질적인 여유가 있어서일지도 모르겠다) 우릴 보며 자신의 젊은 시절을 떠올리기도 하고, 살면서 불편한 부분은 없는지 묻는 모습에서는 따뜻함마저 느껴졌다.
그를 만나보니 나도 넉넉한 마음의 집주인이 되고 싶어졌다. 20년 뒤에는 우리에게도 집 한 채가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