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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밴쿠버 새댁 Sep 09. 2024

남편의 월급, 어디로 가고 있을까?

신혼부부의 현실 1

올해 여름은 더위가 늦게 찾아온 만큼 떠나기 싫어서 안달이다.


한여름 같은 무더위가 지속되는 9월의 어느 밤, 누워도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남편(B)과 나란히 누워 요즘 느끼는 감정들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왜 이렇게 할 일은 많고, 해야 할 공부가 쌓였으며, 마음은 조급한데,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는지.


이야기 끝에 우리가 내린 결론은, "밴쿠버의 높은 월세 때문에 우리는 심한 압박감을 받고 있다."였다.




최근에 취업에 성공하긴 했지만, 기술직이나 전문직이 아니기 때문에 최저시급에 가까운 임금을 받고 있다. B 역시 일을 하고 있긴 하지만, 무서운 물가를 감당하며 여유 있게 살아갈만한 수준은 아니다. 한 달 꼬박 열심히 일해도 월세와 식비, 그리고 기타 등등의 고정 지출비용이 나가면 빠듯하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나는 월급을 받으면 부부공동계좌에 모두 넣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그러면서 궁금해졌다. B의 월급은 어디 갔지?


난 여태껏 B의 월급에 대해 코치코치 캐물어본 적이 없다. 월급이 나오는 날이면 B는 외식을 하러 가자고 했고, 그날이 우리 부부의 보기 드문 외식데이이다. (이곳 캐나다 밴쿠버는 외식물가가 한국보다 높은데, 팁문화까지 있어 둘이서 한번 외식을 하려면 50불은 기본이다.)


어쨌든 그 외에는 B가 어떻게 돈을 쓰고 있는지 나는 알 수 없었다.


나의 계획을 말하면서 그에게 물어봤다.


- 당신은 월급을 어떻게 쓰고 있어?


- 나.. 카드값도 내고 빚도 갚고 그러지


빚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는 알지 못했다.


- 빚이 얼마나 있는 거야? 이자는 어떻게 돼?


난 결혼한 지 5개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B의 재정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었다. 이자만 한 달에 15만 원가량이 나가고 있었다.


가성비 좋은 코스트코 간편식



B의 대출은 주로 학자금에서 기인했다.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오래전에 독립했고 자기 계발과 공부가 취미이자 일상인 그가 살아가려면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가장 결정적인 것은 캐나다 유학 비용이었다. 2년 과정의 총학비만 거의 5천만 원이다.(미국에 본교가 있는 학교인데, USD가 계속 올랐던 환율 영향도 있다)


B는 나에게 그동안 얘기하지 않은 이유를 털어놨다.


- 내가 만든 빚이니까 내가 갚아야겠다는 생각이었어


곰곰이 생각했다. 신용대출이라 이율이 꽤 높았고, 만기일에도 이 원금을 갚을 수는 없어 보였다. B도 이 부분에 대해선 수긍했다. 그러니 기간을 연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율이 떨어지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내년에도 1년에 15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내야 한다? 그럴 순 없지.


- 내가 돈 보내줄 테니까 오늘 바로 원금상환하자.





이 밤이 우리 부부에게는 큰 전환점이 되었다.

앞으로는 내가 우리 부부의 재정을 관리하는 총무가 되기로 했고, 기본적인 몇 가지 규칙을 정했다.


1) 각자 버는 월급을 모두 공동명의계좌로 넣기

2) 매달 용돈을 받고 그 안에서 개인비용 지출하기

3) 큰 지출이 필요할 때는 상의하기

4) 가계부 작성하기(어릴 때 엄마가 가계부를 쓰던 모습을 많이 봐와서인지 나도 내 가정이 생기면 해보고 싶었던 일이다)


23년 내 생일 / B는 내가 좋아하는 딸기케이크를 미리 주문해두고 유학을 떠났다


연애할 때부터 지금까지도, B는 내가 먹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을 여력이 되는 한 이뤄주는 사람이었다. 본인의 생활도 여유 있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사실 결혼을 결심하고 준비하고 진행하는 동안 니돈 내 돈의 개념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쓰는 돈이 결국 우리의 돈이고, 내가 불필요한 데 돈을 쓸 일이 생기면 그는 나만큼 아까워했다. 우리는 이렇게 점점 가족이 되었다.


이제 우리는 부부로서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돈 관리도 함께, 돈 문제도 함께 해결해 나가기로 했다. 이렇게 알뜰하게 사는 지금의 시간들이 나중에는 다 추억이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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