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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야 Sep 24. 2015

06 취미가 뭐예요?

버스 기사님을 관찰해 본 적이 있나요

누군가 나에게

취미가 뭐예요?


라고 물었을 때, 대답할 것이 필요했다.

특별하게 연주할 줄 아는 악기도 없고, 유난히 책을 많이 읽거나 영화를 많이 보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하는 그 정도가 전부였기 때문에.


그래서 요즘은 나만의 취미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끄적이기 시작했다. 그림을.



그림을 '그린다'는 게 아니라 '끄적인다'라고 쓴 이유는 그린다고 하기엔 너무 볼품없는, 낙서 정도의 수준이기 때문이다.


여행 중에 문득, 내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카메라에 그대로 담는 게 아니라

지금의 내 기분까지 담아서 그림으로 표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기엔 내 그림 실력이 턱없이 부족하니, 연습해 보기로 했다.


컬러링북, 드로잉북 등 미술 관련 도서들도 많지만 나는 나만의 그림체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시작한 건 '오늘의 기사님' 그리기.


매일 출근길에 마을버스를 타는데, 기사님 바로 뒤 대각선 자리, 그러니까 기사님의 모습이 가장 잘 보이는 그 자리가 내 고정석이다.

(그 자리만 등판이 머리까지 받쳐주기 때문에 나는 항상 같은 자리에 앉는다.)

그곳에서 기사님들을 관찰하다 보면

간식을 많이 챙겨 다니시는 기사님도 계시고, 2L짜리 페트병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아주 터프하게 들이켜는 기사님도 계신다.

앞차의 운전에 항상 불만이 가득한 기사님도 계시고, 버스가 다 울리도록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오!"라고 목청껏 인사해 주시는 기사님도 계신다.

똑같은 색의 셔츠라도 기사님마다 소매를 걷어 올리는 모양새도 다르다.


기사님들을 그리면서는 오로지  그분에게만 내 모든 신경을 집중하게 되는데,

그때의 기분이 묘하게 좋다.

20분 남짓의 시간이지만 새로운 사람을, 나 혼자만 알게 된 느낌이 묘하게 좋다.



취미라는 건, '심심할 때 하는 무언가'임과 더불어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것이라고 느꼈다.

앞으로 몇 번이고 취미가 바뀌겠지만,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내 맘에 쏙 드는 일이 되었으면 한다.



내일은 또 다른 기사님이 나를 맞아주시길!




(볼품없지만 올려볼게요. 기사님을 그리기 시작했던 첫 3일의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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