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이 단순히 하나의 음악 장르를 넘어 전 세계적 트렌드로 자리 잡으면서 한국 대중문화의 위상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룹 블랙핑크의 멤버 로제와 세계적인 팝스타 브루노 마스가 협업한 신곡 'APT'는 이처럼 변화된 한국의 문화적 입지를 상징하는 최신 사례다. 이 곡의 성공은 단순히 좋은 음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국 문화의 세계적 위상을 증명하는 상징으로 평가될 수 있다.
과거 한국의 대중들이 가사의 내용은 잘 몰라도 미국의 팝송을 흥얼거리던 시절이 있었다(MAX나 NOW 몇 집 같은 앨범을 들어본 사람들은 공감할 부분이다). 그 '따라 함'에는 음악 자체의 좋음도 있었겠지만 '미국 것이니까'라는 심리적 동경이 깔려 있었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미국의 음악은 그 당시 문화적 선진문물로 여겨졌고, 이를 따라 하는 것은 그 자체로 '힙'(Hip)하다고 해석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는 상황이 역전됐다. 이제 한국 콘텐츠의 영향력은 미국에 뒤처지지 않는다. 그동안 K팝의 글로벌 성공과 한국 영화, 드라마, 문학의 활약으로 한국이 문화 강국으로 성장했음을 성실히 증명해왔다. 'APT'의 성공은 이 연장선상에 있으며, 마침 최근 넷플릭스에서 화제를 모은 오리지널 예능 프로그램 <흑백 요리사>의 성공과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은 이 곡이 폭발하는 데 보이지 않는, 은근한 그러나 단단한 화력이 되어줬을 것이다.
'APT'는 얼핏 듣기엔 단순한 가사를 가진 '훅 송'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들어보면 밴드 사운드는 파트마다 섬세하고 세련된 변화로 기분 좋은 파도를 만든다. 거기에 로제의 매우 독특한 보컬과 그래미상 11회 수상이라는 살아있는 전설인 브루노 마스의 가공할 보컬이 어우러져, 단순함 속에서 오히려 고급스러움과 독창성이 살아나는 시너지를 창출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B급을 가장한 초 S급' 결과물이다. 마치 가수 김범수가 부른 '탕후루 송'과 같이 B급을 S급이 커버할 때 나오는 가공할 만한 역설과 아이러니함이 폭발한다.
또한, 이 곡은 한국 대중음악의 상징적인 계승을 보여준다. 윤수일의 '아파트'가 1980년대 당시 우리 윗세대의 사랑법을 상징하며 아날로그적인 그리움, 망설임, 그리고 미련을 노래하는 구축 아파트였다면, 로제의 'APT'는 포노사피엔스다운 직설적이며 저돌적이고 망설임이 없는 이 시대의 사랑법을 반영하여 마치 신축 아파트처럼 이 세대의 솔직함과 즉각적인 감정 표현을 담아내고 있다.
이 곡은 소셜 미디어에서도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새로운 시대의 '신축 아파트'가 어떤 방식으로 확산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소셜미디어 틱톡(TikTok)과 인스타그램(Instagram)에서는 팬들이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곡에 맞춰 댄스 챌린지와 리액션 영상을 올리며 참여형 콘텐츠를 만들어가고 있다. 특히 직설적이고 단순한 가사가 강렬한 훅으로 기능하면서, 소셜 미디어의 짧은 포맷에 최적화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즉, 'APT'는 듣고 따라 부르기에도 너무나 완벽한 노래이면서도, 그것을 적극적으로 온몸으로 소비하기도 너무나 좋은 입체적 콘텐츠라는 것이다.
거기에 한국에 사는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속으로 아파트 아파트를 외치면서 살고 있지 않나. 아파트를 통한 부동산 재테크야말로, 대한민국 구조 속에서 경제적인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길이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아파트 아파트를 외치는 건 어쩐지 찰떡이다. 이는 'APT'가 단순한 제목이 아니라 한국적 일상과 현실을 건드리면서, 부동산을 통한 소망과 연결되는 메시지를 내포한다고 보는 건 과할까?
이 곡은 단순히 음악 차트의 성공을 넘어선 사회적, 경제적 영향력까지 가지고 있다. 로제가 한국의 대표적인 술 문화 중 하나인 '아파트 게임'을 소재로 노래를 만들고, 직접 칵테일 제조를 소개하는 영상을 올리자 관련 기업의 주가가 급등하는 등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이와 같은 현상은 'APT'가 한국의 대중문화를 글로벌 무대에서 더욱 깊이 있게 홍보하고, 상업적 가치까지 더해주고 있음을 의미한다.
한편 'APT'의 성공은 한국적 정서를 유지하면서도 글로벌 팬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글로컬' 전략의 좋은 예가 되었다. 특히, 로제와 브루노 마스의 보컬은 서로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완벽한 조화를 이루어 내었고, 이를 통해 한국과 서양이 문화적 경계를 넘어 음악적으로 융합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가진다.
마지막으로, 'APT'는 단순히 인기 있는 곡을 넘어 한국과 서양의 문화적 전환을 상징하는 곡으로 볼 수 있다. 한국과 서양 아티스트의 협업이 흔해진 지금도 'APT'는 이 두 세계가 어떻게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갈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한국적이면서도 동시에 세계적인 이 곡이야말로, 오늘날 K팝이 얼마나 큰 문화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지를 증명하고 있다.
실시간으로 '국뽕'이 차오르는 시절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모두가 아파트 아파트를 외칠 때 어쩐지 나는 윤수일의 '아파트'에 흐르는 그 전주가 그립다. 그 시절, 그 지독하게 촌스럽던 낭만이 조금 그립나보다. 하지만 저마다의 방식으로 사랑하고 살아가는 것, 그것이 새로운 아파트와 오래된 아파트가 만나 빚어내는 진정한 울림이자, 우리가 함께 지어나가야 할 보이지 않는 진짜 사람 사는 아파트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