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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키와 May 06. 2023

이별 회고 2

종종 내리쬐는 볕이 너무 좋을 때, 바람에 실린 향기가 달콤할 때, 선선한 공기가 피부에 닿을 때, 

아무 성과나 성취도 없이 지나치게 행복한 날이 있다.


그럴 때.

살아있어서 너무 기쁘고 벅찰 때가 있다.


벅차고 행복한 그때 나는 동시에 두려움을 느낀다.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이다. 행복은 오래가지 않는 반짝이는 무엇인가라는 사실을.


나는 무언가를 사랑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리는 사람이다. 무언가를 갈망하고 원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본인을 표현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인데, 나에게는 도무지 그런 무언가가 없는 것이다.


그 사실에 대한 오랜 방황이 있었다. 


그래서 나는 남들이 갈망하는 무언가를 오랫동안 베껴왔다. 내 욕망을 도무지 찾을 수 없으니 남의 것이라도 잠깐 빌려서 열정적인 삶을 지속하는 것이다. 그것이 현명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스스로 뭘 원하는지 알고, 몰입할 수 있는 사람을 늘 동경해 왔다.

나와 잠시 함께했던 그 친구는 늘 그 점에서 반짝이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는 남자친구와 함께하는 동안 그 반짝임을 예쁘게 지켜주고 싶기도 했고, 빼앗고 싶기도 했다. 아니면 그 친구와 나를 묶어서 그 사람이 희망하는 찬란한 미래에 무임승차하고 싶기도 했다. 


나는 내 것을 찾지 못해서 방황하던 순간에 그 친구를 만나서 잠시나마 내 긴 외로움과 공허함을 채울 수 있었다. 나한테도 드디어 갈망하는 무엇인가가 생긴 것 같은 반짝이는 감정이 생긴 것이다. 오랫동안 길을 헤매다 잠시 앉을 곳을 찾은 기분이었다. 본인 외에는 헌신해 본 적 없는 내가 다른 누군가의 행복을 바라고, 아픔에 공감할 수 있는 그 경험이 더없이 완전했다. 다만 늘 꺼질 듯한 불안감이 찾아오는 순간이 있었다. 


나에게 행복에 대한 주도권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관계에서의 주도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 행복이 너무도 불안정한 요인에서 기인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곧 쉬고 있던 의자에서 일어나서 길을 떠나야 한다는 불안감이었다. 너무 오래 앉아있는 것일까 고민스럽기도 했고, 의자가 으스러져버릴까 고민스럽기도 했다. 


행복이 일시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고, 아무도 태워주지 않는 길을 혼자서 걸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내가 어떤 감정이건, 어떤 목적지로 향하던 상관없이 걸어야 하는 길이 보인다면 무작정 걸어야 하는 사람임을 알고 있다. 


나에게는 그 순간들이 내리쬐는 볕이고, 들꽃 향기가 실린 바람이었고 선선한 가을 공기였다. 내 빈 마음을 짧은 시간이지만 빛나는 동경으로 채워주어 고마웠고 행복했다. 반짝이는 행복을 오랜만에 구경시켜 준 그에게 꼭 힘든 시간을 버텨낼 수 있는 힘을 주고 싶다.


사진은 이별을 고민했던 제주에서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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