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콘으로 읽는 미국 문화] 실리콘밸리 최고의 모델에게 쏟아지는 우려
미국 민간 항공우주 기업 스페이스엑스와 전기자동차 회사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인 일론 머스크는 세계 최고 부자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그가 아이콘이 된 이유는 단순히 돈이 많아서가 아닙니다. 인류를 구할 비전을 보여줬다고 믿고 열광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전기차를 비롯해 우주선이나 태양광 등의 꿈의 기술을 사업으로 성공시켰고 신기술을 개발하는 엔지니어에서 미래를 파는 사업가의 역할까지 해내면서 ‘머스크 신화’을 만들어냈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슈퍼히어로 영화 <아이언맨>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실제 모델로 알려지면서 대중적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아이언맨> 작가 마크 퍼거스는 유머, 지력과 쇼맨십까지 갖춘 일론 머스크에 영감을 받아 토니 스타크 캐릭터를 발전시켰다고 밝혔고 일론 머스크는 <아이언맨 2>에 카메오로 직접 출연도 했습니다.
그는 아이언맨처럼 되고 싶었던 걸까요? 머스크는 마치 슈퍼히어로처럼 지구의 미래를 짊어질 장엄한 프로젝트를 대대적으로 공언합니다. 배기가스 유출을 줄이는 청정에너지를 만들고, 인류 멸종을 막으려 화성 식민지 개척 기술을 선보이겠다고 말입니다.
그는 인류의 미래를 구원할 슈퍼히어로일까요, 아니면 대중을 선동하는 사기꾼일까요? 다가오지도 않은 미래를 가지고 그의 말을 평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암울한 세상보다는 그가 말한 장밋빛 미래의 모습이 멋지게 보이는 건 사실입니다.
일론 머스크의 재력과 영향력이면 무슨 일이든지 가능한 게 자본주의 미국의 현실입니다. 한동안 열기가 식었던 미국의 우주개발도 스페이스엑스로 활기를 되찾았고 전기차와 태양광은 미국의 미래를 책임질 주류 산업으로 떠올랐습니다. 그의 트윗 한마디에 정부 정책이 추진되거나 재고되기도 합니다.
히어로? 사기꾼? 머스크 신화의 양면
일론 머스크는 이민자 출신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 프리토리아에서 1971년에 태어났습니다. 엔지니어였던 아버지 에롤 머스크의 영향을 받아서 어릴 적부터 발명하길 좋아했습니다. 위험한 폭발물을 만지작거리며 책에서 본 로켓을 만드는 건 그가 즐긴 취미 중에 하나였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물건을 만드는 데 만족하지 못하고 직접 팔러 다녔습니다. 그는 동생과 함께 집에서 만든 부활절 초콜릿 달걀을 들고 부자 동네로 가 20배가 넘는 가격에 파는 상술의 귀재였습니다. 12살 때는 코딩을 배워서 슈팅게임 블래스터를 만든 뒤 컴퓨터 잡지에 500달러에 팔기도 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엔지니어와 창업가라는 정체성을 굳건히 지켜나갔습니다. 캐나다를 거쳐 미국에 정착하면서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물리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게 된 것도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테크붐이 불던 실리콘밸리로 가고 싶었던 그는 졸업 후 스탠퍼드 대학 박사과정에 들어갔지만 이틀 만에 자퇴하고 곧바로 스타트업 기업을 창업하며 꿈을 이룹니다.
이후 창업한 기업들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세계 최고의 부자로 등극합니다. 페이팔, 스페이스X, 솔라시티, 테슬라, 트위터 등 누구나 이름만 대면 알만한 테크회사를 창업하거나 인수한 그는 인공지능, 진공튜브열차, 생명공학기업까지 손대며 테크기업계의 거물로 성장합니다.
한편, 질 레포 하버드 대학교 역사학 교수는 ‘머스키즘’이란 신조어를 만들어 우주탐사마저 상품화하는 그의 극단적 자본주의 행적을 비꼬았습니다. 일론 머스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완전자율주행차'는 전형적 대중 우롱 사례로 꼽힙니다. 그는 개발되지도 않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속이며 10년 넘게 테슬라 전기차 홍보에 이용했습니다. '2년후', 혹은 '올해 안에' 완전자율 자동차 기술이 완성될 거라며 무책임한 약속을 남발했습니다.
에드워드 니드마이어 자동차산업 탐사보도 기자가 저서 <테슬라 자동차의 솔직한 이야기>를 통해 일론 머스크의 기술 관련 사기행각을 파헤쳤습니다. 일론 머스크의의 완전자율주행차 거짓말의 역사는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테슬라가 상장 기업이 된 후 몇 년째 주가가 오르지 않자 2013년에 완전자율주행 기술을 선보이겠다는 대대적인 미디어 캠페인을 펼칩니다. 그 후 테슬라 주가가 요동치며 오르기 시작합니다.
테슬라가 완전자율주행 5단계 기술을 보유했다는 일론 머스크의 주장은 2021년에 거짓으로 드러납니다. 테슬라 공학자들이 캘리포니아 주 차량관리국에 밝힌 내용에서 테슬라의 완전자율주행 기술이 올해 안에 실현 가능성이 없는 2단계 수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완전자율주행 기술에 속아서 테슬라를 구매한 고객들이 집단소송에 나섰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테슬라가 완전자율주행(FSD) 베타 기술을 선보인 후에 단 한 건의 사고도 없었다고 말했지만 9개월 동안에 273건의 자율주행 기술 관련 사고가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에 보고되었습니다. 그는 우주개발이나 지하터널 등의 다른 기술도 과장하거나 허위로 지어냈다는 의심을 받고 있습니다.
실리콘밸리 자본주의
“저는 유용한 일을 하고 싶습니다. 여기서 유용하다는 건 사회에 도움이 되는 걸 말합니다. 그건 쓸모 있는 물건을 만들거나,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거나, 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일이죠. 그게 좋은 거 맞잖아요?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야 합니다.” - 일론 머스크, <롤링 스톤> 인터뷰
사회에 도움이 되는 쓸모 있는 일을 하자는 말에 반대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파괴적 혁신’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겠다는 신기술 문화가 실리콘밸리에 꽃피었습니다. 혁신만 잘 해내면 새로운 기회를 얻고 막대한 부를 축적할 수 있다는 믿음이 실리콘밸리 자본주의의 저변에 깔려 있습니다.
기술 유토피아를 꿈꾸는 실리콘밸리는 미국 전체 특허의 15%나 책임지고 있습니다. 닷컴 버블 붕괴를 비롯한 몇 차례 위기를 겪고도 살아남는 놀라운 회복력을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실리콘밸리의 강한 생명력은 기술 혁신과 창업 정신이 합쳐진 조직력으로 빠른 변화를 거듭하는 모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머스크가 평생 고집했던 엔지니어/창업가의 저돌적인 삶과 일치해 보입니다.
2018년 해리스엑스 리서치 설문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3%가 기술이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준다고 믿었습니다. 반면, 이와 다른 여론조사도 있습니다. 악시오스 미디어에 의하면, 2017~2018년 사이에 페이스북(-28%), 아마존(-12%), 구글(-12%), 애플(-10%), 트위터(-7%) 순으로 테크 기업들의 선호도가 급격히 떨어지는 모양새입니다.
대중은 기술을 대체로 신뢰하지만 실리콘밸리의 회사들이 기대치에 못 미치는 활동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겠습니다. 개인 정보보호에 소홀하고, 가짜뉴스가 만연하며, 정치적 편향성 등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습니다.
다른 문제점은 더욱 심각합니다. 실리콘밸리의 빈부격차는 미국 최악 수준으로 2017년 공식 통계에 따르면 샌프란시스코의 노숙자(7499명)가 도시 전체인구의 거의 1%에 해당합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사람까지 포함하면 1만 2000명에 육박할 것이라는 말도 나옵니다.
테크 기업이 번영하면서 실리콘밸리의 집값과 물가를 기하급수적으로 올랐습니다.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룸메이트와 같이 사는 건 그나마 나은 편입니다. <실리콘밸리의 심리학>을 쓴 사회심리학자 캐시 쿡이 인터뷰한 어떤 여성은 실리콘밸리의 고단한 삶을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저도 애플, 에어비앤비 같은 회사에서 일했지만, 높은 월급을 받아도 여기서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줄 아세요? 결국 제 룸메이트는 치솟은 물가를 감당하지 못해서 샌프란스시코 외곽 공원에 텐트치고 살며 출퇴근해요.”
빈부 격차가 늘어나면서 실리콘밸리에서 중산층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것이 실리콘밸리 자본주의가 가져온 삶의 현주소입니다. 기술 산업이 가져온 풍요를 제대로 분배하지 못하고 불행한 사람들도 배려하지 못하는 실리콘밸리의 공동체에서 어떤 미래를 찾을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과학기술이 세상을 구원할까?
환경 파괴, 질병, 빈곤 등 고질적 병폐로 고통받는 사회를 과학기술이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일론 머스크는 그렇게 믿는 것 같습니다. 과학기술자가 정부 통치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테크노크라시 인코퍼레이티드’의 캐나다 지부 리더가 머스크의 외할아버지 조슈아 헤일드만이였습니다. 머스크는 테크노크라시 정부를 화성에 건설하려고 우주선 개발에 박차를 가한다는 내용의 2019년 트윗에 올려 그 찬반조사를 한 바 있습니다.
테크노크라시는 1920년대 대공황기의 혼란스러운 미국 사회를 구할 새로운 해결책으로 과학기술을 요구한 사회문화적 운동이었습니다. 이들은 당시의 비효율적 민주주의가 미국을 망치고 있으니까 이를 대체하려면 전문성을 갖춘 과학기술자 중심으로 사회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테크노크라시는 가격을 결정하는 시장도 부정하고 자본주의 화폐를 대체할 에너지 단위를 고안해서 불평등 문제를 단번에 해결하겠다는 급진적인 아이디어를 내놓았습니다. 산업혁명을 거치며 기계가 인간을 대체하는 일이 늘어났고 효율적인 기계만 잘 설계하면 인류 전체를 먹여 살릴 풍족한 자원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게 테크노크라시의 논리입니다. 기술이 만든 풍요가 도래하면 돈도 필요 없어진다는 겁니다.
테크노크라시는 미국과 캐나다를 중심으로 추종자를 모으면서 영향력을 키웠지만 정치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뉴딜 정책에 밀려 1940년대 이후로 쇠퇴합니다. 테크노크라시 조직이나 운동은 약화했지만, 그 정신은 일론 머스크를 비롯한 실리콘밸리에서 살아남았습니다. 테크노크라시 인코퍼레이티드 창립자 하워드 스콧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나쁜 사회 병리 중의 하나가 바로 직업윤리입니다. 만약 일이 당신에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싶다면, 집에 가서 거울을 보면 지금 당신의 모습이 얼마나 엉망진창인지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일은 기계나 로봇한테 맡기고 인간은 여가나 교육, 예술이나 즐기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테크노크라시 유토피아가 다 알아서 해결해 주겠다는 달콤한 말입니다. 일론 머스크도 2017년 세계정부정상회의에서 비슷한 말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직업에서 의미를 찾습니다. 그렇다면 일할 필요가 없다면 당신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지나요? 그렇다면 그게 더 큰 문제입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현실로 등장하는 요즘에 이보다 더 솔깃한 얘기가 어디 있을까요? 일은 로봇에게 맡기고 인간은 취미 생활하며 자아실현이나 하라니. 그러나 테크노크라시 사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적인 모습이 아닙니다.
잘못된 판단으로 개발된 기술이 인간에 해악을 끼치더라도 이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과학기술자 집단에 집중된 권력을 견제할 민주주의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대중은 엘리트 기술 관료가 통치하는 사회에서 노예처럼 시키는 대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미래는 유토피아가 아니라 ‘디스토피아’입니다.
누구를 위한 미래인가?
일론 마스크는 미래를 파는 실리콘밸리에서 최고의 모델이 되었습니다. 그는 환경오염을 테슬라 전기차와 태양열 발전으로 해결하고, 자원 고갈은 화성 식민지 개척으로 풀고, 교통 문제는 하이퍼루프 열차로 해소하겠다는 매혹적인 미래만 이야기합니다.
구체적 상품으로 개발되고 있긴 하지만 그걸로 복잡한 문제가 다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그는 비전과 현란한 이야기 솜씨로 사람을 홀리는 궁극의 미래주의자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의 말에 공감하는 건 아닙니다. <가디언> 기사에서 테슬라 공장 생산 기술자 조나난 게일스쿠는 침통한 심정을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사람들이 바닥에 쓰러지는 걸 봤어요. 팬케익처럼 철퍼덕 퍼져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는데도 작업장으로 빨리 돌아가서 평소대로 일하라고만 했어요.”
2013년~2016년 테슬라 공장 안전사고 발생률이 업계 평균을 넘어섰습니다. 추가 근무와 높은 사고율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주 6일 12시간 고강도 작업조건에 견디지 못하고 구급차에 실려 나가는 노동자가 늘어나자 머스크는 자신이 직접 공장 바닥에서 자면서 고충을 이해했다는 취지의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테슬라가 청정한 에너지 미래를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머스크는 환경을 살리는 미래를 건설하기 위해 노동자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요.
스페이스엑스에 타려면 5500만 달러(715억 원)가 필요하고 테슬라 모델엑스의 가격은 10만 달러(1억 3000만 원)가 넘습니다. 이쯤 되면 일론 머스크가 말하는 미래는 누구를 위한 건지 대충 짐작이 됩니다. 그의 멋진 신세계에서 서민이나 노동자의 모습을 찾아보긴 어렵습니다. 그가 그토록 신봉하는 테크노크라시 사회에서 과학기술자가 설계한 미래를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은 과연 행복할까요?
그림: 류정화
오마이뉴스에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