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콘으로 읽는 미국 문화] 아메리칸드림 품고 도약한 나이키
글로벌 스포츠용품 브랜드 1위를 지키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보여준 기업은 나이키입니다. 날개가 휙 하며 날아가는 듯한 날렵한 로고만 봐도 알아볼 수 있는 나이키는 팬데믹 위기도 극복하고 높은 매출을 올리며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나이키는 동종 업계 2위 경쟁자 아디다스보다 두 배나 되는 46억 달러의 수익을 내면서 스포츠업계의 문화적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나이키가 문화적 아이콘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단순히 매출이 높아서가 아니라 시대적 흐름을 읽고 그에 맞는 변화를 선도한 기업이었기 때문입니다.
나이키는 스포츠용품 기업으로 출발했지만, 거기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혁신하며 성장했습니다. 러닝화를 캐주얼하게 신는 문화를 주도한 것도 나이키였습니다. 엘리트 선수 중심의 스포츠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대중적 활동으로 바꾼 것도 나이키의 마케팅 전략이었습니다. 시장을 확대해 수익을 내려는 기업의 의도된 전략이었지만 스포츠 문화에 끼친 나이키의 영향력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에어 쿠션 같은 기술 혁신만으로 나이키의 명성과 성공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나이키의 기술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났던 것도 아니었고 아디다스나 푸마, 리복, 아식스 등 스포츠 신발업계가 기술 경쟁에 앞다투어 뛰어들면서 비슷한 수준이 되었습니다. 나이키의 차별점은 제품을 알리는 광고와 마케팅으로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나이키 문화'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나이키 제품을 신거나 입으며 사회적 가치에 동참하고 있다는 감정을 느끼는 소비자가 많습니다. 인종차별, 성차별 등 사회 이슈를 과감하게 광고에 등장시켜 스포츠로 극복하겠다는 메시지를 내세운 나이키의 전략이 먹혀들었습니다. 나이키는 사회적 가치를 충실히 실천하는 기업일까요? 나이키가 추구하는 가치가 광고로 만들어진 허상은 아닐까요?
나이키의 성공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1970-90년대 미국 사회를 살펴봐야 합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최강대국이 되어 그야말로 황금기를 누립니다. 1970년대부터 전쟁에서 회복한 독일, 일본과 다른 신흥 경제 대국이 등장하면서 막강했던 미국 경제가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가난한 이민자도 열심히 일하기만 하면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아메리칸드림'이 무참히 깨집니다.
높은 물가와 폭증하는 실업자로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집니다. 미국이 불경기를 벗어나 다시 일어나려면 새로운 경제와 아메리칸드림이 필요했습니다. 경쟁이 치열해지는 세계 경제에 맞서는 새로운 모델과 도전 정신을 갖춘 강인한 개인주의 시대가 미국에 도래했습니다.
경쟁에 맞서는 강력한 개인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는 스포츠에도 적용이 되었습니다. 미식축구, 야구, 농구 등 주로 관람하는 팀 경기가 인기 있던 미국에 직접 참여하는 달리기가 떠올랐습니다. 개인의 몸과 마음을 쉽게 단련시킬 수 있는 운동으로 조깅이 최고였습니다. 1977년 베스트셀러 <달리기의 완벽 가이드>를 출간한 짐 픽스는 개인의 나태한 생활 습관을 바꾸고 건강을 지키는 최고의 방법으로 조깅을 격찬했습니다.
조깅 붐이 일자 조깅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났습니다. 나이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광고로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기 시작합니다. 나이키 창업자 필 나이트는 오리건대학교 달리기 선수였고, 다른 창립자 빌 바우어만은 그의 트랙 코치였습니다. 그들은 달리기 문화를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달리기는 팀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팬도 별로 없는 외로운 종목이었습니다.
'저스트 두 잇'
세계 경제에서 밀려났다가 다시 도전하는 미국 사회는 의지력으로 무장한 개인을 요구했고 나이키가 광고로 응답했습니다. 1970년대 후반 나이키는 '결승선은 없다'(No Finish Line)라는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거리에서 달리기하는 운동선수가 등장하는 이 광고는 혹독한 개인의 투쟁을 보여줍니다. 마케팅 전문가 더글러스 홀트와 더글러스 캐머런은 <문화적 전략>에서 나이키 광고가 추구하는 정신을 "전투적 개인 의지력" 이데올로기라고 명명했습니다.
나이키는 전투적 개인 의지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 달리기를 추천했고 러닝화를 팔았습니다. 아디다스와 브룩스 등 쟁쟁한 경쟁사를 추월하면서 러닝화 시장의 선두 주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조깅 붐이 꺼지자 위기가 찾아왔고 다른 스포츠 시장에 공격적으로 진출했던 나이키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여성용 에어로빅 운동화로 성공한 리복에 밀려 나이키의 매출은 급격히 떨어졌고 1988년까지 회복하지 못합니다. 전투적 개인 의지력을 강조하는 전략도 버리고 1985년에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과 계약하면서 스타에 의존하는 광고도 시도했지만, 매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1980년대 미국은 레이건 대통령의 신자유주의 질서가 확고해지는 시대였습니다. 기업들은 '효율성'을 강화하며 대량 해고를 단행했고 노동자는 살아남기 위해 악조건 속에서 더 많은 시간을 일해야만 했습니다. 경제적 난관을 타개해야 할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는 문화적 표현으로 나이키의 '저스트 두 잇'(Just Do It, 그냥 하기만 해) 슬로건이 등장합니다.
1988년 첫 광고에서 80세 마라토너 월트 스택이 샌프란시스코 금문교를 묵묵히 뛰며 지나가는 차에 손을 흔들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매일 아침 17마일을 달립니다." 전투적으로 개인을 다져야 하는 시대 정신이 최고령 마라토너의 일상을 통해 표현됩니다. 이 광고 캠페인은 인종, 성별, 나이를 가리지 않고 정신력과 몸을 단련해서 새로운 경쟁적 환경에 도전하라는 메시지를 이어갑니다.
나이키는 인종차별, 성차별, 빈곤 등의 사회문화적 코드까지 광고에서 다루며 신화를 확장했습니다. 1980년대 미국 사회에서 가장 고질적이고 심각한 문제였던 흑인 빈민가는 나이키 광고의 주요 배경이었습니다. 스포츠는 빈민가 흑인이 끔찍한 세계를 탈출해 아메리칸드림을 실현할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나이키는 농구 스타 마이클 조던을 영입하지만 그는 중산층 출신이었습니다. 나이키는 빈민가 흑인 영화를 만드는 스파이크 리 감독을 끌어들여 마이클 조던 신화를 다시 쓰기 시작합니다. 스파이크 리 영화 속 캐릭터 마스 블랙몬이 광고에 등장해서 농구를 명성과 부에 이르는 방법으로 칭송하면서 마이클 조던을 흑인 빈민가 성공 이야기 속에 집어넣습니다. 이 광고 전략은 성공을 거두며 전투적 개인 의지력으로 사회적 장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신화를 미국인에게 심어줍니다.
나이키는 사회적 기업인가?
나이키는 다양한 사회적 장벽을 극복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광고의 소재로 활용하면서 소비자의 감성에 호소하는 전략을 구사합니다. 여성, 장애인, 흑인의 인권을 옹호하는 광고를 내보내면서 사회운동에 참여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나이키는 사회운동에 적극적인 기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나이키는 1995년 광고에서 소녀를 광고 모델로 쓰면서 "저도 스포츠에 참여할 수 있다면"이라는 문구를 사용합니다. 이 캠페인은 남성 중심 스포츠 문화를 비판하면서 여성들에게 더 많은 스포츠 참여의 기회를 열어주자는 주장을 다룹니다. 2018년에 나이키는 미식축구 선수 콜린 캐퍼닉을 광고 모델로 기용하면서 흑인 인권 문제를 제기합니다. 그는 흑인에 대한 경찰 폭력에 저항하는 메시지를 남긴 인물로 유명합니다.
여성 인권을 강조하던 나이키는 1996년 인권 단체의 폭로로 비난받습니다.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의 나이키 하청공장에서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위험한 작업환경 속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 문제가 화제가 되었습니다. 밥 허버트 <뉴욕타임스> 기자는 "나이키 경영진은 신발을 사는 여성과 만드는 여성의 권리를 다르게 보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2018년 <비즈니스인사이더>가 입수한 자료에 의하면 여성 직원에게 섹시하게 옷을 입으라는 둥 사내 성희롱과 성차별 문제를 나이키가 성실하게 다루지 않아서 5000명이 넘는 집단 소송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 대도시에서 나이키 농구화를 노린 절도나 강도, 살인이 발생하자 1990년대 초반에 심각한 사회 문제로 부각되기도 합니다. 나이키의 공격적 마케팅이 아이들 범죄를 부추기지 않았나 하는 비판마저 일었습니다. 1992년 나이키와 마이클 조던은 20만 달러를 시카고 공립학교에 기부했고, 도시 내부 범죄에 대응하는 다양한 스포츠 프로그램에 협조하는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마케팅 전략을 펼친 기업이라면 행동과 실천으로 보여줘야 합니다. 여성, 흑인, 가난한 계층의 이익을 지키기보다 소비자 시장을 확대하는 데 이용했다는 비판에서 나이키가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입니다.
나이키의 철학이 된 '저스트 두 잇'도 진보적 목소리가 아닙니다. 신자유주의 경쟁 사회에서 의지력으로 무장한 개인을 강조할 뿐입니다. 결국 변해야 할 것은 사회가 아니라 개인이라는 소리입니다.
개인의 능력을 극대화하자는 전략은 나이키가 비밀리에 추진한 오리건 프로젝트에도 잘 드러나 있습니다. 나이키는 산소가 희박한 높은 고도의 환경에서 훈련하면 좋은 경기 기록이 나온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조성한 첨단시설에 선수들을 합숙하고 훈련시킵니다.
과도한 양의 진통제와 경기력 향상 약물을 투여해 선수들을 혹사한 사실이 2017년 <뉴욕타임스> 보도로 폭로됩니다. 2019년 미국반도핑기구가 나이키 오리건 프로젝트 총책임자 알레르토 살라자르의 책임을 물으며 4년간 자격정지 조치를 취하면서 활동이 해체되었습니다.
나이키는 초인적 의지력으로 사회적 장벽을 극복하는 개인들의 도전 이야기로 미국인에게 많은 공감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공정해야 할 스포츠 경쟁에 부당한 방법을 쓴 나이키는 큰 오점을 남겼습니다. 누구나 노력하면 건강한 몸과 정신을 갖춘 성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나이키의 아메리칸드림이 학대와 약물로 얼룩졌습니다.
그림: 류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