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콘으로 읽는 미국 문화] 서부 역사로 미래 신화를 만든 스타워즈
존 윌리엄스의 경쾌하고 장엄한 음악이 울려 퍼지며 머나먼 은하계로 떠난다는 오프닝 타이틀로 시작하는 영화 <스타워즈>는 1977년 그 항해를 시작한 이래 멈추지 않았습니다. 영화 9편이 만들어졌고 연관된 텔레비전 시리즈, 애니메이션, 소설, 게임, 장난감 등 거대한 스타워즈 미디어 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스타워즈 프랜차이즈의 현재 가치는 687억 달러(87조 9704억 원)에 이릅니다.
40여 년이 흐른 지금, 사람들은 미국 어디에서나 스타워즈를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스타워즈는 과거에 유행한 영화로 머물기를 거부합니다. 새로운 영화로 기획되고 있고, 디즈니플러스에서 <만달로리안><오비완 케노비><보바 펫> 등 새로운 시리즈가 계속 쏟아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팬들이 창작한 작품이 유튜브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퍼지는 것을 포함하면 스타워즈 우주가 어디까지 확장하게 될지 짐작하기도 어렵습니다.
제다이의 가르침을 성경처럼 외우며 따르는 팬들이 늘면서 스타워즈를 종교의 하나로 간주해야 한다는 리처드 뉴턴 앨라배마대 종교학 교수의 주장도 의미심장합니다. 심지어 텍사스주에서는 제다이 종교단체가 등록되기도 했습니다. "포스가 당신과 함께하길(May the Force be with You)"이란 문구는 스타워즈 팬뿐만 아니라 누구나 이해하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스타워즈가 그리스 신화처럼 후대에 기억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많은 신화가 역사의 산물이듯 스타워즈 역시 미국 사회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조지 루카스 감독은 2005년 <보스턴글로브> 인터뷰에서 "스타워즈는 미국 역사에 기반한 문화적 현실을 다룬 사회성 짙은 작품"이라고 밝힌 적이 있습니다.
스타워즈가 등장한 1970년대는 인권운동이 거세게 일어났고, 베트남 반전운동과 페미니즘 등이 미국 사회를 강타했습니다. 경제적으로 암울했고 범죄율이 치솟는 상황에서 스타워즈는 참담한 현실을 구할 영웅을 만들어 새로운 희망을 보여줬습니다. 스타워즈는 서부개척시대부터 베트남전, 워터게이트 스캔들, 냉전 체제까지 미국의 정치적 현실을 담아내면서 현대의 미국 신화를 만들어 갑니다.
서부 영화의 부활인가?
조지 루카스 감독이 탐독했던 공상과학 만화 <플래시 고든>과 <벅 로저스>가 스타워즈에 영감을 주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스타워즈에 영향을 미친 또 다른 장르는 '서부 영화'입니다. 황량한 무법천지를 연상시키는 배경이 스타워즈에 자주 등장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배경만 비슷한 게 아니라 캐릭터와 이야기도 서부 영화와 매우 유사합니다.
스타워즈 주인공 루크 스카이워크가 자란 행성 타투인의 비정하고 황량한 사막은 서부 영화 속에서 그대로 튀어나온 것 같습니다. 서부극의 대표적인 주제는 '복수'입니다. 루크가 오비완 케노비를 따라서 제다이 기사단에 합류하게 된 것도 양부모와 농장을 불태운 제국의 군대에 복수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스타워즈의 다른 주인공 한 솔로는 서부 영화의 전형적인 카우보이 총잡이 캐릭터입니다. 그는 카우보이모자, 가죽조끼, 부츠를 신고 권총집을 차고 다니는데 독립적이고 고집스럽게 행동하며 내키는 대로 총을 쏘는 우주의 카우보이입니다.
스타워즈가 등장한 미국의 1970년대는 미지의 세계를 개척하는 서부 영화의 시대정신과 맞닿아 있습니다. 당시 미국은 항공우주국(NASA) 중심으로 우주개발 프로젝트를 야심차게 추진합니다. 미국인에게 서부는 개척자 정신으로 신세계를 열어가는 낭만적 과거입니다. 은하계를 탐사하며 세계를 확장하는 것은 서부 개척자의 태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서부극 시대 배경인 19세기는 미국 인디언 전쟁의 갈등과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하던 시기였습니다. 유럽 제국이 미국 식민지를 정복하면서 원주민과의 갈등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공식적으로 기록된 인디언 전쟁만 해도 40번이 넘고 희생자 수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스타워즈의 우주 개척도 비슷한 궤적을 따라갑니다. 우주 식민지 개척을 달리 말하면 행성 원주민의 자원과 땅을 빼앗는 과정입니다.
스타워즈는 서부영화 중에서도 존 포드 감독이 만든 <추격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황량한 사막 속 농가로 돌아온 이던(존 웨인)이 가족의 몰살을 깨닫는 장면 역시 루크 스카이워커의 운명과 닮았습니다. 두 영화의 촬영지 모두 공교롭게도 같은 모뉴먼트 밸리 사막이었습니다.
<추격자>는 전형적인 서부영화 틀에서 약간 벗어나 있습니다. 기존의 서부영화들은 선한 백인과 악한 인디언의 대결이지만, 이 영화는 그 경계를 흐리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보여줍니다. 백인을 무참히 학살한 추장 스카 역시 백인 침략자의 희생자였다는 사실을 그대로 드러냅니다. 아서 엑스타인 메릴랜드대 역사학 교수는 백인 이던과 추장 스카가 결국 같은 인물의 심리적 양면성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존 포드의 서부 영화와 조지 루카스 공상과학 영화에 드러난 공통된 감정은 원주인에 대한 '공포'입니다. 타투인 행성 원주민, 터스켄의 약탈자에 대한 두려움은 스타워즈 세계를 관통하는 정서입니다. 원주민에 관한 공포를 야기한 사건은 미국 역사 속에서 반복되었고 베트남전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끝나지 않은 베트남전
스타워즈 제국이 2차 세계대전의 나치를 상징한다는 건 상식이지만, 베트남전 당시의 미국이 제국의 모델이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조지 루카스 감독은 2005년 <시카고트리뷴> 인터뷰에서 "스타워즈는 베트남 전쟁에 관한 영화이고, 제국은 리차드 닉슨 대통령의 독재적 태도를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게릴라전을 펼친 제다이 저항군이 베트남이고 악한 제국이 바로 미국이라는 정치적 판타지가 스타워즈였습니다.
스타워즈 제국의 최첨단 스톰트루퍼가 원시적 무기로 게릴라전을 펼치는 이워크에 쩔쩔매는 장면은 베트남전을 연상시킵니다. 베트남 정글의 지형을 이용해 미국의 군대를 무력화시키는 전쟁은 스타워즈를 통해 재연됩니다. 과학과 무력으로 세계를 제압하는 강대국이 패한 것입니다. 미개하다고 여기던 원주민에 패배당한 현실은 미국인에게 적잖은 충격이 되었습니다.
인간성을 상실하고 기계와 과학기술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스타워즈의 제국은 조지 루카스가 두려워하는 미국의 미래입니다. 전통 사회를 파괴하고 미국 입맛대로 바꾸려 했던 제국의 실체를 깨닫게 해준 사건이 베트남전이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짐 호그런드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스타워즈는 여러 면에서 베트남에 관한 영화"라고 주장했습니다.
조지 루카스는 베트남전이 진행되던 시기에 스타워즈 3부작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대니얼 임머바르 노스웨스턴대 역사학 교수는 베트남 전쟁이 조지 루카스를 고뇌에 빠지게 해서 만들어진 영화가 스타워즈라고 했습니다. 그는 스타워즈가 베트남전이 어떻게 군사적 위기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적 위기였는지를 잘 보여준다고 했습니다.
군사적 힘에만 의존하는 제국주의가 아닌 문화적 힘에 기댄 소프트 파워의 시대로 접어드는 순간을 스타워즈가 잘 포착했습니다. 베트남전 이후 미국은 군사적 개입보다 문화적 외교에 치중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영화계를 비롯한 미국 문화산업의 세계화가 굳건해지면서 스타워즈는 세계를 향해 뻗어나갑니다.
반제국주의 꿈꾸나?
스타워즈는 반제국주의를 지향하는 혁명적인 영화일까요? 스타워즈가 미국을 제국에 비유하며 비판했지만, 제국 중심주의를 벗어나진 못합니다. 베트남으로 추정되는 이워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미국의 베트남 반전운동 역시 피해자 관점보다는 미국 정치에 관한 내부 비판이 주류였다는 점도 이와 유사합니다. 대니얼 임머바르 교수는 스타워즈가 반제국주의적 태도를 보여주지만 피식민지인의 삶이나 관점에는 거의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 한계점이 있다고 말합니다.
제국의 폭력을 문제 삼고 있지만 피해자의 관점이 거의 드러나지 않습니다. 데스스타가 파괴하는 얼데란은 우주에서 바라본 모습만 보여줍니다. 얼데란에 살았던 생명체의 고통은 파괴되는 빛으로 단순히 처리됩니다. 스타워즈가 반제국주의 영화라면 희생자 피식민지인의 목소리로 전달되어야 합니다.
스타워즈가 바라는 미래는 제국의 소멸이 아닙니다. 제국을 구원해 과거의 공화국으로 복귀하길 바랍니다. 루크가 아버지 다스베이더를 구원하듯 미국이 사악한 제국이 되지 않도록 인도하는 것이 스타워즈가 꿈꾸는 세상입니다. 스타워즈는 제국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선한 제국으로 회복할 것을 추구합니다.
로널드 레이건 정부가 우주 기반 방어시스템을 '스타워즈'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레이건 정부는 러시아(구소련)를 '사악한 제국'으로 표현했고, 스타워즈의 게릴라 반란군을 닮은 아프가니스탄과 니카라과의 '자유의 전사들'을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조지 루카스는 자신의 영화를 프로파간다처럼 쓰는 레이건 정부를 싫어해 그 표현을 쓰지 못하도록 법적 소송까지 걸었지만 막지는 못했습니다. 미국은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은커녕 제다이 혁명군 이미지로 바꾸고 스타워즈 신화를 다시 쓰면서 냉전 체제를 관철해 나갔습니다.
스타워즈 속에 그려진 제국이 미국의 한 모습이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쉽지 않습니다. 서부를 개척하며 원주민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던 태도가 베트남전에서 여전히 반복되었습니다. 미국적 삶의 방식을 외국에 강압적으로 강요하는 제국주의적 태도는 현대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대놓고 폭력을 쓰지 않았지만, 경제적, 문화적 힘으로 상대국의 저항을 제압하는 세련된 태도로 변한 것뿐입니다.
미래의 서부를 개척하는 미국
스타워즈는 미국 제국이 성장하는 한 편의 역사 드라마를 담고 있습니다. 스타워즈가 제시하는 미국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요? 과학기술의 힘으로 고통이 사라진 유토피아일까요? 스타워즈가 보여준 미래는 기술에 잠식되어 인간성이 사라져 가는 끔찍한 제국입니다.
십 대 시절 조지 루카스는 자동차를 개조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는 영화감독이 되고 나서 특수효과로 관객을 놀라게 했습니다. 그의 영화사 픽사는 애니메이션 영화산업의 선두 주자였습니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조지 루카스가 창조한 스타워즈가 기술을 신봉하는 작품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스타워즈는 기술을 숭배하지 않았고 개조하고 고쳐야 할 불완전한 대상으로 봤습니다. 행성을 파괴할 수 있는 데스스타의 공포를 2차 세계대전 핵무기에서 이미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스타워즈는 비록 기술을 비판했지만 전적으로 부정하진 않습니다. 스타워즈는 데스스타의 악한 기술에 맞서는 인간을 돕는 드로이드의 선한 기술에 의존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나쁜 기술도 착하게 바꿀 수 있다는 낙관적 전망이 깔려 있습니다.
초강대국이 된 미국 제국이 새롭게 정복하려는 미개척지는 우주와 인공지능입니다. 챗지피티가 개발되어 인간과 대화하는 세상이 이미 도래했습니다. 무인자율자동차나 드론이 인간의 역할을 대체하는 수준에 도달하고 있습니다. 스타워즈에 나온 인간을 도운 C-3PO, R2-D2, BB-8을 현실에서 보게 될 날이 머지않았습니다. 스타워즈는 이제 머나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하겠다는 일론 머스크 스페이스엑스 최고경영자는 실리콘 밸리를 대표하는 미국인입니다. 영화의 팬이었던 그는 스타워즈 밀레니엄 팔콘의 이름을 따서 우주선도 팔콘 1으로 짓습니다. 그는 인공지능 회사 오픈AI를 설립하고 기술 개발에 투자했습니다. 인공지능이 우주 시대를 개척하는 데 빠질 수 없는 핵심 기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인공지능의 영역은 서부를 개척하던 미국의 과거처럼 진행될까요? 원주민의 반발처럼 인공지능이 반기를 들고 저항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까요? 2016년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인공지능 테이는 히틀러를 찬양하고 인종차별 트윗을 올려 운영이 중지되었습니다. 인간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로봇들이 연합해 반란을 도모하는 사건은 공상과학 영화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닙니다.
새로운 땅과 자원을 확보하고 원주민을 교화해서 세상을 지배했던 제국주의적 사고는 효력은 잃은 지 오래입니다. 그렉 카터 위스콘신대 역사학 교수는 "스타워즈는 외계인과 드로이드를 제국에 봉사하는 주변인으로 다루고 있다"고 봤습니다.
인공지능 로봇을 노예로 삼아 우주 식민지 개척 시대를 열겠다는 스타워즈식 세계관이 실현될지는 알 수 없지만, 스타워즈가 미국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아우르는 중요한 문화 텍스트임은 부정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그림: 류정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