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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동협 Nov 29. 2023

가슴 풍만한 멍청이로만 기억되기엔 너무도 대단한 가수

[아이콘으로 읽는 미국 문화] 미국 대중문화 통합의 아이콘 돌리 파튼

돌리 파튼 ⓒ 류정화

돌리 파튼은 2022년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그녀가 컨트리 가수로 시작해 가스펠, 블루그래스, 디스코, 동요, 팝, 포크,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를 다루며 제작한 음반이 49개나 되고 작곡한 노래도 3000곡이 넘습니다. 영화 <보디가드> 주제가로 휘트니 휴스턴이 불러서 더 유명해진 돌리 파튼의 <아이 윌 올웨이스 러브 유>는 무려 네 차례나 히트하면서 팝의 역사를 다시 썼습니다.


파튼은 2014년 글래스턴베리 축제에서 18만 명의 관중을 모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틱톡에서 돌리 파튼 해시태그 비디오가 64억 뷰를 넘어섰고 지칠 줄 모르는 열정으로 꾸준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최근 스릴러 소설에 도전하는 저력을 보여준 파튼은 77세의 나이에도 은퇴할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돌리 파튼의 활동 무대는 음악계를 넘어 영화, 텔레비전, 뮤지컬, 관광, 놀이공원과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걸려 있어 '돌리 제국'이라는 소리도 듣습니다. 팬층도 워낙 다양해 여성계, 성소수자, 남부 노동자, 기독교인까지 섭렵합니다. 좀처럼 섞이기 힘든 팬의 조합을 가진 파튼은 수수께끼 같은 스타로 알려졌습니다.


▲ 77세의 나이에 록음악 앨범을 내고 새로운 장르에 진출한 돌리 파튼의 삶은 소개하는 특집 기사가 <카우보이스 인디언스> 잡지에 실렸다. ⓒ 류동협


2019년 미 공영라디오(WNYC)는 팟캐스트 특별 시리즈 <돌리 파튼의 아메리카> 총 9편을 내보내 세대, 인종, 정치, 종교, 계급을 가로지르는 다양한 팬을 확보한 그녀의 미스터리를 파헤쳤습니다. 분열과 갈등으로 치닫고 있는 미국 사회에서 돌리 파튼은 어떻게 세상을 '화합'하는 아이콘이 되었을까요?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문화 아이콘도 보수나 진보 어느 한쪽으로 쏠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파튼은 보수나 진보 모두가 사랑하는 독특한 '통합'의 아이콘입니다. 남부 백인 노동자 보수 팬과 여성과 성소수자 팬이 파튼의 음악에서 만나 문화 전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파튼은 어느 편도 들지 않고 꿈을 좇아 도전하는 이들을 모두 지지하면서 갈등보다는 화해의 장을 지향합니다. 그녀가 살아온 변화무쌍한 삶이 서로 다른 팬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도왔던 걸까요?


힐빌리 문화가 잉태한 가수

 

▲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 테네시주 내슈빌의 뮤직시티센터에서 열린 53주년 내슈빌 송라이터 명예의 전당 갈라에서 돌리 파튼이 연설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돌리 파튼은 미국에서도 낙후되고 고립된 지역으로 알려진 '애팔래치아산맥' 테네시주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이 지역을 통틀어 '힐빌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힐빌리는 언덕으로 이뤄진 곳에 살던 가난하고 못 배운 백인을 비하하는 표현으로 많이 쓰입니다. 애팔래치아산맥은 18세기부터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영국 백인 이민자가 주로 정착해서 살았습니다. 이 지역 주요 산업인 목재, 석탄, 철강 등이 사양 산업이 되면서 이들은 시카고, 디트로이트 등 대도시로 떠나갔습니다.


2016년 제이디 밴스가 저술한 <힐빌리의 노래>에 따르면, 힐빌리 지역의 주요 거주자였던 소작농, 광산노동자, 철강노동자들은 경제적 파탄 속에서 약물이나 마약에 중독되어 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의 가족도 가난과 가정 폭력으로 점철된 힐빌리 고통 속에서 쉽게 빠져나올 수 없었습니다. 힐빌리는 시트콤 <비버리 힐빌리스>, 영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 등에서 남부 시골 백인이 과학과 도시화에 반발해 과거지향적 삶에 집착하는 부정적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전기나 수도도 나오지 않는 힐빌리 오두막에서 소작농의 12남매 중에 하나로 태어난 돌리 파튼은 고단한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파튼은 좌절하지 않았고 고단한 삶을 음악으로 극복하는 방법을 어린 시절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블루그래스, 컨트리, 가스펠이 결합한 독특한 힐빌리 노래를 부르며 성장한 파튼은 삶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1971년에 발표한 <코트 오브 매니 컬러스>는 그녀의 어머니가 누더기 조각으로 기워 만든 코트를 입고 등교한 날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놀림당한 아픈 경험을 노래했습니다. "우리는 비록 가난했지만, 엄마가 날 위해 만든 알록달록한 코트를 입고 나는 누구보다도 마음이 풍족했어." 가족의 사랑으로 경제적 불행을 이겨내는 이야기는 파튼의 주요한 레퍼토리가 되었습니다.


2022년 윌프레드로리어대 주디 이튼 교수는 돌리 파튼 노래의 가사와 '긍정성'의 관계를 밝히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이 논문에 따르면 파튼의 가사가 다른 컨트리나 팝보다 높은 비율의 긍정적 메시지를 담았습니다. 이튼 교수는 "나쁜 상황에서도 희망과 즐거움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돌리 파튼의 태도는 긍정 심리학의 훌륭한 모델로 평가할 수 있다"고 썼습니다.


파튼은 18살에 기타 하나만 가지고 내슈빌로 가서 컨트리 음악 실력을 쌓으며 꿈을 펼쳤습니다. 힐빌리의 빈곤한 경험은 파튼에게 풍족한 음악적 뿌리가 되었고 그녀는 성공한 뒤에도 힐빌리 출신인 것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파튼은 자신의 힐빌리 정체성에 대해 2014년 <서던 리빙>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힐빌리는 저한테는 모욕이 아니죠. 저는 힐빌리 출신인 게 자랑스러워요. 그게 저를 항상 겸손하게 좋은 사람으로 만들죠. 제가 아무리 벗어나려고 해도 그건 숨길 수 없는 저의 일부분이잖아요." 


바비걸이 페미니스트?

 

▲ 영화 <나인 투 파이브>는 여성 차별 사회의 현실을 코미디로 비꼰 작품이다. 돌리 파튼은 성희롱을 당하다가 통쾌하게 복수하는 비서역을 맡아서 열연했다. ⓒ 20세기폭스


일찌감치 컨트리 음악의 전설로 우뚝 섰지만, 돌리 파튼이 문화계의 슈퍼스타가 된 것은 1980년에 개봉한 영화 <나인 투 파이브>가 흥행했기 때문입니다. 페미니즘 활동가이자 배우 제인 폰다와 함께 출연한 이 영화에서 돌리 파튼은 매력적인 비서 도랠리 역을 맡고 주제가도 불러서 히트시켰습니다.


영화 속에서 남성 상사 프랭클린은 여성 직원의 아이디어를 훔치고, 승진도 시켜주지 않으며, 끊임없이 성희롱을 일삼습니다. 그에게 차별받고 괴롭힘당하던 세 여성이 힘을 합쳐 통쾌하게 복수합니다. 사내 탁아시설도 만들고 출퇴근 시간도 자유롭게 만들어 회사를 더욱 평등하게 바꾸는 것이 영화의 결말입니다. 이 영화는 성차별 사회 문제를 과장된 코미디로 보여줬지만, 페미니즘 메시지를 성실히 전달한 상징적인 작품이 되었습니다. 


영화 개봉 40년이 흘렀지만, 도랠리가 직장 상사한테 당한 성추행과 성차별은 미국 사회에서 여전히 고질적인 병폐입니다. 고용, 재산, 이혼 등에서 성평등 법안과 보호 장치가 미국에서 도입되어 여성의 권리가 약간 개선되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2020년에 발표된 맥킨지 다양성 보고서가 보여주듯이 매니저급 직위에 있는 여성의 비율은 38%밖에 되지 않습니다. 여성법률센터에서 실시한 설문에 따르면, 성희롱은 고발한 여성의 72%가 회사에서 해고되거나 다른 보복 조치를 당했고 가해자의 37%는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돌리 파튼은 바비 인형처럼 금발 머리에 풍만한 가슴을 가졌다는 이유로 평생 성희롱적 농담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암컷 유선 세포에서 추출한 유전자로 만든 복제양 돌리가 파튼의 이름을 따온 것도 과학자의 짓궂은 농담이었습니다. 파튼은 금발 가발과 반짝이 의상으로 대표되는 화려한 외모를 고집한 탓에 놀림이나 비난을 받았지만 이에 굽히지 않고 자신만의 스타일을 평생 유지했습니다. 


2013년에 가수 마일리 사일러스가 선정적인 복장으로 공연해서 비난받을 때도 돌리 파튼은 그의 대모를 자처했습니다. 파튼은 <비비씨뉴스나이트> 인터뷰에서 "저는 멍청한 금발이라고 불러도 상처받지 않는다"며 "왜냐하면 멍청하지도 않고 금발도 아니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소셜미디어에서 젊은 여성에게 쏟아지는 외모에 대한 사회적 압력에 맞서 있는 그대로 자기 모습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파튼이 페미니스트 활동가는 아니었지만, 음악이나 일을 통해서 여성의 당당한 삶을 살았습니다. 


파튼은 컨트리 음악으로 데뷔 후 포터 웨고너와 그의 버라이어티쇼에서 듀엣으로 활동하며 명성을 높였습니다. 하지만 포터 웨고너의 입김으로 인해 자신이 원하는 음악을 마음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파튼이 웨고너의 그늘을 벗어나며 부른 이별 노래가 바로 컨트리 차트 1위를 차지한 <아이 윌 올웨이스 러브 유>입니다. 그 후 솔로로 데뷔해 컨트리, 팝과 뮤지컬을 넘나드는 자신만의 독특한 음악 세계를 만들었고, 음반, 텔레비전 등 쇼비즈니스 제작자로도 성공했습니다.


아이콘을 넘어 꿈으로

▲ 5살 이하 아이 누구나 신청하면 책을 받을 수 있는 상상력 도서관은 돌리 파튼이 하고 있는 자선사업 중에 하나다. ⓒ 상상력 도서관


돌리 파튼은 스타가 되는 것보다 더 원대한 꿈을 품고 있었습니다. 파튼은 자선단체 '상상력 도서관'을 설립해 세계 어린이에게 그림책을 1억 9300만 권 넘게 기부했습니다. 문맹이었던 아버지를 마음에 새기며 자선활동을 펼친 결과 지난 2022년 세계 문맹을 퇴치하고 어린이 교육에 앞장선 공로를 인정받아 아마존 제프 베조스 재단으로부터 1억 달러의 상금을 받았습니다.


상상력 도서관의 시작은 파튼이 1986년 테네시주에 세운 놀이공원 '돌리우드'였습니다. 파튼은 테마파크 수익을 모아 1988년에 돌리우드 재단을 설립했고 고향 테네시주 동부의 가난한 집안 아이들에게 책 1600권을 무상으로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 자선사업은 그녀가 처음에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커져, 이제는 매달 170만 권을 전 세계 곳곳으로 보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돌리 파튼은 가난 때문에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없어선 안 된다고 믿으며 살았습니다. 경제적 악조건에 처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것도 그녀의 사업 중 하나였습니다. 파튼은 팬데믹으로 공동체에 위기가 닥치자, 백신 개발에도 100만 달러를 선뜻 기부했습니다. 파튼은 독실한 크리스천이지만 동성애 인권도 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사회가 동성애자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파격적인 노래 <패밀리>를 1991년에 발표해 세상을 놀라게 했습니다.


공상과학 텔레비전쇼 <오빌>에서 2422년 미래의 가상프로그램에 출연해 돌리 파튼이 남긴 말은 의미심장합니다. 모클란 행성은 남성만으로 이뤄져 있고 여성이 태어나면 성전환 수술로 남성으로 바꿔버릴 만큼 여성의 존재를 철저히 부정하는 사회입니다.


모클란 여성해방 운동가 헤비나는 소녀의 목숨과 임무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어려운 결정을 앞두고 가상현실 시뮬레이터로 돌리 파튼을 만납니다. 파튼은 어릴 적에 길을 걷다가 발가락을 심하게 베였는데, 의사도 없는 동네라서 어머니가 직접 바늘로 꿰매서 치료해 줬다고 합니다. 헤비나가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되묻자 파튼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어머니는 지금 당장 필요한 일을 알고 있었어요. 당신이 지금 여기에서 옳은 일을 하면, 미래는 스스로 돌볼 수 있는 방법을 찾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복잡한 먼 미래의 일을 따지고 고민하기보다는 현재 옳다고 믿는 일을 묵묵히 하며 살아온 파튼의 삶이 요약된 장면입니다. 파튼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들에게 희망을 주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파튼은 화재로 집을 잃은 사람, 돈이 없어 대학 진학을 포기한 학생, 가난해서 책을 사지 못하는 아이, 힘든 가정 환경 탓에 음악 활동을 접은 가수 등을 후원했습니다. 고난 속에서 꿈을 잃지 말고 도전하는 파튼의 삶과 노래가 들려준 메시지는 보수, 진보, 기독교, 동성애 등 다양한 계층에서 공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화합의 아이콘이 된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림: 류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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