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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동협 Jan 10. 2024

소설가의 독서일기는 다를까?

[서평] 닉 혼비 런던 스타일 책읽기

원래 '책에 관한 책'은 잘 읽지 않는 편이다. 왜냐하면, 그런 책을 읽는 시간에 차라리 다른 책을 한 권 더 읽는 게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원전이 되는 책을 읽지 않은 상태에서 독서에 관한 책을 읽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그런 생각이 약간 달라졌다. 나의 독서 취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서 새로운 독서의 세계로 들어가는데 이런 책이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평소에 좋아하던 유명작가가 직접 읽고 추천하는 책을 따라서 읽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 될 수도 있다.


이런 호기심에서 읽기 시작했었는데 책을 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다 읽었다. 지금은 두 번째 시리즈에 해당하는 책을 읽고 있다. 이 책은 이론적이고 딱딱한 서평과 달리 작가의 경험과 솔직한 느낌이 결합한 독특한 독서일기다. 닉 혼비는 샌프란시스코에 본사를 둔 잡지 'Believer'에 이 글을 연재했던데 그 칼럼을 모아서 출판했다.



한국에선 '닉 혼비 런던 스타일 책읽기'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원제는 'The Polysyllable Spree'다. 대중의 주목을 끌 만한 탁월한 제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야흐로 21세기는 스타일의 시대다. 책 읽기도 스타일이 중심이 되면 더 많은 독자를 끌어들일 수도 있다. 심지어 '스타일'이란 제목의 책이 한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유사한 연작도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동경 스타일 책 읽기, 폴 오스터의 뉴욕 스타일 책 읽기도 나오지 말란 법도 없다.


닉 혼비가 런던을 대표하는 인물도 아니지만, 그의 독서에서 영국 중심의 취향을 짐작할 수 있다. 미국, 호주, 캐나다 등의 다른 영어권 작가의 책도 읽었지만, 이 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작가는 영국인이다. 작가의 작품 토양이 되는 영국을 벗어나긴 힘들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 독서도 아니었고, 작가의 일상적 독서였으니 개인적 취향을 벗어나긴 어려웠을 것이다. 원전의 제목과 전혀 다르게 붙인 제목이었지만 한국어판 제목은 이 책의 내용을 어느 정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것도 상당한 고통이었다. 작가의 문체는 아주 수려했고, 다루는 내용도 지루하지 않았고 재치 있게 다뤘다. 문제는 소비 욕구를 억제하기 어려웠다. 이 책에서 인용한 책 가운데 사서 읽어보고 싶은 책이 너무나 많았다. 간신히 그 욕구를 잠재우고 온라인 서재에 '읽어야 할 책' 목록을 따로 만들어 놓았고, 나중에 도서관에서 빌려다가 보기로 나와 타협을 봤다.


잡지에 칼럼을 쓰면서 닉 혼비를 가장 괴롭힌 것은 편집진과 갈등이었다. 한 번은 통째로 한 달 치 칼럼이 정지당했다. 다른 책에 관하여 부정적 글을 쓰지 말아 달라는 편집진과 그럴 수 없다는 닉 혼비는 자주 부딪혔다. 그래도 칼럼을 통해서 그런 고충을 겪고 있다는 내용은 실을 수 있는 자유는 있었다.


부정적 비평으로 논쟁적 잡지가 되는 것보다 책을 권장하는 대중문화잡지가 되겠다는 철학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일 년에 쏟아지는 책만 하더라도 엄청나다. 좋은 책을 소개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데 권할 필요도 없는 책을 비판하느라 지면을 낭비하는 것도 효율적이지 못하다는 것이 편집진의 입장이었다.


그렇지만 매번 추천할 책만 읽을 수는 없다. 작가가 예언가도 아니고 책을 읽어보기도 전에 추천할만한 책인지 알 방법이 없다. 운이 나빠서 그달에 읽은 책이 모두 형편없는 책이었다면 칼럼은 쉬어야 한다. 칭찬만 늘어놓는 주례사 비평 같은 글은 위선적으로 느껴진다. 무엇이 좋은 책인지 아닌지에 관한 의견 없이 좋은 말만 해야만 하는 것은 광고와 다를 게 무엇인가?


이 책을 읽는 또 다른 재미는 작가의 경험을 훔쳐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직접 서점에 들러서 책을 사게 되는 이유도 알게 되고, 동료나 가족이 쓴 책을 읽어야 하는 고충도 들어볼 기회가 있다. 휴양지에서 자신의 책을 읽다가 잠든 여인에 대한 묘사도 흥미롭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 독자 서평에 대한 의견도 솔직하게 표현한다. 이런 태도가 바로 지루할 수도 있는 독서일기에 재미를 더하게 한다. 닉 혼비는 에둘러 말하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하는 편이다. 그 대상은 독자, 동료작가, 편집진을 모두 아우른다. 자신의 경험과 의견을 직접 서술하는 방식은 대화를 자극한다.



이 독서일기를 읽고 나서 이런 형식의 독서일기를 써보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일기장과 대화를 하듯이 자신이 읽은 여러 권의 책을 느낌과 함께 자유롭게 쓰는 것이라면 재미도 있을 것 같다. 책에만 한정할 게 아니라 영화와 텔레비전도 이런 방식으로 풀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나만의 영화 일기나 텔레비전 일기를 언젠가 쓰게 될지도 모른다.


이달에 산 책과 이달에 읽은 책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작가도 일반인과 다르지 않게 사놓고 읽지 않는 책이 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언젠가 읽을 목적으로 사놓고 책장에서 먼지가 쌓이는 책에 대한 미안함은 공감이 가는 대목이다. 고전과 현대소설을 오가는 독서경험도 흥미로웠다. 가끔 고전이란 영양소가 필요하다. 부디 이 책이 다른 독자에게도 새로운 독서체험으로 안내하는 등대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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