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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동협 Jan 11. 2024

시간을 넘어선 사랑

[영화평] 러브레터

이와이 슌지가 감독한 '러브레터'는 시간의 역류를 꿈꾸는 한 여인이 보내는 편지에서 사건이 발단된다. 와타나베 히로꼬는 애인의 졸업 사진 속에 적혀있는 주소를 보고 그에게 편지를 보낸다. 그 편지의 대상은 이미 사라지고 없는 집을 지키고 있는 중학생인 후지이 이즈끼이다.


시공간상으로 놓여있는 차이를 넘어서는 것이 허락되지 않는 현실에서 이런 시도은 헛된 꿈이다. 꿈을 꾸듯이 편지를 쓰는 마음에는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회한이 담겨 있다. 러브레터는 되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나는 여행의 다른 표현이다. 여기에서 러브레터는 사랑하지만 전하지 못하는 짝사랑의 대상으로 향한다. 따라서 이 영화는 짝사랑이라는 식지 않는 주제를 담담하게 다룬 고전이 되었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러브레터는 두 개다. 첫 번째는 히로꼬가 이즈끼에게 보내는 편지이다. 이 편지는 대상을 오인하는 데서 오는 짝사랑의 편지이다. 히로꼬가 생각하고 있는 대상은 죽어버린 애인인 이즈끼이지만 실제로 편지를 받아보고 답장을 보낸 사람은 동명이인이 이즈끼이다. 이즈끼는 히로꼬를 알지 못하면서도 계속 답장을 보냄으로써 서로의 만남을 지속하게 된다.


두 번째는 이즈끼(남)가 이즈끼(여)에게 보낸 편지이다. 이 편지는 이미 오래전에 부쳐졌지만 시간상으로 지연된 짝사랑이다. 이즈끼(남)가 살아서는 자신의 사랑을 전하지 못했지만 세월이 흐른 후에 이즈끼(여)는 알게 되었다. 사실 이 둘의 사랑은 이어지지 못했고 삶과 죽음으로 영원히 갈라진다. 단순히 짝사랑으로만 끝나지 않고 서로가 만날 수 없는 상황에서 이즈끼(여)는 지연된 마음을 깨닫고 받아들인다.


첫 번째 편지는 히로꼬가 과거로 보낸 편지이고, 두 번째 편지는 이즈끼(남)가 미래로 보낸 편지이다. 두 개의 편지가 만나는 가운데에서 이즈끼(여)가 이들을 연결해준다. 히로꼬와 이즈끼(남)는 각각 영원히 만날 수 없는 대상을 향해서 편지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이즈끼(여)는 분명히 살아서 이들은 이어주고 자신도 이어주는 것이다.


이즈끼(여)는 히로꼬와 이즈끼(남) 사이에서 가로막고 방해하는 것이 아니라 중재하고 관계를 회복시켜주고 있다. 서로 다른 시간대를 향해 쓴 편지가 제대로 전달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이즈끼(여)는 문제 해결의 열쇠이다. 과거와 현재가 같은 시간대에 실제로 존재할 수는 없지만 기억 속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시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 동분서주하는 인물은 이즈끼(여)이다. 이즈끼(여)의 기억 속으로 초대된 이즈끼(남)와 히로꼬는 비로소 만날 수 있었고 가지고 있었던 의문을 풀 수 있었다. 따라서 이즈끼(여)는 영매의 역할을 능숙하게 해내고 있다. 이즈끼(여)의 정신을 빌려서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 세 명의 인물은 만나게 된다.


세 명은 만나면서 혼란을 경험하게 된다. 이즈끼(여)는 감기를 심하게 앓으면서 돌아가신 아버지의 환영을 병원에서 마주하게 된다. 줌인 트랙아웃의 기법을 사용해서 순차적인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엄숙함을 벗어나게 된다. 과거의 기억 속에 있는 이즈끼(여)는 성인이 되어 있다. 또 환상을 벗어나게 하는 것 역시 중학교 수업 시절 똑같은 이름을 부르는 소리였다.


히로꼬는 국도가 되어 버린 집에서 살고 있는 이즈끼(남)를 생각한다. 히로꼬는 이즈끼(남)와 이즈끼(여)도 혼돈하여 편지를 보내고 믿어 버린다. 졸업 앨범 안의 사진이 자신의 모습과 비슷함을 알고 히로꼬는 혼란스러워진다. 이즈끼(여)와 히로꼬의 혼란을 일으키는 매개체는 기억 속의 이즈끼(남)이다. 이즈끼(남) 때문에 히로꼬와 이즈끼(여)는 일상적인 현실에서 벗어나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즈끼는 히로꼬로부터 느닷없는 편지를 받고 과거의 이즈끼(남)를 만나게 된다. 자신의 기억 속에 오랫동안 묻어두었던 기억을 새삼스럽게 꺼내보아야 했다. 히로꼬의 부탁으로 이즈끼(여)는 자신의 기억을 정리하고 사진까지 찍으면서 그 시절로 돌아가야 했다. 현재에서 과거로 떠나는 여행을 하도록 해준 것은 히로꼬의 편지였다.


히로꼬는 편지를 계속해서 보내서 이즈끼(여)가 추억하는 것을 같이 나누고 싶어 한다. 하지만 히로꼬가 나누고자 하는 추억은 이즈끼의 기억 속에서만 살고 있다. 이즈끼는 잊고 싶은 기억 때문에 과거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아버지의 죽음, 여중생 시절의 괴롭힘을 잊고 싶어서 과거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기억의 심연에 갇혀있는 아버지와 이즈끼(남)를 현실 안으로 불러들여서 마침내 받아들이게 된다. 이즈끼(여)는 히로꼬에서 편지를 쓰는 동안에 잊고 있던 자신의 과거를 되살아나게 한다.


세 인물은 서로가 서로를 이어주는 상호 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세 인물이 모여서 결국은 하나가 된다. 그들은 기억 속에서 만나기 때문에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 이즈끼(남)는 죽었고 이즈끼(여)와 히로꼬는 편지로만 만나고 현실적인 만남은 없다. 비록 영화 종반부에서 길에서 짧은 만남이 있었지만 히로꼬만 이즈끼(여)를 인식하는 일방적인 만남이어서 불완전한 만남이다.


현시점에서 그들이 만나는 현실적인 기반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해서 그들은 실제로 만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오직 상상적인 만남을 통해서 그들은 서로를 확인하게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L9y9aJ13oCI


이즈끼(여)와 히로꼬는 한 인물의 두 가지 양상을 반영한다. 그들은 외모상으로 닮아서 분간할 수 없다. 베로니카의 이중생활에서 보았던 장면을 연상시키는 러브레터의 짧은 만남을 통해서 서로를 마주 보게 된다. 이즈끼(여)는 현재를 지향하는 인물이고 히로꼬는 과거를 지향하는 인물이다.


이즈끼(여)와 히로꼬는 한 인물의 과거와 현재를 은유한 것이라 본다면 만남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현재의 여인이 머무르는 오따루는 과거의 냄새가 난다. 정적이고 자연 친화적인 시골의 모습을 간직한 오따루에서 떠나온 이즈끼(남)는 과거의 여인인 히로꼬를 만나서 고베에 있었다.


이즈끼(여)는 과거의 시간에 머무르면서 현재를 지향한다. 반면에 히로꼬는 현재에 머무르면서 현재의 사랑인 아끼바를 거부하고 과거를 지향한다. 둘 다 다른 시간대를 지향하는 비극적인 상황에 놓여있다. 결말에 가서 그들에게 알맞은 시간대를 찾아간다.


이즈끼(여)는 히로꼬에게 보낸 과거의 추억을 되돌려 받고 이즈끼(남)의 러브레터를 받고 과거 속으로 떠난다. 히로꼬는 이즈끼(남)와의 추억을 원래의 주인인 이즈끼(여)에게 돌려주고 현재로 돌아간다. 히로꼬와 이즈끼(여)는 만남을 통해서 각각 자기의 위치를 찾아간다.


비선형적으로 흐르던 시간이 선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는 사물은 이즈끼(여)의 나무와 오래된 집이다. 세월이 흘렀다는 것을 입증하면서 계속 그 자리에 머무르는 대상으로 나무와 집은 우뚝 서 있다.


병에서 완쾌한 이즈끼(여)는 할아버지로부터 자기가 태어나던 때 심었던 나무에 대해서 듣는다. 자기의 분신인 나무는 성장해서 하늘을 향해 솟아있다. 불쑥 커버린 나무와 무너질 듯한 집을 통해서 이즈끼는 시간의 흐름을 알아차린다.


다음 장면에서 이즈끼(여)는 과거에서 온 편지를 받는다. 선형적인 시간의 흐름을 따르게 되자마자 거부되었던 과거에서 자연스럽게 편지가 온 것이다. 시간의 흐름 바깥에 존재하던 이즈끼(여)가 안으로 들어온다.


시간의 흐름이 끊긴 극단적인 형태가 죽음이다. 이 영화에는 세 개의 죽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즈끼(여) 아버지의 죽음, 잠자리의 죽음, 이즈끼(남)의 죽음이 동시에 제시되었다. 죽어버린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않는다.


상징적으로 제시된 잠자리의 죽음은 박제된 죽음이다. 외상이 없이 죽은 잠자리는 멈춰진 날개는 겨울의 동면 이미지와 겹쳐서 정지된 시간이 된다. 또 이즈끼(여)는 히로꼬가 보내준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이즈끼가 있던 공간을 찍는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시간만 정지시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공간도 사각의 프레임 안에 가둬버린다.


시/공간의 죽음이 표현된 사진은 또한 현장의 기억을 보존한다. 폴라로이드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숨이 넘어가듯이 단호한 음향효과를 보여준다. 두리뭉실한 기억이 아닌 선명한 기억으로 남게 된다.


시간의 통합이 일어나는 부분이 결말에 드러난다. 히로꼬는 이즈끼(남)의 안부를 묻기 위해서 산으로 올라간다. 히로꼬는 새벽에 일어나 하얀 눈이 쌓인 산에서 “잘 지내고 있어요? 저도 잘 지내고 있어요”라고 소리친다.


히로꼬는 이즈끼(남)가 죽은 공간에 있으나 이즈끼(여)는 생명을 살리는 병원이라는 공간에 있다. 공간적, 상황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둘은 대화를 나눈 것이 된다. 죽음의 현장에서 삶의 현장으로 돌아온 것을 암시적으로 느낄 수 있다. 과거와 현재가 대화를 나눈 것이며 그 중간에 이즈끼(남)가 있다.


이즈끼(남)의 3주년 추도식을 계기로 사건이 발단되어서 이야기는 결핍된 것을 찾는다. 이즈끼(남)는 처음부터 죽었기 때문에 상실감을 상징한다. 사라져 버린 것을 언급하는 것은 상실감을 확인하고 그 필요성을 일깨우는 행위이다.


감정의 흐름은 충족에서 결핍으로 나아간다. 인간은 충족된 감정에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결핍된 감정을 충족시켜주기 위해 움직인다. 이즈끼(남)의 기억은 현실적으로 논의되기에는 결핍된 것이 많다. 이즈끼(여)와 이즈끼(남)가 나눈 대화는 일상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항상 저만치 떨어져 있다.


커튼이 나풀거리는 뒤로 보이는 이즈끼(남)는 환상적이고, 존재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기억하려고 할수록 저만치 멀어져 가는 이즈끼(남)를 좇아가는 것은 결핍된 기억을 채우려는 노력이다.


히로꼬가 이즈끼(남)의 주소를 자신의 팔뚝에 쓰듯이 이즈끼(여)가 감기를 통해서 소중한 기억과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에 새긴다. 히로꼬에게 이즈끼(남)의 중학 시절은 그녀가 모르는 연인의 과거이다. 이즈끼(여)에게 이즈끼(남)의 사랑은 자신이 느끼지 못한 부분이다. 히로꼬와 이즈끼(여)는 편지로 결국 자신의 과거를 찾게 되었다.


안부를 묻는 말은 공허하게 울리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서 메아리친다. 대답이 있는 물음을 통해서 둘의 일그러진 시간이 복원된다. 시간에 관한 중요한 시퀀스가 의미심장하다. 이즈끼(여)가 폐렴으로 쓰러졌을 때 40분 안에 도착해야만 살 수 있다고 설정되었다. 시간을 지키는 것은 삶과 죽음을 갈라놓을 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할아버지는 정해진 시간 안에 도착해서 이즈끼(여)를 살려낸다. 과거에 이즈끼(여)의 아버지를 살려내지 못한 것과는 다르다. 마찬가지로 할아버지가 오래된 집을 고집하는 이유는 시간을 이어가려는 의지이다. 자신이 가꿔왔던 시간이 있는 공간을 떠나는 것은 시간을 헝클어트리는 것이다. 할아버지에게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이루지 못한 사랑을 다시 살려내고 있다. 서로 다른 인물의 시간이 편지로 얽히며 과거와 현재가 엉망이 된다. 엉망이 된 사랑이 다시 제자리를 찾아가면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확인한다. 러브레터는 그 간절한 사랑이 담긴 시간 여행을 떠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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