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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요한 연 Apr 26. 2021

7. 잠적 후기와 우도살이의 시작

섬에서, 셋째 날.

  

  나에게는 가장 친한 친구가 있는데, 이 친구의 호칭은 편의상 S로 하겠다. 보통은 고등학교 친구가 평생 간다고들 하지만, 나는 이 친구를 대학교에서 처음 만났다. 이외에도 오래도록 지내겠다 싶은 친한 친구들은 대부분 대학교를 통했다. 그렇다고 고등학교 친구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고, 단지 수를 세어보면 그렇단 뜻이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대개 대학교 친구만큼 자주 만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만의 감수성이 존재한다. 인생에서 가장 미성숙하고 천진했지만, 나름대로 흔들리며 힘들었던 그 시기를 온종일 함께 보냈다는 추억이 있어서일까.     


  잠적을 타기로 결정했을 때, 더불어 누가 나를 찾아줄지에 대해서도 잠시나마 상상했을 때, 분명히 나를 찾아줄 거라 확신이 드는 사람은 S 한 명이었다. 근데 그런 것 치고는 며칠간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아서, 내 오만한 김칫국이었구나 싶고 역시 나는 아무도 찾지 않는다며 더 우울해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대략 일주일 만에 전화와 문자가 왔고, 그 친구를 시작으로 간간이 연락이 와서, 결론적으로 우도로 잠수한 지 곧 삼 주째인 지금껏 각자의 방식으로 내게 연락을 준 이들은 가족을 제외하고는 총 일곱 명이다.(이 와중에 정작 친동생은 단 한 번도 안 했다. 별 상관은 없지만.) 방금 세보니까 그렇다. 나도 참 희한한 게 누구에게도 연락이 오질 않으면 더욱 슬퍼지는 주제에, 막상 연락이 오면 좀 무덤덤하기도 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스트레스도 받고, 아무튼 답장은 안 한다. (그래도 문자까지 해주는 이들에겐 미안해져서 생존신고 정도는 남겼다) 비록 이런저런 감정이 교차하고 이래저래 왔다 갔다 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결국엔 고마움이 가장 짙고 큰 것 같다. 일곱 명 정도면 그래도 인생을 아예 헛살지는 않았구나 싶다. 한 명을 점쳤던 것치고는 장족의 발전이니.     

 

  내 인생의 존속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든 결정이 난다면, 가장 먼저 S에게, 그리고 다른 친구들에게도 차차 연락하고 싶다. 특히나 S는 내가 우도에 있다고 하면 놀라워하다가 부러워하면서 머지않아 이곳으로 와줄 것 같다. 실제로 내게 우도를 처음 알게 해 준 친구이기도 하고. 정말로 와준다면 데려가고 싶은 맛집이나 소개하고픈 풍경이 꽤 많다. 물론 이것도 내 오만한 김칫국이긴 하다. 안 온다 하더라도 실망할 일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그 편이 좀 더 자명하다. 너무 멀지 않은가.  


  아참, 덧붙이자면 의외로 카톡과 인스타그램은 내 인생에서 지워졌다 해도 아무런 지장을 주지 않았다. 삭제 후 한 오분 정도만 조금 어색했고, 그 뒤로는 마치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았다. 딱히 생각도 안 나고, 오히려 홀가분했다. 그렇지만 노트북을 킬 때면 피시 버전에 들어가서 한 번은 확인하게 된다. 그리고 아주 간혹 가다, 사람이 사무치게 그리워질 때면 인스타그램을 잠깐 설치한 뒤 기존의 염탐용 계정으로 한, 두 명의 스토리를 확인하고 흔적을 없애려 차단하고는 한다. 쓰고 보니 되게 음침하고 무섭네. 자주는 아니고 진짜 어쩌다 한 번 그런다. 요새는 안 그런지 꽤 됐다. 이상, 삭제 후기였다.


안녕, 우도!


7. 잠적 후기와 우도살이의 시작.


  나와 J는 그렇게 제주도에서의 마지막 만찬을 맘껏 즐기고, 버스를 타고 항구에 간 뒤 배를 타고 우도에 왔다. 픽업하러 와주신 사장님의 중형차를 타고 우리가 묵을 숙소에 도착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한 달이었고, J는 고작 이틀이었는데, 나는 두 달로, J는 6박으로 늘어나게 된다. 사장님 입장에선 이게 웬 떡이냐 싶으셨을 거다. 그런데 내게도  웬 떡이 있었다. 숙소의 일층은 카페를 운영하셨는데, 거기에 무려 고양이와 강아지가 있는 게 아닌가. 하나도 아니고 둘 다. 고양이와 강아지를 너무 애정 하는 나로서는(고양이를 조금 더 좋아하긴 한다. 아주 요망한 동물이다) 시작부터 좋았다. 맘 같아선 사진을 첨부하고 싶지만, 참겠다.


  그 뒤로 우리는 앞서 프롤로그에 소개했던 눈부시게 아름다운 바다를 구경하고, 지난번 다른 친구들과의 제주도 및 우도 여행에서 유일하게 들렀던 카페에 또 가서 땅콩 소보로 라테와 땅콩아이스크림, 당근케이크를 먹었다. 그런데 저번과 여전한 맛은 아니었다. 역시 뭐든 처음이 제일 맛있나 보다. 아무튼 그 뒤엔 하염없이 산책을 했는데, 걷는 길마다 모조리 아름다웠다. 우도의 경치에는 새파란 바다와, 다갈색 돌담과, 푸르른 녹음과, 샛노란 밀밭(저때는 초록색이었는데 지금은 익었는지 노란색이 되었다.)이 공존한다. 어쩌면 다양한 색채의 바다가 함께 사는 셈이다. 바다의 색깔도 곳이나 날씨마다 조금씩 다르다. 파란 바다, 에메랄드색 바다, 군청색 바다, 쥐색 바다, 노란색 바다, 초록색 바다 등.... 공통점은 샅샅이 아름다워서, 걸음을 멈추고 마음은 움직여 사진을 찍게 된다는 거랄까.

귀여운 돌담길. 쌓느라 힘들었을듯.

우리는 관광객 흉내를 낼 겸(이때까진 나름 관광객이긴 했다.) 서로 사진도 찍어주고, 굶주린 배를 달래고자 사모님이 추천해준 횟집에 가(그러나 이 뒤로는 두 번 다시 가지 않았다.) 광어회와 소맥을 먹고 마셨다. 그렇게 밤이 돼서 다시 만난 우도의 거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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