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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꾸꾸 Oct 23. 2023

계획이 없는 게 계획 (1)

<도쿄여행기 (3)>

도착

신용카드랑 핸드폰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며 자신만만했지만, 막상 공항에서 숙소까지 가는 것부터가 멈칫거림의 시작이었다.


사실 여행 첫날은 뭘 해야겠다는 욕심도 없이 그냥 동네 길거리 구경이나 하자는 생각이었기 때문에 급할 것도 없었거니와, 시내까지 가는 스카이라이너 구매처를 찾는 내내 뱃고동이 연신 꼬르륵거리기도 했다.


“그래, 일단 밥부터 먹고 시작하자.”


일단 공항 편의점으로 향했다. 짭조름한 밥알 사이로 달달한 참치가 한가득 들어있는 오니기리가 생각났다.


사실 나는 평소에 삼각김밥을 거의 먹는 일이 없다. 삼각김밥을 먹으면 왠지 대충 끼니를 때우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둘째로는 한주먹 안에 들어오는 작은 밥뭉치가 실은 밥 한 공기는 된다는 사실을 안 뒤부터였다. 먹는 기쁨은 순간인 데 비해 채워지는 칼로리를 생각하면 너무 배신감이 들지 않나?



’일본‘이라 하면 포근한 코타츠 이불 아래로 다리를 밀어 넣고, 밥알을 꾹꾹 눌러 담은 오니기리를 입안 가득 베어 물고는 오물오물 씹어먹는 모습이 떠오른다. 멀리해 왔지만 사실은 라면 국물 한 스푼, 삼각김밥 한입 번갈아 가득 들이키고 싶었던 마음이 봉인해제라도 된 것처럼 나는 종류별로 가득 채워진 오니기리 진열대 앞에 서서 턱을 괴고 한동안 진열대를 응시했다.


‘어떤 오니기리를 먹어야 최고로 맛있을까?’


그렇게 10분을 넘게 고민하고서는 양념 돼지고기가 든 오니기리를 집어 들었다. 계산대를 걸어 나오는 동시에 비닐포장을 뜯어재끼며 눈앞에 바로 보이는 의자에 앉아 오니기리를 한입 베어 물었다. 역시나 짭조름하고 달달한 맛. 나에게 가장 위험한 신호인 배고픔이 채워지고 나니 이성이 되돌아왔다. 이제는 빨리 숙소 바닥에 가방을 던져두고 침대 위에 대자로 눕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이번 여행 첫 식사였던 오니기리



나리타공항에서 시내까지 가기 위해 티켓부스로 갔다. 고속버스부터 일반열차, 고속열차까지 다양한 선택지가 있고 언뜻 보니 가격이 비쌀수록 빨리 도착하는 것 같았다.


‘어디 보자... 아, 종류가 많네’


원래 같았으면 가성비가 가장 좋은 옵션을 택하려고 머리를 굴렸을 텐데, 그냥 가장 비싸고 빨리 가는 스카이라이너를 택했다.


최대한 감성적으로 멍을 때리기 위한 하루일정을 선택하는 데 에너지를 쏟기 위해서는 이런 부차적인 것들은 단순하게 정해버리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2만 원 남짓한 돈을 소비한 대가로 쾌적하고 빠르게 도쿄 시내에 도착하고 난 뒤 문득 여행에서는 시간이 돈이다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하마터면 몇 천 원을 아끼려고 불편한 열차 안에서 몇 십 분을 추가로 앉아있을 뻔했다.


골목길 미로 안의 숙소


숙소는 근처의 Machiya역에서 1.2km 떨어진 곳, 심지어 구불구불한 골목길 미로 한가운데에 있었다. 수없이 나오는 갈림길을 놓치지 않고 제대로 선택하려면 구글맵에 시선을 고정하고 걸을 수밖에 없었다. 갈림길 하나 지나치고 파란 하늘 아래로 지나가는 자전거와 기지개 켜는 고양이한테 눈길 한번 주고, 다시 갈림길이 나오면 구글맵을 쳐다보며 걷다 보니 어느새 겨우 숙소에 도착했다.


‘그래도 며칠 다니다 보면 익숙해지겠지?’



주인아주머니는 연신 멀리서 오느라 고생했다며 나보다 가녀린 손목으로 큼지막한 나의 캐리어를 번쩍 들어 올려 방 안까지 옮겨주셨다.


“여기 골목이라 찾아오기 어려웠을 텐데요.”


동행 없이 혼자 외국에 나와 말없이 지낸 지 겨우 반나절, 한국말을 하는 사람을 먼 타지에서 만나니 괜히 목청이 뚫리고 반가운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혼자 있고 싶다더니만 벌써 심심하네.’


윤기가 반질한 피부에 동그란 회색 귀걸이를 한 아주머니는 연신 미소를 지으며 집안을 보여주셨다.

20대 시절이었던 1996년도에 결혼을 하면서 일본에 건너온 뒤로 쭉 일본에 사셨다는 아주머니는 요즘에 가끔 한국에 나오면 많이 달라졌다며 세월을 실감한다고 하셨다.


“아가씨는 주로 어디를 둘러보려고 해요?”

“저 이번에는 혼자 와서 미술관이랑 카페나 마음껏 둘러보고 가려고요.”

내일부터 일본 미술관을 둘러볼 거라는 말에 아주머니의 눈이 한껏 동그래졌다.

“어머, 우리 아들이 모리 타워에서 일하거든요. 지난번에 아들이 준 모리 미술관 티켓을 가지고만 있다가 까먹고 그냥 안 갔었는데. 아가씨는 그림에 관심이 많은가 봐요. “


아주머니와 작은 담소를 나누고 나니 반나절의 적적했던 기운이 사르르 사그라들었다. 이런 나를 보면서, 나는 혼자 있고 싶어 하지만 말을 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 어느 정도의 수다력이 있는 사람인가 싶었다.


9월 중순이 훌쩍 지났음에도 두피가 따가울 지경이었던 일본의 햇살. 더위에 녹아내린 체력을 시원한 방 안에서 보충한 뒤 오니기리 한 덩이로 채웠던 배가 다시 꼬르륵거릴 즈음 아사쿠사 거리로 나갔다.


숙소 동네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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