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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숲 Sep 09. 2020

05. 코로나19로 고립되어가는 노인들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셨다

코로나19로 더욱 고립된 독거 노인 분들


이모 할머니의 치매 증상이 심해졌던 또 다른 이유는 코로나19로 집에서 혼자 계시는 시간이 많아졌기 때문이었다.


평소에 할머니는 평소 5시에 일어나 간단한 집안일을 하고 아침을 일찍 먹었다. 매일 오전 8시쯤 미사를 드리러 성당에 가셨고, 오전 11시에는 노인복지관에서 준비해주는 식사를 하러 복지관에 가셨다. 독거 중이신 노인 분들과 다같이 점심을 먹고, 양로원이나 복지관 앞 정자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신다. 그렇게 담소가 끝나면 오후에는 복지관에서 운영하는 체조나 텃밭 프로그램을 하기도 하고, 가끔씩 복지관에서 야유회를 가기도 한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우리 가족과 주일 미사를 드리고 점심을 같이 먹었다.


그러나 코로나 19가 발병하자 복지관도 문을 닫았고 성당도 문을 닫았다. 노인복지관은 질병관리본부의 지침으로 7개월이 되어가는 현재에도 프로그램이나 식당을 열지 않고 있다. 점심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시락 배달로 대체되었다.


고립감과 외로움은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는다. 할머니는 동네의 어느 노부부 이야기를 하신다. "남편이 중풍에 걸려서. 휠체어 밀어주며서 산책 하고 돌아다니고 그랬는데. 몹쓸 병이 돌고나서 나가지고 못하고 방에만 있고. 그러다가 얼마 안되어서 죽었잖아."


덤덤히 말하는 할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안좋았다. 코로나19가 한창 심각했던 2월, 3월경에는 집 밖으로 나오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다. 9월인 지금 방역 조치가 2.5 단계로 격상되어서 사회적 거리두기는 다시 강화되었다.


나도 일을 쉬면서 집에만 있게 되었는데, 저녁에 만나는 남편 외에는 사람들을 안만나니 외롭고 우울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 외로움을 떨쳐내기 위해 가끔씩 가족들을 보러 가야했다. 그 노부부도 그랬던 걸까. 집 안에만 갇혀서 외롭게 생을 마감하셨던 걸까.


고립감으로 할머니의 치매 증상은 심해졌다.


그 시기 할머니도 혼자 티브이를 보는 시간이 많았으므로, 자연스럽게 코로나를 무서워하며 집에만 있게 되었다. 독거 노인들은 사회적 거리두기 안에서 고립되어 갔다. 2월~3월 경 모든 사회적 관계가 마비되었을 즈음 할머니의 치매 증상도 심해지셨다. 혼자 있는 것이 우울함을 만들었고 우울증은 치매 증상을 악화시켰다.


나는 건강 때문에 회사 일을 관두고 나서야 할머니를 가까이에서 챙길 수 있었다. 오랜만에 찾아뵌 할머니는 섬어를 많이 했고, 기억을 잃어버렸으며, 있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며 분노를 터뜨렸다. 가족들에게, 이웃에게 물건을 가져갔다며 폭언을 하시기도 했다.


평소 할머니를 돌보는 일을 도맡았던 엄마(조카)는 폭언에 지쳐버렸다. 할머니의 건강만큼 엄마의 건강도 걱정되어 내가 할머니 일을 맡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평소 다니시던 노인복지관이 건강보험공단이나 치매센터와 연계가 되어있지 않아, 장기요양 등급 신청을 알아보고 주간보호센터를 알아보는 일까지 혼자 찾아봐야했고,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당사자가 병원을 오가며 치매 진단을 받고 공단에서 등급 판정을 기다리고, 보호센터를 알아보는 몇달 간의 시간 동안에 적절한 지원을 받지 못하여 치매 증상이 악화될 수 있는 부분은 아쉬웠다. 특히 코로나19로 복지관, 노인정 등이 모두 폐쇄되었기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며 증상이 악화될 수 있는 처지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치매는 몇 달 만에도 악화될 수 있고, 할머니의 경우에는 약물만으로는 증상이 늦춰지지 않았다.


등급을 받았지만, 사용은 못하다


마침내 긴 기다림 끝에 할머니는 인지지원 등급을 받았다. 그러나 할머니가 낮시간 동안 받을 수 있는 인지지원 프로그램 이용을 완고하게 거부해서 도움을 받을 수가 없었다. 할머니는 치매 증상으로 의심과 변덕이 심해지셨고, 자신을 요양원에 보낸다고 생각하여 거부하셨다.


복지관이 문을 닫아서 인지지원 프로그램을 여는 곳은 요양원, 주간보호센터 이용이 가능한데, 코로나19 때문에 사람들이 모이는 곳을 이용하시도록 할머니를 설득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경우 어떻게 해야할지 아무도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다. 급하게 치매예방센터에 전화를 돌리며 방문 인지지원 프로그램이 있는지 알아보았지만, 그런 건 없다고 한다. 또 인지지원 등급의 경우엔 재가 요양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지금도 할머니는 모든 사회 활동이 정지된 채로, 약물 치료만을 받고 계신다.


그동안의 일들로 엄마와 나는 환자 돌봄을 떠맡게 된 사람의 고통이 이해가 되었다. 그런 사람들은 내 주변에도 있었고, 어디에나 있다. 병원에만 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보통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은 집안일을 하는 며느리의 몫이 되거나 독신 자녀의 몫이 되어 한 사람이 도맡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은 한 사람의 몫이 되지 않도록, 같이 분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그러나 가족들이 흩어져 생활하거나 직장을 다니는 경우가 많아 분담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장기요양 제도가 있어서 다행이지만, 실제로 경험해보니 적절한 돌봄을 받기는 쉽지가 않았다. 특히 코로나의 상황에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서 답답한 상황이 많았다. 치매 환자 돌봄을 떠맡은 가족들이 모두 사회적인 돌봄을 원활히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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