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연주 Mar 04. 2020

집에 콕 박혀

나를 돌아보는 시간


우리나라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의 영향권에 든 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다. 최근엔 확진자가 급증하였고 매일 휴대폰으로 최소한의 외출을 권고하는 재난 문자 알람이 오고 있다. 많은 회사들이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학교들은 개강을 늦추고 있다. 북적이던 길과 카페, 식당도 한산하다.


나 역시 요 며칠을 집에서만 머물렀다. 나는 본업이 배우라 작품을 하고 있지 않을 땐 집에 있는 시간이 보통의 사람들 보단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름대로  촬영 없이 지내는 동안은 하고 싶었던 것들을 하고 배우고 싶었던 것들을 배우고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며 바쁘게 살아간다. 요 몇 달간은 요가 자격증 공부로 일과를 보냈다. 자격증은 지난주 수료를 마쳤고 수련을 이어가려던 요가센터는 다른 기관들처럼 COVID-19 영향으로 휴관을 하게 되었다. 친구들과의 약속들 역시 COVID-19가 조금 수그러들 때 만나자는 합의가 이뤄져   여느 나의 평범한 날들과는 다르게 아무런 일정 없이 집에만 콕 박혀 있은지 며칠째이다.  


아무 일 없이 아무 일 안 하고 아무 사람을 만나지 않는 하루를 보내고 있는 나는 하루 종일 SNS를 뒤적이기도 하고 재밌다는 드라마를 찾아서 보기도 하고 밀렸던 넷플릭스를 보고 좋아했던 책을 다시 꺼내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렇게 약간의 고립된 상태에서 하루를 보내고 있자니 스멀스멀 어떤 질문들이 내 마음의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내가 나에게 끊임없이 던져온 질문이자 끊임없이 회피해온 질문들.

나는 누구고
무엇을 쫒아 어디로 가는가



(Where Do We Come From? What Are We? Where Are We Going?  .Paul Gauguin.1897-1898)

고갱의 대표작 중 하나인 ‘우리는 어디서 왔고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제목의 작품만 봐도 알 수 있듯 내가 가지고 있는 질문은 나만의 궁금증이 아닐 것이다. 수백 년 전부터 아니 인류의 문명이 시작하면서부터 의식하고 있든 의식하지 않고 있든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간직해 온 물음일 것이다. 그 질문에 대해 예술로 문학으로 과학으로 삶으로 질문을 구하고 답을 구해왔을 것이다. 나는 이런 물음들이 떠오를 때면 ‘나는 정의할 수 없는 사람이야. 나는 좋아하는 게 많고 그때그때 흥미를 쫒아 어디로든 갈 수 있어.’라고 스스로 대답해왔다. 그럴듯하고 멋있어 보이는 유연함을 가장한 회피다.


다른 궁금한 것들은 잘 파고들면서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왜 파고들지 않을까. 정의 내리는 것의 무용함을 안다는 이유로 정의 내리는 것들을 꺼렸다. 무엇이든 바뀌니까. 이러한 생각 때문에 나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으려고 했을 것이리라. 나에 대해 고민해서 나를 정의 내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정의 내리지 않는다고 해서 방향을 정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쏟아지는 콘텐츠들과 sns의 사진들 , 쌓아놓은 책들에 둘러싸여 며칠간 집안에서 있던 나는 나의 질문들을 탐구하고 답을 구하기로 결정했다.


괴테가 그랬다지. ’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 네가 자주 가는 곳, 네가 읽는 책들이 너를 말해준다.’고. 2020년에 괴테가 살았으면 책 대신에 콘텐츠라는 말을 넣었을 것이다. 지금 보는 글과 사진과 영상이 , 매 초 만들어져 쏟아지는 수많은 콘텐츠 중에서 내가 선택하여 보는 그것들이 나일 것이다. 하지만 방향을 정하지 않는다면 최초의 나의 선택의 의도는 사라지고 점차 자극적인 콘텐츠를 추천하는 어느 플랫폼의 알고리즘과 같이 나의 선택들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지도 모른다. 다른 방향으로 흐르는 것이  한편으론 흥미로운 것들을 가져다줄 수도 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만나는 즐거운 순간들 또한 인생의 즐거움이니까. 나 또한 강 위를 부유하는 낙엽처럼 나의 인생이 삶이라는 강 위에서 부유하며 흘러가는 것을 즐기기도 하니까.


하지만 나의 본질과 본성이 가리키는 방향을 안다면 방향을 잃지 않고 잘 간다면 산티아고의 순례길을 걷는 여행자들처럼 내가 가고 있는 길 위에서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여러 분들을 만나 동행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또한 예상치 못한 곳에서 예상치 못하게 만나는 즐거운 순간들이 아닐까. 이러한 이유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과 관심 있는 것들과 내가 살아가고 싶은 방향을 공유하고 싶다. 투박한 글솜씨지만 차근차근 공유하다 보면 나의 마음을 알아보는 나와 비슷한 방향으로 열심히 걸어가고 있는 여러분을 만나게 되리라 기대한다.

Santiago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