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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로예 Jul 02. 2023

민들레 씨앗처럼 희망을 전하는 최인 기타 리사이틀

리뷰 - 최인 기타 리사이틀


민들레는 내게 남다른 의미가 있는 꽃이다.  


민들레를 "후우우"하고 불어서 동생이 태어났기 때문이다. 어릴 적 민들레를 주제로 한 동화를 보고 '민들레 씨앗을 한번에, 남김없이 다 불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고 동생이 태어나게 해달라고 어머니 앞에서 민들레를 불며 수년을 빌었다. 그렇게 외동딸의 간절한 소원은 기적적으로 이뤄졌다.  


매년 봄마다 민들레 꽃과 씨앗을 마주하면 절로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하나뿐인 동생을 태어나게 한 선물의 꽃이기 때문이다. 비록 나는 ENFJ고 동생은 ISTP라 MBTI로 따지면 완전히 정반대인 자매지만. 나는 18년 전 민들레 씨가 날아가 최고의 행복을 안겨준 그 기적을 기억한다.   



지난 6월 24일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에서 열린 최인 기타 리사이틀의 주제도 민들레였다. 최인은 민들레가 높은 곳보다 낮은 곳에 더 많이 피어있음을 발견하고 "From here to everywhere"을 작곡했다. 우리 사람들도 마치 민들레가 되어 더 넓은 곳에서 좋은 영향력을 펼치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클래식기타와 바이올린 이중주 초연을 올린 것이다. 


그가 마지막 곡 "From here to everywhere"를 연주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상상에 잠겼다. 민들레 씨앗이 하늘 높이 날아가 바람을 타고 거세게, 멀리멀리, 불규칙한 궤도를 그리며 날아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굳센 힘이 있지만 섬세하게 휘어지는 바이올린 활과 부드럽고 강단있는 클래식 기타의 속도감이란.. 공중에 떠있는 민들레 씨앗의 기분을 상상하게 했다.  


어디로 갈지, 어디에 떨어질지, 어디에 떨어져서 어떤 풍경을 만나게 될지 모르지만, 그래도 일단은 바람을 타고 나아간다. 그렇게 도착한 미지의 땅에서 민들레는 씨앗을 내리고, 뿌리를 내리고, 햇빛과 물을 만나 조금씩 높은 줄기로 높게 뻗어나간다. 마치 따스한 햇살이 민들레 꽃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듯, ‘from here to everywhere’는 그렇게 끝맺는다.  




이번 최인 기타 리사이틀은 전반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공연이었다. 공연의 첫번째 곡 '숲'에서는 나의 할아버지가 떠올라 자연히 눈가가 촉촉해지기도 했다. 1년 전 ‘사랑하는 나의 느티나무께’라는 글로 할아버지께 편지를 쓴 적이 있다. 작년 팔순 잔치때 이 글의 일부를 직접 읽어드리기도 했다. 나는 할아버지를 든든한 '나무'로 비유했고, 연약한 생명들에게 나무는 삶의 동앗줄이라며 할아버지는 나의 굳건한 느티나무라고 말씀드렸다.  


"숲"을 연주하는 기타리스트 최인과 바이올리니스트 정진희의 선율은 세상의 많은 것을 온전히 감싸안는 나무를 떠올리게 했다. 동시에 작년에 할아버지께 편지를 썼던 나의 마음이 불현듯 떠올랐다. 최인은 "자신의 자리에서 아름답게 서 계신 분들이 많다면 푸른 숲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으로 이 곡을 쓰셨다고 한다. 기타리스트 최인과 내 심상의 방향이 거의 비슷함을 느끼고 더 깊이 마음이 울렸다.  


눈을 감고 오로지 청각만으로 바이올린과 클래식기타의 목소리를 들었다. 숲 속을 거닐며 새가 우는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바람에 살포시 흔들리는 잎들의 움직임도 볼 수 있었다. 색깔은 진한 초록색. 울창한 숲에서 생명력이 넘치는 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이 곡은 가장 처음에 시작하는 곡이자 앵콜의 마지막 곡이었다. 왜인지 두번의 연주에서 모두 눈물이 차올랐다. 차마 언어로는 형용할 수 없는 감각들이, 지금 나는 따뜻하게 위로를 받고 있다고 알려준 것 같다. 




공연장에서 8곡을 감상하며 마치 ‘동물의 숲’에 놀러온 느낌이 들었다. 어린시절 닌텐도 DS의 '동물의 숲'을 하면 아기자기한 동물 캐릭터들과 한 마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때때로 혼자 박물관에 가서 비둘기 아저씨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힐링을 하곤 했다. 어느새 어른이 되어버려 훌쩍 시간이 지난 지금, 문득 최인 기타 리사이틀이 ‘어른판 동물의 숲’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평온하고 행복한 얼굴로 기타를 연주하는 최인과, 그 옆에서 자신이 가진 실력을 아낌없이 보여주는 평온한 얼굴의 바이올리니스트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아, 나는 마치 그때 그 시절 커피를 나눠주던 동물의 숲 ‘비둘기’ 사장님 앞에 앉아있는 것 같다고.  


공연 내내 최인 기타리스트가 정말 순수하게 웃으며 연주하는 걸 보았다.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기타에 대한 사랑, 순수하게 기타로 연주하는 그 행복을 나는 보았다. 인생 처음 그 분을 마주했지만 왠지 그 분의 어릴 적 미소와 웃음을 가늠케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무언가를 사랑하는 사람의 미소였다. 세상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풍요의 미소였다. 사랑하는 것을 함께하고 있다는 풍요. 그 웃음의 이미지로 기억된 이번 공연은 내게 너무나 큰 기쁨을 주었다.  


8곡 모두 최인 기타리스트가 섬세하게 설명을 해준 것도 소소한 재미였다. 안내 책자에 나와있는 해설 외에도 그가 직접 경험하고 느낀 바들을 진솔하게 나눠주었다. 이번 공연에서 민들레와 숲 외에도 산과 바다, 서예, 석풍수, 바람과 나, 섬, 기도를 주제로 곡을 연주했는데 그는 일관되게 자연과 아름다움을 사랑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쉽게 지나칠 수도 있는 자연과 주변의 풍경을 서둘러 보지 않고 찬찬히 음미하는 여유가 느껴졌다. 

 

공연은 끝났지만, 여전히 최인 기타리스트의 음악은 내 마음 속에서 재생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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