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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rrrr Apr 13. 2020

관계후유증_요즘은 잠수가 트렌드라며?

천방지축 어리둥절 빙글빙글 돌아가는 짱구 같은 내 인생

최근 잠수이별을 당했다. ㅎ ㅏ!ㅋㅋ


몇 번의 길고 짧은 관계들을 정리하고 정리당하면서(내가 손절'했다'쳐도 사실상 거의 반강제로 '당하는' 쪽에 가까웠던 것 같다) 인간관계에 더 이상 미련이 없어졌다. 아니, 이미 알고 있었다. 타인과의 안정적인 관계에 대한 희망은 없다는 것.

인간은 너무나 감정적인 동물이고 툭하면 주변 상황에 휘둘려 마음이 변하기 십상이다. 그런데 어찌 2~30년을 생면부지로 살던 남녀가 단순히 '사랑'이라는 허상, 마치 신기루 같은 이상에 매달려 언제까지고 서로에게 변함없이 스윗할 수 있겠는가? 어불성설이다. 부모 자식 간도 그렇게 안 되는데.

아무리 요즘 대부분이 좋은 부모 밑에서 올바른 가정교육과 사랑을 받고 자란, 고등교육까지 마친 겉보기엔 멀쩡한 사회구성원들이라 할지라도 말이다.(뉴스만 봐도 인류애가 매일매일 뚝뚝 떨어진다) 제 밥벌이 제대로 하는 멀쩡한 어른들 이래도 연인관계가 지속되면 어딘가 나사가 하나씩 빠져서 이상하게 구는 때가 존재한다. 물론 나포함. 그래서 특히 나의 경우, 관계가 지속되면 자기혐오도 동반된다. 고통!

내가 일련의 관계들에서 얻은 결론은 어차피 끝날 관계들, 유지하는 동안만이라도 최선을 다하자! 후회 없이 잘하자! 아자아자!(?) 밀당? 그런 거 난 몰라~ 그런 거 할 시간에 한 번이라도 더 보고 싶다 말하고, 손 한번 더 잡는 게 내 인간관계의 모토였다. 동성 이성을 가릴 것 없이, 내가 필요하다면 최대한 맞춰가며 만났다. 음식? 음악? 영화? 기타? 등등? 다 맞췄다. 내 취향이 없는 편은 아니지만, 난 거의 올라운더에 가깝기 때문에 내가 맞추는 편이 훨씬 수월했다. 물론 내가 부처나 예수도 아니고 가끔 까탈스러워질 때도 있었지만 대체로는 웃으며 넘겼다. 그럴 수도 있지 뭐! 하며. 어차피 인간이란 이해할 수 없는, 아니 이해하려는 게 무의미한 거랬어 우리 엄마가.

이런 나의 태도에 결국 기고만장해지는 거만한 놈이 있는가 하면, 같이 배려를 해주는 착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에브리띵 이스 오케이도 계속되면 너무 재미없는지? 다들 뒤통수를 치네ㅋ 이 새끼들이ㅋ 매사 오케이라 오히려 의견 개진이 부족하여 적극성이 떨어지는 것 같다(그럼 내가 낸 의견 반대를 하지 말던가 까탈스러운 놈아), 본인을 안 좋아하는 것 같다, 열정이 없다,,,라는 개소리로 가스라이팅까지 하네?ㅋ 에라이 평생을 허상 속에서 허우적대다 죽을 자존감 바닥인 놈들아!

길지 않은 인생살이지만, 관계의 끝에서 얻는 교훈은 '아이고 다 부질없다'였다. 더불어 그 어느 누구도(심지어 같은 핏줄이래도) 내 영혼을 온전히 채워줄 존재는 나를 제외하고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긴 인생살이 가끔은 즐거운 이벤트도 터져줘야 좀 버틸 맛이 나지 않겠는가? 덕질도 여행도 한두 번이지. 다신 사람 안 만날 거야!라고 외치다가도 고통을 무릅쓰고 진흙탕에 다시 두 발을 내던지는 나 자신을, 이런 늦은 밤 나 스스로 가여워해 주는 수밖에.


라떼는 말이야, 잠수? 그런 건 수영장에서나 했어!


돌이켜보니 나도 20대 초반 대학생 때는 종종(사실 그때는 썸이란 말도 없었다) 썸남의 작은 것 하나에 깨서 일방적으로 잠수를 타기도 했다. 미성숙했던 나 자신이여,,, 이렇게 배우며 크는 거지!(자신에겐 한없이 관대한 편)

하지만 30에 다 가까워져서도 여전히 잠수라니? 아직 세상이 발전을 못했나? 아니 인간이 퇴보하는 것인가? 그것도 아니면 코로나가 세상을 뒤흔들어놔서 그런가? 자고로 이립(而立), 이젠 엄마 젖 떼고 자립해서 어른 소리 들을 나이잖아?! 물론 내가 어릴 때 본 30대의 아이콘 삼순이가 이제 더 이상 노처녀가 아니듯(심지어 그녀도 이젠 나보다 동생이다) 요즘 20대 후반~30대 초를 어른이라고 하기엔 어패가 있다. 같이 어린 처지에 이해해줘야 하겠지만... 그래도 서로 통성명도 하고 어디 살고 무슨 일 하고 양친과 형제들 건강한 지도 알고 어? 그럴 정도면 적어도 직장동료 정도나 그 이상은 되지 않냐? 근데 잠수는 좀 아니잖아? 미안하다란 말도 안 바란다, 이제 우리 전처럼 남남이다~ 안녕! 연락하지 말자! 정도만 해줘도 좋을 것을? 괜히 코로나 걸려 뒤졌나 확진자 리스트 찾아보게 하지 말라고~~~!!!!! 근데 요즘은 10의 8할이 잠수이별라더라. 먼저 잠수타는 새끼가 인싸인가? 이런 게 힙한 건가? 그냥 덜 큰 거 아니고? 포장해주기도 싫다. 그저 본인 입 더럽히기 싫어 피해버린 비겁한 새끼!

다시는 절대 남 때문에 상처 받고 싶지 않았지만, 허무하게 시작한 만큼 허무하게 끝나버린(피를 나눈 가족 외엔 모든 관계가 다 허무하다...) 최근의 관계 때문에 결국 또 상처가 생겨버렸다.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슬프지도 않아... 따위의 인소 소설이나 청춘영화 대사 같은 소리는 않겠다. 어쨌든 상처는 상처니까.

이런 고통의 악순환 속에서 든 근본적인 물음은 인간은 왜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가? 왜 이토록 감정의 허기를 느끼는 연약한 존재인가 하는 것이다. 한동안 안전하게 나 자신을 꽁꽁 잘 싸매다가, 불현듯 무언가에 씐 것 마냥 세상에 나왔다가 요즘 젊은이들의 이별 방식에 데고 나니 이렇게 또 울컥! 울분이 터진다.




이별을 경험할 때마다 감정 변화들을 모조리 글로 적어뒀다. 계속 얘기하면 할수록 슬픔도 좀 줄어들고 자기객관화가 돼서 자주(?) 쓰는 방법이다. 나중에 '자니...?'(해본 적 없지만)따위 하고 싶어 질 때 읽어보면 추억미화당하지 않고, 정말 다시는 사람 만나지 말아야지! 하고 스스로를 다잡을 수 있기 때문에.(근데 왜 자꾸 또 기어나가니 멍청한 나 자신아...) 그중 몇 가지 메모들을 긁어왔다. 내일의 나여, 더욱 강해질지어다!


※앞의 숫자는 결코 헤어진 사람 수가 아니다

01. 예기치 못한 모든 상황에서 단 한 번도 위로받지 못하고 안심할 수 없었다. 함께였지만 함께여서 힘이 되기보다는 내내 눈치만 보고 자책하고 내 탓 당하느라 우울감만 쌓이고 자존감만 낮아졌던 시간들. 이젠 안녕이다.

02. 예전에 당신은 정말 날 아껴주고 가장 날 사랑해주는 사람이었어요. 하지만 요즘은 항상 나를 예의 주시하며 행동거지 하나하나를 트집 잡으려 안달 난 상사와 있는 것 같아요. 연인은 서로를 보듬고 흠도 안아주는 것이라 생각하고 나 나름 그러려고 노력했어요. 당신은 그렇게 느끼지 못했다면 미안해요. 모든 일이 이렇게 된 원인이 다 내게 있다고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인이라면 내게 한번 더 이해와 배려의 기회를 줄 수 없었나요? 미안하다는 말조차 지겹다고 내쳐버리는 당신에게, 말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이라며 마치 실적을 강요하는 지독스러운 상사 같은 당신에게, 난 지례 겁먹어 또 우물쭈물하다 실수를 연발하고 말아요. 이젠 더 이상 이런 상황에 대해 당신을 탓하지 않아요. 우린 둘 다 서로를 이해하기엔 많은 일을 겪었어요. 상황에 지쳐 서로를 좋아하는 마음까지 식어버리게 된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에요. 당신도 그렇겠지만 나 역시 실망을 넘어서 확신을 얻었어요. 당신은 더 이상 날 타인보다도 존중하지 않는다는 것.

03. 왜 더 이상 나 없이 아무것도 못하게 되었다는 말을 마치 달콤한 말처럼 듣고 행복해했을까? 멍청하게도. 그건 그저 값싼 개인비서를 잘 두었다는 농담에 지나지 않는데. 오히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내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집으로 돌아가야겠다 결심하니, 신기하게도 너의 그 어떤 언행에도 더 이상 상처 받지를 않네. 마음속 답이 정해져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다. 그저 너와 같이 있어야만 하는 사실이 괴로울 뿐이야. 잘 봐, 내가 얼마나 일을 똑 부러지게 잘하는 직장인인지.

04. 네가 내게 온갖 짜증을 낼 때마다 내 존재가 한없이 하찮아짐을 느낀다. 나는, 왜, 여기 있을까. 너와 함께 있어서 지금 이 모든 풍경이, 음식이, 순간들이 힘들고 재미없고 무가치하게 느껴져. 한때 서로가 사랑할 때 네 뺨을 만질 때의 그 느낌, 너에게 꽉 안길 때의 그 안정감... 그 모든 게 너무나 그립지만, 이제 더 이상 그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걸 1분 1초 깨달을 뿐이네. 네 싸늘하고 짜증 섞인 눈빛 앞에서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어. 빨리 헤어지자.

05. 왜 이제 와서 그런 허튼소리를 하지? 아무 힘도 의미도 없는 당장 너 스스로를 위한 무의미한 사과 따위를 할 거면 왜 그때의 나를 그렇게 고통스럽게 내팽개쳐둔 건지? 무시당하고 아팠던 나를 왜 그때는 살피지 못했던 거야? 예전의 네가 아닌 걸 알면서도 그래도 그 옛날의 네가 아직은 그리워서 널 차마 다 떨쳐내지 못하는 내가 너무 한심스럽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걸 알아. 넌 충분히 날 잊겠지. 나도 그럴 거고. 그래도 그간 사랑했던 시간에 대해 예의를 갖출 수 없겠니.

06. 난 왜 멍청하게 과거의 그 사람을, 세상에 이제 없는 사람을 자꾸 기대하며 이렇게 울고 있는 걸까. 뭘 바라는 거니. 왜 마지막까지도 난 그 사람에게 칼자루를 쥐어주려고 하는 걸까. 이래도 저래도 상처는 상처인 것을. 미련하다.

07. 어차피 같은 결말, 또 아플 것을 알면서도 네 생각에 마음이 일렁이는 것을 다독일 수가 없다. 매일 밤, 새벽, 문득, 어느 순간순간마다 참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진다. 이젠 그 괴로움의 이유조차도 모를 지경이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다 털어내 질 텐데. 시간이 참 안 간다.

08. 우린 다시 사랑하지 않는다. 이제 더 이상 서로가 죽을 수 없는 이유가 아닌 건 분명하잖아. 한때 나의 깊은 우울을 끝내준 것은 따뜻하고 무조건적인 사랑이었다. 과거의 네가 내게 줬던. 네 우울을 끝맺을 열쇠는 뭘까. 그것 역시 사랑이라면, 이젠 내가 줄 수가 없으니 우린 끝내는 게 맞아.

09. 끝까지 스스로를 변호하느라 마지막 염치조차 잊은 그 두꺼운 낯짝을, 한때나마 사랑했다고 생각했던 내가 미친년이었다. 네 얼굴을 갈겨버리고 싶었지만 동시에 네게 손끝 하나 대기 싫을 만큼 혐오스러웠다. 그 새끼와 갔던 곳, 좋은 풍경들, 기억들... 다 한순간에 최악으로 휴짓조각으로 만들어준 ***. 깨끗하게 잊어버리라.

10. '속았다'는 생각에 한없이 괴롭다. 매 순간순간 이렇게 더러운 기분을 선사해줄 줄이야. 내가 진짜 사랑이란 것을 한 적이 있었나?

11. 이유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저녁 내내 들었지만 뭔 이유가 있겠냐. 그냥 아닌 거지. 그래 애썼다 불쌍한 우리 존재들. 아 그냥 인간이란 거 자체가 피곤하다. 타인 때문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거, 이젠 못하겠다. 나 한 몸 건사하자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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