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32
제 어렸을 적 저희 친정아버님은 볼일이 있으셔서 읍내에 가시는 날이면 막내딸인 저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먼지 풀풀 나는 시골길에서 버스를 타고 까만 아스팔트가 깔려있는 읍내에 도착하면 항상 정해진 코스처럼 제일 먼저 목조건물 이층에 있는 ㅇㅇ반점으로 데리고 가서 짜장면을 사 주셨습니다.
목조 계단을 쿵쿵쿵 올라가면 짜장면 먹을 생각에 발소리와 함께 심장소리도 따라 울립니다.
물과 단무지가 나오면 타닥턱 타닥턱 하고 주방에서 면 뽑는 소리가 들립니다.
빨리 먹고 싶어 면 뽑는 소리가 빨리 멈춰지길 입맛을 다시며 기다렸던 시절이 떠오릅니다.
제가 근무하는 요양원에선 한 달에 한 번씩 짜장면을 배달시켜 어르신들께 대접해 드립니다.
주방 조리사 선생님의 음식 솜씨가 훌륭해서 짜장소스도 맛있게 하시지만 날을 정해 중국집에서 배달시켜 드립니다.
짜장면 시키는 날 은 어르신들 모두 거실로 나와 철가방 싣고 달려온 오토바이를 보시며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십니다.
"짜장면 왔다"제비꽃님이 말씀하십니다.
어르신들은 짜장면을 드리고 우리는 불지 않는 볶음밥이나 짜장밥을 시켜 어르신들 수발 끝나고 먹을 수 있게 한쪽 옆에 따로 놓아둡니다.
배달온 짜장면을 커다란 양푼 넣어 한꺼번에 비벼서 어르신들 상황에 맞게 서너 번 자르거나 잘게 잘라 수저로 드시게끔 해 드려야 하기에 몹시 분주합니다.
또 다른 음식과 달리 짜장 소스는 왜 이리저리 잘 흘려지고 묻어나는지 휴지를 달고 따라 다녀도 어르신들 앞치마엔 짜장소스 범벅입니다.
덩달아 어르신들 얼굴도 짜장 소스로 마사지합니다.
그렇게 짜장면 파티가 끝나고 한숨 돌리면 우리들 식사가 시작됩니다.
식당에서 먹을 때와 달리 우리들 밥은 다 식어 그리 맛있진 않습니다.
그래도 어르신들이 아주 즐겁고 맛있게 드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 그 맛으로 먹습니다.
한쪽 귀퉁이 작은 식탁에서 습기 가득 찬 랩을 벗겨 내는 우리들도 행복합니다.
한참을 수다 떨며 맛있게 먹고 있는데 제비꽃님이 화장실 가시다 말고 우리들의 밥상을 보시고 한 말씀하십니다.
"늙은이들은 국수 주고 지년들은 밥 처먹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