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어난 순간부터 교회에 다닐 운명이었다. 교회에서 만나 결혼하신 부모님 사이에 태어났으니, 나에게 선택권이 있을 리 없었다. 흔히 말하는 ‘모태신앙’으로 평생을(그래봐야 23년이지만) 교회에 다녔다. 일요일이면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교회에 나갔고, 방학 시즌만 되면 김화에서 열리는 수련회에도 꼬박꼬박 참가했다. 기독교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나는 중, 고등학교 모두, 그러니까 나의 청소년 시기 전부를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보냈다. 예배, 성경 수업, 매일 아침 성경을 읽는 일은 그저 일상이었다. 그러니 내 모든 성장은 기독교 범위 안에서 이루어졌다 해도 아주 틀린 말이 아니다. 단 한 번도 내 생각은 기독교 울타리를 넘어본 적이 없다.
15살 무렵, 캐나다 어학연수를 하던 당시 보았던 동영상이 떠오른다.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행인에게 “창조론과 진화론 중 무엇을 믿는가?”라고 질문을 던지며 인터뷰를 진행하는 영상이다. 진화론을 믿는다고 답한 사람들에겐 무차별적인 질문 공격이 가해진다. “신이 눈에 보이지 않아서 믿지 않는다면, 진화의 과정은 눈으로 본 적이 있는가?”, “진화론이 맞는다면 지금은 왜 아무런 생명체도 진화하지 않는가?” 전문가가 아니라면 쉽게 답하지 못할 질문이 마구 쏟아진다. 쩔쩔매는 진화론 옹호자를 보며 희열을 느꼈다. ‘내가 믿는 기독교가 진리겠구나.’ 시간이 지나 머리가 자라자, 그때의 희열은 부끄러움이 되었다. 만약 누군가 내게 창조론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지 묻는다면, 나는 그 자리에서 꼼짝 얼어붙고 말 거다. 하나님은 그럴 능력이 있다는 답변 외에 아무런 이야기를 할 수 없을 테니.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굳건하다고 믿었던 나의 신앙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철근을 누락하여 지은 부실 공사로 건물이 쉬이 무너지듯, 검증을 거치지 않은 나의 텅 빈 믿음은 세상의 논리 앞에서 좌절당했다. 어린아이 같은 믿음이라 여겨왔던 것이 맹신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의 고통을 뼈저리게 기억한다. 온실 속의 화초. 우물 안 개구리. 내게 어울릴 만한 표현이 즐비하다. 그러나 이런 좌절이 신을 부정하는 단계까지 이어지지는 못했다. 내 안이 절망감으로 가득했지만, 그 가운데 여전히 정의할 수 없는 무언의 확신이 남아있음을 느꼈다. ‘위기를 기회로’라는 말이 있듯, 나는 이 좌절감을 원동력으로 삼아 보고자 한다. 그동안 믿음이라 말하며, 실상은 외면하기 바빴던 여러 난제와 천천히 마주하고, 끈질기게 씨름해 보고 싶다. 마치 얍복강에서 하나님과 날이 새도록 씨름한 끝에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은 야곱처럼. 교회 밖의 삶을 살아본 적 없는 나이기에,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23년의 신앙을 부정해야 하는, 뼈를 깎는 고통의 순간이 찾아오겠지만, 그 끝에는 쉽게 부서지지 않는 다이아몬드 같은 단단한 믿음을 갖게 될 거란 확신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