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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naC Apr 29. 2020

작업치료사의 어느 하루

내가 아는 외로운 부자

몇 번의 stroke과 terminal cancer로 몸이 많이 약해진 어느 백인 70대 남자. 오래된 항암치료에도 불구하고 암이 뇌에도 번져 이젠 기억에도 문제가 생긴 환자.. 판단력이 약해지고 몸도 약해짐으로 인해 걸을 때 balance diffuculty와 debility의 이유로 잠시나마 재활을 받으러 왔다. 이번에는 유명한 사진기사로 일하면서 많은 나라를 여행하고 경험했던, 그리고 후엔 여행기를 쓰며 한때 '잘 나가던'환자의 얘기다.

이른 아침, 배 장기에 암으로 인해 수술을 하고 배에 작은 비닐 주머니를 달면 그곳에 진한 갈녹색의 물이 차진다. 큰 키에 그렇지 않아도 나온 배에 그것을 매고 뒤뚱뒤뚱 내 옆을 걷는다. 유명인들과 일을 해서 그런지 말하는 얘기마다 이름만 들어도 아는 여러 사람들과 일한 경험을 늘어놓는다. 어떤 한 얘기는 정말 산으로 산으로 가서 듣다 보면 도대체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 난 당연히 이해를 못하고 있고 자신도 왜 그런 얘기를 하는지를 잊고 있다. 그러고서 하는 말. ‘내가 누구 얘기하고 있었지? 생각나면 얘기해줄게.... ‘ 기억력도 아주 희미하다. 5분 전까지 하던 말을 또 반복한다.

치료시간의 시작은 매번 말다툼으로 연다. 치료를 가자, 안 간다, 왜, 그냥, 피곤하다'를 몇 번을 반복하다가 결국엔 못 이기는척하고 방에서 나온다. 게다가 사람이 왜 그리 꼬였는지. 내가 하는 말마다 문법이 틀렸다고 하느라 바쁘다- 참고로 그의 아내는 작가다. 그래서 자신도 책을 많이 썼다고 했다- 그러고는 내가 가끔 쓰는 말투가 참 지식 없는 사람이 쓰는 말이라고 공격을 한다. 그는 주위를 자주 본다. 집중력이 떨어져서 그런지 남들 야기를 듣거나 주위 환경을 보기에 바빠서 난 같은 질문을 몇 번을 다시 물어보고 해야 한다. 그 와중에도 주위 사람들 비판을 한다. 인종 비판은 물론이요 그 사람이 쓰는 말투나 문법에 비판, 그리고 남들이 하고 있는 운동이나 생긴 거까지... 그러면서 남들을 비웃느라 바쁘다. 그리곤 자신의 자랑을 놓는다. 자신은 운동도 잘했고 유명한 팀에 스카우트돼서 들어갈뻔했으며 일하면서 운동하면서 이긴 상도 많다고. 유명한 연예인들과 만난 이야기, 그들과 친한 이야기, 값이 비싼 선물들을 받은 얘기, 그리고 갖고 있는 재산과 비싼 물건들을 수백 개 갖고 있고 그중에 그냥 버리는 게 수두룩하다는 둥... 유언비어도 많이 쓰고 말도 안 되는 말을 지어내기도 했다. 자기는 아이큐가 천재라고 나왔으며 미국 정치인들이나 유명인들을 소리 내어 비판도 했다. 마치 자신이 그 사람들을 다 아는 것처럼..


처음엔 그냥 들었다. 말도 안 되지만 환자의 기분이 먼저라서 머리만 끄덕이다가 며칠이 지나니 더 이상은 듣기가 싫었고 화가 났다. 상대가 환자라서 그런 말을 하기 꺼려헀지만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그 환자에게 '당신은 왜 그렇게 다른 이의 대해 리스팩트가 업냐고. 그렇게 사람들 대하면 분명히 그런 취급을 받을 것이라고. 그러고 나선 그 사람이 정말 말도 안 되는 비상식적인 말을 할 때마다 난 참지 않고 내 생각을 말했고 그 사람의 말을 돌렸다. 그러면 그 사람과 나는 치료시간이 무슨 debate 시간이 돼버릴 때도 있었다. 목소리가 높아지다가도 그 환자가 어려워하는 task 나 운동들을 도와주고 어려워하는 task는 완성할 수 있게 이끌어주었다. 그러면 그 환자도 나와 말다툼을 하다가도 주어진 task 나 운동은 다 하고 있었다. 그 환자와 나의 이런 interaction 은 다른 치료사들도 알고 있었다.

그 후로 들리는 말. 그 사람이 다른 치료사들에게 나 같은 동양 여자애는 처음 봤다는. 대부분이 조용한데 자기주장을 그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 동양 여자애는 처음이라고. 이거... 좋아해야 해  말아야 해. 아 놔...


운동으로 그 사람의 에너지와 균형감은 그래도 조금은 나아진 거 같았다.  하지만 그 환자의 기억은 그리 좋아지지는 않았다.  게다가 기억이 좋지 않다는 것 자체를 깨닫게 해주는 것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렇기 때문에 치료사팀들은 그 사람이 Compensatory strategies를 사용하면서 생활에 문제를 덜어주는 것 또한 치료의 중요한 초점이 되었다.  

환자는 시간이 가면서 점점 말라 가는 얼굴이 좀 안돼 보이기 시작했다. 주말 후 월요일에 보면 얼굴이 더 핼쑥하여 보였다. 그렇게 친한 유명인사 한 명 안 오고 전화도 안 오고. 외로움의 모습이라고 해야 하나...

드디어 환자의 병원 마지막 날!! 와우!   하루 종일 정말 바빠서 잘 가라는 인사도 못하고 있었다. 하루 마지막 환자를 보려고 준비 중인데 저 멀리서 뒤뚱거리면서 두 손에 비닐 가방을 들고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여전히 같은 옷을 입고. 아마 집에 갖고 가려는 짐이 들어있는 비닐백였던거 같다. 아! 집에 가는구나!!!

그러나 왠지 또 시비를 걸 거 같은 기분이 들어서 난 또 뭔가 싶어서 짜증이 나려고 하는데. 그 사람이 하는 말에 진정 난 좀 놀랐다. 숨이 차서 하는 말—

'한동안 찾았다. 네가 나 가는데 인사도 하러 오지 않아서 내가 인사하러 왔다. 다른 애는 왔는데 넌 오지 않았다.  그동안 고마왔다’ 고.

정말 뒤통수를 맞은 거 같았다.  그 환자의 말이 고마왔고 걱정이 됐고 안타까웠다. 그 말을 한 후에 부인과 같이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뒷모습이 짠하고 슬퍼 보였다. 그 환자에게 잘 가라고 했다. 그리고 다신 오지 말라고! 좋은 뜻이라고...

이렇게 말해도 환자들은 안다, 그게 나쁜 뜻이 절대 아니라는 것을. 정말 미운적이 많았던 환자다. 그 사람으로 인해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고 퇴원 날을 많이 기다렸다.  

하지만 그날 난 기쁨보단 안타까움을 느꼈고 삶의 레슨도 하나 받았다. 병원에 있는 동안에 그 많은 유명한 이름들, 그 돈 많던 친구들은 하나도 그 사람 주위에는 없었다. 전화 한 통 온 걸 들은 적도 없다. 방에 들어서면 누가 왔던 흔적조차 없었다.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지는 몰라도 난 궁금했다. 저 사람의 젊었을 때 모습은 어땠을까. 지금은 이런 모습으로 나와 말싸움을 하고 있지만 돈도 많고 백도 있는 그 사람의 삶이란 어땠을까.


2 주라는 시간 동안 이 사람은 나에게 진정 건강이 그리고 주위에 사람들이 제일 큰 재산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알려주었다.  내 주위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지는 않지만 이런 일로 인해 난 그 사람들과 나눔에 깊이를 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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