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OC 미래유치위원회는 2032올림픽 우선협상 개최지로 호주 브리즈번을 추천했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언론은 2032남북공동올림픽은 물 건너간 것처럼 보도했다. 갑작스러운 IOC 발표로 인해 경악했고 평양선언에서 남북정상이 합의한 2032공동올림픽이 사실상 무산되었다는 해석도 일면 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2032 올림픽개최지로 호주 브리즈번이 최종 낙점되려면 향후 IOC 집행위원회와 총회를 거쳐야 하므로 남북공동올림픽의 꿈을 접기엔 아직 이르고 여전히 기회는 남아 있다. 지금부터라도 사력을 다해야 한다.
대한올림픽위원회가 발표한 것처럼 IOC가 서울평양을 제치고 브리즈번에 손을 들어준 이유를 '북한 리스크'로만 단정한다면 너무 안일하고 편의적이고 책임회피적 발상이다. 물론 평양선언 이후에도 한반도 평화의 시간이 지속되었다면 남북공동올림픽은 따놓은 당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한반도에 북한 리스크는 항시 존재하는 상수이며 남북이 공동올림픽을 유치하려는 목표는 북한 리스크를 줄이며 평화의 길을 만들려는 것인데 북한 리스크 때문에 올림픽 유치운동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은 지나치게 소극적이고 면피성 인식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오히려 올림픽 유치 과정은 북한 리스크를 줄이는 효과가 기대되므로 북한 리스크와 올림픽 유치는 선후의 문제가 아닌 동전의 양면 관계라고 보는 인식이 타당하다. 그런데 우리의 노력과 힘으로 북한과 IOC를 설득하려는 주체적이고 적극적 의지가 없어 아쉽다. 앞으로도 북한 리스크만 탓한다면 지난 2년처럼 남한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이고, 2032올림픽은 호주 브리즈번으로 최종 낙점될 것이다.
호주 브리즈번이 2032올림픽의 유력한 개최지로 부상하여 서울평양올림픽 유치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은 국제 스포츠계에서 이미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우리만 설마하며 애써 외면해 왔다. 지난 가을 외통위 국감에서 호주대사조차 브리즈번의 유치활동에 대해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사실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남북공동올림픽 아젠다를 누구도 챙기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지난해 7월 국회 외통위 상임위원회에서도 서울평양 대신에 브리즈번이 부상하는 우려를 제기한 바 있고 대안으로 플랜 B가 제안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리스크 타령만하고 아무것도 하지도 않고 팔짱만 낀 채 감나무에서 감이 떨어지기만을 기다려온 우리 내부의 시스템 부재와 소극적 자세를 성찰하는 것이 우선이다. 진단이 정확해야 올바른 처방이 가능하다. 지난 2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시간에 대한 성찰 없이 앞으로도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고 결국 남북 정상이 민족의 안위와 번영을 위해 합의한 2032공동올림픽은 무산될 것이다.
지난해 국회 외통위에서도 줄곧 외교부와 통일부를 향해 호주가 9부 능선을 넘었으니 북한 리스크 제거만을 기다리지 말고 플랜 B를 검토할 것을 수차례 제안하였다. 즉 명칭은 남북정상이 합의한 대로 2032서울평양올림픽을 유지하되 일단 서울이 먼저 유치위원회를 구성하여 유치권을 확보한 후 남북 관계가 풀리면 공동개최하자는 것이 플랜 B의 골자이다. 공동올림픽은 김정은 위원장의 약속이기도 하고 북한에도 유익하므로 상호 유익한 제안이다. 남북 관계가 경색된 현실에서 플랜 B는 어쩌면 북한이 기다리는 제안일지도 모른다. IOC 시계는 한반도 평화를 기다려주지 않을 것인바 플랜 B로 북한과 IOC를 설득하여 일단 한반도에 유치권을 확보하자는 것인데 2032서울평양올림픽의 현실적인 유치 전략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플랜 B를 검토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으니 플랜 B는 검토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다. 북한 리스크 탓만 하며 남북 긴장이 해소되기만을 기다리는 동안 2032올림픽은 호주 브리즈번을 향하고 있다.
놀랍게도 2019년 초 남북이 함께 스위스 로잔으로 날아가 IOC에 공동유치의향서를 전달한 후 지난 2년간 플랜 B를 비롯하여 어떠한 구체적 전략도 유치운동도 없었다. 이에 IOC는 남북한의 유치의향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품었을 것이고, 그사이 브리즈번이 유치위원회를 구성하여 적극적 활동을 펼쳤고 특히 IOC 부위원장이자 실세인 호주 John Coats의 헌신적 노력이 IOC 위원들의 마음을 브리즈번으로 향하게 했을 것이다. 즉 우리가 북한 리스크 탓만 하며 팔짱을 끼고 있는 지난 2년간 호주는 전력을 다해 유치운동을 벌인 결과가 이번 사태를 초래한 것이다.
그사이 문재인 대통령은 유엔총회를 포함한 무려 13차례에 걸쳐 국내외 행사에서 2032서울평양올림픽을 통해 한반도 평화를 실현하자고 호소했다. 최소한 문재인 대통령의 공동올림픽을 향한 의지와 평양선언 합의를 지키려는 진정성은 아무리 높게 평가해도 지나침이 없다. 그러나 정작 우리 정부 내부에선 대통령의 공동올림픽을 통한 평화비전을 뒷받침하기 위한 아무런 시스템을 만들지 않았고 누구도 노력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 스포츠외교력은 역대급으로 빈곤하고 대한올림픽위원회와 주무부처인 문체부는 북한리스크 탓만 하며 방관해왔고 외교부와 통일부는 문체부가 주무부처라며 책임을 회피하였다. 무엇보다 지난해 여름 서울시장 유고 이후 공동올림픽 유치를 위해 서울시는 이를 보완하려는 어떤 노력도 없이 시간만 보내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2032공동올림픽은 평양선언에서 약속한 문재인 대통령만 갈망하며 외치는 공허한 메아리로 그치고 말았다.
정부와 대한체육회가 2032 공동올림픽의 비전을 방치하는 동안 국민들과 정치권의 관심은 멀어졌고 국회에서도 공동올림픽에 관심을 가진 의원은 거의 없다. 2018년 12월 국회 사랑재에서 진행했던 조찬 간담회가 마지막일 것이다. 북한은 지난해 개성연락소 폭파 이후 일체의 소통을 단절하였다. 이러니 IOC가 남북한의 공동올림픽 개최 의지와 가능성에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은 당연하다. 가령 지난 11월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이 도쿄올림픽 지원차 일본에 달려갔을 때 재빠르게 호주 수상이 바흐를 면담하여 2032브리즈번 올림픽 유치운동을 벌여 IOC 위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반면 한국은 이웃나라 일본을 방문한 바흐 위원장에 무관심했으니 IOC는 남북공동올림픽에 대한 우리의 의지에 의문과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가? 남북공동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한 평화구현이라는 올림픽의 이념과 정확히 일치한다. 2019년 토마스 바흐 위원장은 "한반도평화에 기여하는 것은 IOC의 사명"이라고 표현할 만큼 2032서울평양올림픽에 대한 특별한 기대와 관심을 표명하였다. 이번에 IOC가 호주 브리즈번에 우선권을 주겠다고 한 것에 대한 배경을 정확히 파악해야겠지만, 남북한에게 제대로 준비하라는 강력한 경고의 메시지로 받아들인다면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먼저 북한 리스크 탓이라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 북한 리스크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고 심지어 서울평양올림픽 유치 후에도 비핵화를 중심으로 북한 리스크는 완벽히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북한 리스크는 상대 경쟁국들의 프레임이므로 우린 ‘북한 리스크 프레임’에서 벗어나야 한다. 대신에 ‘세계평화 프레임’으로 IOC를 설득하고 압박해야 승산있는 게임이 될 것이다. 당장에 3월10일부터 3일간 개최되는 비대면 IOC총회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때 2032올림픽이 호주 브리즈번으로 굳어지지 않도록 일차 전략을 수립하고 플랜B를 포함한 서울평양이 예비후보로 지속적으로 검토되도록 IOC를 설득하고 이를 위한 논리와 자료가 필요하다.
그런데 시간이 촉박하다. 모든 역량을 모아 앞으로 한 주 동안 중대한 시간(Critical Week)을 보내야 한다. 집중력과 순발력이 필요하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과 남북정상, 세분 지도자들에게 유일하게 신뢰가 두터운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그립을 잡아 난관을 헤치고 사태를 수습하는 방법 말고는 묘책이 없어 보인다. 스포츠 외교 시스템이 없으니 개인기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정의용 장관께서 애국심과 능력을 발휘하시길 바란다. 어쩌면 앞으로 일주일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2032서울평양올림픽의 운명이 좌우될지 모른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