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에 분노한 시민들은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뀌자 사람이 먼저인 나라가 저절로 될 줄 알았다. 나라다운 나라가 만들어질 줄 알았다. 정의로운 세상이 될 줄 알았다. 더 이상 역사의 반동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다. 촛불시민들이 원했던 검찰개혁, 언론개혁, 재벌개혁, 교육개혁이 실현되고 불평등도 해소될 줄 알았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 안타깝게도 촛불시민들이 원했던 개혁이 이루어졌다고 믿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촛불정부의 탓이든, 기득권과 보수세력의 저항 탓이든, 나라다운 나라는 아직 요원하다. 코로나19의 급습으로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보수의 반동은 노골화되고 있다. 끝나지 않은 전쟁이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불평등을 해소하지 않으면 공동체가 위기를 맞는다고 경고하고, 미국 진보주의 정치인 버니 샌더스는 소득 불평등 해소가 지상 최고의 명제라 주창해서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토마 피케티와 버니 샌더스가 던진 화두에서 대한민국도 예외가 아니다.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나면 약자들은 벼랑에 서게 될 것이다. 끝나지 않은 전쟁은 사회적 정의로부터 경제적 정의까지 완성하는 것이 목표이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 사회적 정의를 위한 투쟁의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대 시절 맑시즘에 탐닉하였다.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경제결정론은 20대 나의 의식을 지배하였다. 그러나 30대 미국 유학시절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을 배우면서 문화와 교육, 종교, 젠더, 스포츠 등을 통한 사회구조의 재생산이 이루어지는 상부구조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새로운 인식의 지평을 열게 되었다. 그 결과 박사학위의 이론적 배경이 헤게모니 이론이었고 SCI급 국제학술지에도 등재되었다.
내가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 교육과 문화 상임위만 고수했던 것도 상부구조를 바꾸어 더 좋은 사회를 만들려는 지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사실 30대부터 상부구조에 대해 관심이 있어 상부구조 개혁을 통해 사회를 변화시키고자 위해 오산화성환경운동연합과 체육시민연대 두 시민단체 설립을 주도하였다. 이후 2004년 총선 출마 직전까지 두 단체의 집행위원장을 맡아 헌신했다. 최근 코로나19 시대를 겪으며 심화되는 양극화와 불평등의 문제를 목도하면서 다시 경제결정론에 귀착되어 최근 토마 피케티와 버디 샌더스를 탐독하게 되었다.
맑스-그람시-피케티-샌더스로 이어지듯 경제결정론-문화우위론-경제결정론으로 순환되는 것은 소득불평등과 양극화 문제에 대한 고민의 절박함 때문이다.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불평등 해소이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 정치인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지도자가 될 것이다. 코로나19 시대에 불평등은 더욱 심각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기본은 먹고사는 문제 즉 민생을 해결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전후로 세상이 달라졌듯이 정치의 관점도 달라져야 한다. 이러한 시대적 터닝포인트를 읽지 못하는 정치인은 결국 낙오하게 될 것이다. 특히 최근 교황님의 글을 읽으며 담대하고 새로운 정치적 안목을 고민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깨끗한 정치, 따뜻한 정치, 정의로운 정치를 표방하며 실천해 왔다. 깨끗한 정치를 위해 국회의원 내리 5선을 하는 40대, 50대 동안 청렴하게 살았고 지난해 연말에서야 겨우 오산에 내 집을 소유하였다. 대한민국에서 내 나이에 집을 가지게 된 사람도 흔치 않을 것이다. 정치를 시작하며 돈에 대한 욕심을 버렸다. 노후 걱정도 되긴 하지만 정치를 마칠 때까지 땅 한 평, 주식 한 주 없이 청렴한 정치인으로 살 것이다. 국회의원이 권력자이던 시대가 지났고 명예도 얻지 못하는 시대일지라도 돈까지 가질 수는 없지 않은가?
따뜻한 정치를 실천하기 위해 백혈병소아암 아이들을 위해 헌신해 왔다. 소아암협회장을 6년간 역임했고 지금도 명예회장이다. 회장을 하는 동안 완치 환우들이 대학에 진학할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서울대, 제주관광대 등을 설득하여 20여 곳 대학과 특례입학협약을 맺었고, 입학 후 멘토링을 통해 졸업 후 또래 청년들과 당당히 겨룰 수 있는 실력을 갖추도록 하였다. 소아암 완치자들을 위한 특례입학은 투병 중인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완치 후 사회의 구성원으로 당당히 살아가도록 하는 선하고 따뜻한 공동체를 위한 아름다운 일이다.
나는 줄곧 정의로운 정치를 실천하였고 재선 시절 교육위원회 간사 4년간 반값등록금, 무상급식 아젠다를 주도하였다. 사학 비리 관계자들은 나를 저승사자로 불렀다. 특히 최순실 국정농단을 천 일간 추적하였다. 당내에서도 만류했던 박근혜 정부 권력서열 1위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쫓는 것은 정치생명과 가족의 안전을 담보로 하는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었다. 외롭고 두렵고 험난한 과정이었다. 최순실은 2014년과 2015년 두 번에 걸쳐 나의 구속을 시도하다 실패하였다. 지난가을 KBS 탐사프로 시사직격에 보도된 것처럼 2014년 청와대 하명수사로 수원지검을 통해 나를 엮으려다 ㅇㅇ교통 관련자 3명이 애꿎게 구속되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세상이 달라졌다. 따라서 정치의 의미나 정치인의 목표도 달라져야 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나도 달라진 정치적 모토를 정하려 한다. ‘안전한 나라, 건강한 나라, 공정한 나라’를 위한 정치를 하려 한다.
안전한 나라는 안심하고 편한 사회이다. 코로나19는 국민안전이 가장 중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확산시켰다. 내가 안전하려면 공동체의 안전이 필요하고, 나와 공동체는 하나라는 인식이 공유되었다. 세월호 이후 안전한 세상에 대한 인식이 중요해지기 전부터 나는 생존수영 전도사로서 활약하며 오산에서 2011년부터 시작한 생존수영을 국가의무정책으로 채택하도록 했다. 수영은 백세시대에 가장 오랫동안 할 수 있는 운동이니 수영은 백세시대를 위한 운동이다. 아이들이 안전하고 여성들이 안심하고 밤길을 다닐 수 있는 안전한 사회를 갈망한다. 한반도 평화는 국민들이 안심하고 편하게 사는 세상을 위해 필수적이다. 2032 남북공동올림픽 개최는 불가역적인 한반도 평화를 위해 필요하기에 2018년 6월 대통령께 제안 드렸고 그해 9월 평양선언을 통해 남북정상이 합의한 평화아젠다이다.
건강한 나라는 코로나19 이후 더욱 부각되었다. 이젠 안전과 건강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백세시대에 인간의 행복은 누가 건강하게 오래 사느냐이고 국가는 국민들이 건강하도록 책임질 책무가 있다. 즉 국민건강은 국가의 책임이다. 건강한 나라를 위해 누구든 운동할 수 있도록 걸어서 5분 거리에 운동시설, 지도자,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고 스포츠클럽이 제도화돼야 한다. 내가 초선부터 주창한 스포츠클럽 제도는 문재인 정부 국정과제로 채택되었고 법제화되어 곧 실현될 것이다. 또 아픈 사람은 누구든지 치료비 걱정 없이 병원을 다니도록 의료복지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 의료와 운동을 통해 백세시대 국민 건강을 국가가 책임지도록 하는 것인데 이는 몽양 여운형 선생의 건민주의와 일치한다. 국민이 건강해야 코로나19 시대를 극복할 수 있고 건강한 국민이 건강한 사회를 만든다.
공정한 나라는 누구나 동등한 기회를 가지는 차별 없는 세상이다. 촛불혁명은 검찰개혁, 언론개혁, 재벌개혁, 교육개혁을 통해 공정한 세상을 바랐지만 촛불정부는 이를 담아내지 못했다. 기득권 저항 탓만 할 것이 아니라 문재인 정부 스스로 개혁 의지와 능력에 대해 성찰해야 한다. 불평등 격차를 좁혀야 한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워야 한다는 문재인 정부의 구호가 효력을 상실하게 된 것은 뼈아픈 대목이다. 코로나19로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종식 후에도 빈부격차가 더욱 벌어질 것이다. 99%를 위한 정치는 불평등 해소를 위해 한국의 버디 샌더스를 갈망하고 있다. 피케티의 주장처럼 불평등은 자본주의 사회를 위협하므로 부자들이 더 많은 세금을 내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도록 하는 사회적 동의와 합의 그리고 실천이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공정한 사회를 위해 교육비는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 반값등록금 국공립대학 무상교육은 불평등 해소를 위한 실천이 될 것이다. 자영업 손실보상제도 필요하다. 헌법 23조3항은 공공의 필요로 재산권을 제한할 수 있고 그로 인한 피해손실은 국가가 보상해야 한다고 법률로 정하고 있다. 또 공정한 사회를 위해 900만 다가구에 대한 강력한 보유세 부과와 집 없는 서민이나 청년 신혼부부를 위한 주택마련 대책도 필요하다.
안전망 구축을 위해서는 경제발전보다 복지에 먼저 투자해야 한다. OECD 37개 국가 중 재정 건전성이 상대적으로 우수하기에 재정 당국은 곳간 타령하지 말고 어려운 시대를 지나고 있는 국민들을 위해 과감히 곳간을 비워야 한다. 캐임브리지 대학교 장하준 교수의 말처럼 지금은 1920대 경제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이다.
깨끗한 정치, 따뜻한 정치, 정의로운 정치를 넘어 안전한 나라, 건강한 나라, 공정한 나라를 위해 살신성인하는 정치인이 되고자 한다. 마침 도올 김용옥 선생께서 나에게 보국(輔國)이라는 호를 주셨으니 나라를 바로 잡고 국민이 편하도록 보국안민을 실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