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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모리 Apr 15. 2023

의사소통 성공 전략

그와 다투었다.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고, 쉬는 날 나보다 다른 가족과 친구를 먼저 찾는다고 그에게 서운함을 내비치는 것으로 갈등이 시작됐다. 그는 결코 내게 소홀하지 않았다며 받아들이지 않았고 나는 날 이해하지 못하는 그를 원망했다. 요즘 잘 지낸다 싶더라니 오랜만에 냉전. 두 사람의 무표정한 침묵이 시작되었다. 집에 말소리가 없는 이틀 동안 나는 책만 열심히 읽었다. 펼친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의사소통에 관한 많은 연구들은
우리의 의사소통에서 의미는 공유되기 힘들다는 점과
모든 의사소통이 반드시 상호 이해와 공감이라는 행복한 결말로 종결되기가 매우 힘들다는 점을 지적한다"


순간 분노와 서러움이 싹 씻겨 내려가며 나는 이성을 찾았다. 

아. 원래 의사소통에서 의미는 공유되기 힘들구나! 원래 상호 이해와 공감으로 끝나는 대화는 어렵구나!


우리가 싸운 이유는 내가 애정결핍이거나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나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원래’ 그렇다는 연구 결과가 얼마나 고맙던지, 어떤 위로보다 더 큰 위로였다.


‘원래’ 잘 성사되기 힘든 일을 잘 헤쳐가려면 평소보다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단 노력은 ‘우리는 대체 뭐가 문제일까’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원래 어려운 일이 그나마 쉬워질까’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차분해진 나는 내 감정에서 빠져 나와 이성적으로 해결안을 찾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갈등은 양쪽 다 이유가 있다. 그도 맞고 나도 옳지만 각자의 정답이 충분히 공유되지 않아 문제가 된다. 의사소통에서의 의미 공유가 ‘원래’ 매우 힘들다고 하였으니, 그 부분에 노력을 들여 보기로 했다.


둘 다 감정이 어느 정도 가라앉은 다음, 우리는 ‘둘이 보내는 시간‘의 정의부터 내렸다. 그가 생각한 ’둘이 보내는 시간‘은 내 생각과 많이 달랐다. “둘이 매일 같이 있었잖아. 같이 밥 먹고, 같이 쉬고, 너는 책 보고 나는 컴퓨터 하거나 하면서.”


내가 입을 뗐다. ‘같이 장보기, 한 달 예산 짜기, 가족행사 다녀오기, 침대에 누워 있기, 집에서 각자 일 하기’까지 말했더니 그는 끄덕끄덕 수긍했다. 하지만 나는 뒤이어 말했다. “이건 전부 다 ‘둘이 보내는 시간’ 아니야.” 그는 감탄 반 충격 반이 섞인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말하는 ‘둘 만의 시간’은 결혼 준비 전, 연애할 때 하던 ‘데이트’라고 할 수 있겠다. 출근, 저축, 살림, 며느리와 사위 역할 다 잊고 너와 나만 존재하는 시간. 그 시간 안에서 내가 너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내가 얼마나 너를 사랑하고 각별히 여기는지 흠뻑 느껴야 한다. 우리가 머무는 시간과 공간, 우리의 말과 눈빛으로 마음이 충만해져야 한다.


같이 보내는 시간의 범위가 이전보다 명확해지면서, 왜 함께해놓고 함께하지 않았다고 내가 서운해 하는지, 왜 함께하지 않았는데 함께했다고 그가 억울해 하는지, 서로의 오해를 풀었다.


그 다음은 같이 시간 보내는 빈도에 대해 합의가 필요했다. 말의 합의이지 사실상 나의 서운함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그에게 일러주는 지침 같은 것이었다.


나는 가족 모임, 친구 모임 이전에 우리 둘만의 시간이 먼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물론 대화와 눈빛으로 마음이 오가는 ‘밀도 있는’ 시간으로. 그 시간을 보내면서 나에 대한 그의 애정과 수용을 느끼고 나면, 가족에서 며느리 역할, 아내 역할로 참여하는 것이 훨씬 즐겁고 적극적이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니 제3자와의 모임을 제안하기 전에 “나 너랑 언제 뭐 하고 싶어”라는 제안을 먼저 해달라고 했다. 그는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한 주에 한 번, 세 시간 이상 우리가 같이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말했다. 내가 전달하려는 의미가 그에게 제대로 닿으려면 최대한 객관적 설명을 동원해야 했다. 그래서 조금 삭막해보일지라도 ‘1주 1회 3시간’이라 정해놓으면, 나도 서운함을 타당하게 하는 이유가 생기고, 그에게도 억울함을 증명할 근거가 생긴다.(물론 눈치껏 둘다 상태가 괜찮은 날에는 굳이 삭막한 잣대 대로 따질 필요가 없다.)


널 아낀다,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겠다 같은-프로포즈나 혼인서약에서 할 법한-말들은 가만 보면 꼭 초등학교 반장 선거 공약 같다. “행복한 우리반을 만들겠습니다”. 눈에 보이는 색깔도 사람마다 이건 초록이다 파랑이다 서로 다르게 인식하는데, 하물며 보이지도 잡히지도 않는 ‘행복’이니 ‘존중’, ‘사랑’은 사람마다 다르게 정의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러니 내 의도대로 이해되고 공감을 얻는 의사소통이 성사되기 어려운 것도 당연하다.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외치던 딸내미 시절과 여자 친구 시절을 지나, 내가 확실히 성장했구나 싶다. 말하지 않아도 찰떡같이 마음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리 나를 사랑하는 부모라도) 세상에 없고, 나 또한 상대를 아무리 관찰해도 그의 말로 직접 듣기 전까진 완벽히 그를 헤아릴 수 없다는 깨달음. 이것이 내게 약간의 무력감과 실망을 주었지만, 그래서 하염없는 기대를 접을 수 있었다. 날 알아주겠지 하는 기대감에 가만히 눈치 보느라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게 되었고, 상황이 잘못 흘러간다 싶으면 얼른 의사소통 테이블에 앉아 내 마음을 조곤조곤 꺼내는 것이 더 이상 슬프지 않다.


나도 내 마음을 모를 때가 있지만, 그럼에도 나만큼 내 마음을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번거롭고 힘이 들어도 내 마음을 가장 적합한 말로 꺼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을 즐기던 나로서는 객관적이고 측정 가능한 표현을 찾는 일이 낯설지만, 나도 나를 더 잘 알아가고 남에게도 나를 더 잘 알리는 방법이라 생각하니 시도해 볼 마음이 든다.


아무도 내 마음을 단번에 알아줄 수 없지만, 내가 의사소통을 위해 조금 더 품을 들여 본다면 누구든 내 마음을 조금씩 알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평생 해 온 의사소통을 새삼스럽게 공부하고 연습하는 나란 사람, 유난스럽다 싶으면서도 기특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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