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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금 May 23. 2022

입사 첫 날, 30대 팀장이 잘렸다

사회생활은 본디 잔인한 거라고


“야, 너 사직서 써.”


30대 팀장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의 맞은편에 앉지 않은 걸 다행이라 여겼다. 하얗게 질린 그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부서 직원 열여섯이 모인 부장급 회의. 그는 그렇게 1년 간 책임졌던 모든 팀원 앞에서 숙청당했다. 그만큼 잔혹하게 잘려 버렸다. “너 나가. 회의 참여할 필요도 없어. 나가서 사직서 쓰고 짐 챙겨.” 부장의 말에 팀장은 잠깐의 침묵 후 네, 하고 회의실을 잰걸음으로 나갔다. 부장은 덤덤하게 회의를 다시 이어갔다. 신입이던 난 망부석처럼 팀장의 온기가 남은 빈자리를 응시했다. 그래도 사람이었는데. 아무리 계약직이라고 해도. 사람을 썩은 나뭇잎 자르듯 똑, 하고 자를 수 있는 거였나.  


“원래 잘릴 만한 사람이었어요, 그 사람은.”


대리님이 연어 한 점을 입에 넣으며 투덜거렸다. 그녀는 그를 ‘무능력한 멍청이’라고 한 마디로 정의했다. 일 처리가 너무 늦었네, 사람 대할 줄 모르네 등등. 다른 직원들도 ‘맞아, 맞아’ 하며 맞장구쳤다. 테이블 위는 순식간에 팀장에 대한 뒷담화로 가득 찼다. 비아냥과 깔깔대는 웃음소리. 팀장이란 명칭은 실명으로, 실명은 걔로, 걔는 다시 이 새끼 저 새끼로. 업무 능력과 관련된 단순 뒷담화는 외모로, 나이로, 옷차림으로 전염되듯 퍼져나갔다. 팀장은 무섭게 오가는 말마디마다 가차 없이 산산 분해됐다. 그가 살아온 삶은 몇 마디로 찢기고 부정당했다. 그저 그는, 존재 자체로 ‘무능력한 멍청이’가 됐다. 그뿐이었다.


팀장은 회사에 퇴사하기 전 인사 차 식당에 들어섰다. 식사 자리는 빠르게 얼어붙었다. “그, 그간 수고 많았어. 난 원래 이 회사에 안 맞았던 거 같아. 나랑 좀 더 맞는 곳으로 갈 수 있겠지.” 대리님들은 멋쩍게 하하, 하고 웃었다. "그래요. 그래도 그간 수고했어요. 갑자기 떠나신 다니 너무 아쉬운 거 있죠." 검붉은 셔츠를 입은 한 대리님이 입을 비죽이며 말했다. 아쉽긴, 개뿔. "진짜, 다음에 술 한 잔해요." 박 대리님이 팔찌를 찰랑이며 말했다. 웃기네, 번호 차단할 거면서. 팀장은 헛헛, 하고 웃었다. 그는, 그녀들이 거짓말을 치고 있다는 건 일찍이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사이드 메뉴인 새우튀김 2조각만 시켰다. 바삭바삭, 바삭바삭.  그의 튀김 씹는 소리만 멋없이 공간을 채웠다. 아침도 못 드셨을 텐데. 아침 일찍 과장에 보고드릴 서류를 뽑느라 흠뻑 젖었던 그의 등짝이 떠올랐다. "갈게, 이제." 식사를 마친 그는 직원들 한 명 한 명에게 손을 건넸다. 대리님들은 그의 악수를 못 미더운 듯 짧게 받아들였다. 그리곤 곧장 자기네들끼리 뭉쳐 '커피나 마실까?', '2층 카페에 신메뉴 나왔더라' 등 까르르 대며 사라졌다.


팀장은 마지막 악수 순서였던 내 앞에 섰다. 조금 울었나 보다. 눈이 뻘겋다. "겨울비 씨, 참 미안해요. 잘 챙겨줬어야 했는데. 열심히 버텨봐요. 그래도, 그렇게 나쁜 회사는 아니니까." 그가 참 바보 같다, 고 생각했다. 자신을 가차 없이 자른 회사를 끝까지 감싸는 꼴이 우스웠다. 그냥 못된 회사!라고. 망해버렸으면 좋겠는 회사!라고. 시원하게 욕을 갈겼으면 오히려 맘이 편했을 텐데. 착한 심성이 인생을 구하는 건 아니라고. 감히 말해주고 싶었다.


그가 1년 간이란 짧고도 긴 시간을 담은 박스 하나를 들고 버스에 올라탔다. 난 뻣뻣이 서서 그의 뒷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안녕히 가세요, 팀장님. 어쩌면, 그와 일했을지도 모를, 사라진 모든 시간에도 작별을 고했다. 앞으로 그의 삶은 어떻게 흘러갈까. 곧 40대를 바라봤던 그. 그에게 결혼할 여자가 없었다는 심심한 사실에 안도라도 표해야 하나.


"겨울비 씨, 커피 안 마실 거야?" 멀리서 대리님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네, 하고 고개를 돌렸다. 목 뒤가 담에 걸린 듯 뻣뻣했다. 이게 사회생활이다. 묵묵히 견디고 받아 들어야 할 잔인한 회사생활의 한 대목이다. 나는 커피숍 앞에 서 있는 대리님들께 애써 밝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문득, 입사 전 날 팀장으로부터 걸려왔던 전화가 떠올랐다.


"겨울비 씨랑 정말 잘해보고 싶어요. 여러 가지 도전해 보고 싶은 게 많거든요. 그러니까, 앞으로 시도해보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언제든지 제게 말해줘요. 열심히 들을게요. 그게 팀장의 역할이니까."


이게, 사회생활이다. 그저 사람답게 일해 온 사람도. 언제든지 내쳐질 수 있는.

내가 앞으로 버티고 견뎌내야 할 사회생활이다. 그러니 부당해도, 쓰라려도, 아려도 참아내야 한다.

무서운 인생 교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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