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는 갑작스럽게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바꿨다. 왜 그랬을까?
무려 15년 전부터, 미드(미국 드라마)에서는 'PC(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소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프렌즈에서는 주인공 로스의 아내는 레즈비언이었고, 아이도 있지만 이혼 해 버린다. 모던 패밀리는 아예 대놓고 "Modern" Family다. 게이 가족과 입양된 아시아계 딸, 20살 차이도 넘어 보이는 부자 할아버지와 콜롬비아계 미녀 부부 등 다양한 형태의 "모던" 가족이 등장한다. 디즈니는 '공주=백인'이라는 공식을 깨기 위해 역에 어울리지 않는 흑인/아시아계 배우를 캐스팅한다는 이야기도 듣는다.
FMCG(Fast Moving Consumer Goods, 저관여 일반 소비재) 업계는 이미 LGBT(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마케팅을 본격화하였다. LGBT 퍼레이드가 한창인 6월부터 이들을 타겟으로 하는 다양한 마케팅과 프로모션을 진행하고 심지어는 로고도 변경한다.
또한, 트렌디함을 유지해야 하는 패션 업계 역시 그들을 위한 다양한 제품을 소개하고, 행사를 후원하고, 소셜미디어에 관련 포스팅을 하며 LGBT 마케팅을 진행한다.
IT 업계도 빠질 수 없다. 애플은 CEO인 팀 쿡이 동성애자임이 밝혀지며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다양성을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LGBT를 상징하는 무지개를 활용한 배경화면을 아이폰/애플워치 등에 배포하고, 이들을 지지하는 마케팅을 왕성하게 진행하고 있다.
그런데, 자동차와 같이 고관여 제품이고, 보다 보수적인 업계에서는 이런 도전을 하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1명의 고객만 놓쳐도, 4천만 원의 차량의 영업이익 5%를 가정할 때, 200만 원의 이익을 바로 날려 버린다.
또한, 자동차는 '매니아, 팬'이 확실하다. BMW 동호회, 포르쉐 동호회 등 해당 브랜드를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정보를 교환하고, 같이 드라이빙도 하며 친목을 다지는 경우가 많다. FMCG의 경우, 코카콜라의 팬일 수는 있지만, 코카콜라 커뮤니티 활동을 하고 콜라를 함께 마시고 즐기는 이벤트를 기획하기란 쉽지 않다. 자동차의 경우 해당 팬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잠재적인 '평생 고객'을 놓칠 리스크도 굉장히 크다.
그래서 항상 자동차 업계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을 제너럴 한 마케팅을 진행하고, 보다 보수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아래와 같이 굉장히 부주의한 번외의 사례도 있다.
폭스바겐을 필두로 많은 자동차 업계는 디지털 시대를 맞아 과거의 입체적인 로고를 버리고, flat 하고 단순화된 로고로 변경하였다.
기존 로고의 경우 '엠블럼' 그 자체인 경우가 많았다. 차량에 부착되는 부품을 형상화하다 보니 입체적이고, 반짝이는 광도 표현해야 한다. 즉, 멀리서 차가 다가올 때 '오 벤츠구나!' 바로 알 수 있게 설계된 엠블럼을 그대로 옮겼다. 하지만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증가하면서 기업들은 디지털 컨텐츠에 어울리는 심플한 로고 변경하고 있다.
디지털 컨텐츠와 잘 어울리도록 만든 로고를 활용해 BMW는 한 발짝 더 나아갔다.
6월 29일, BMW는 LGBT의 상징인 무지개를 배경으로 로고를 삽입해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변경하였다.
BMW는 보수적인 자동차 업계의 대표 브랜드 중 하나이며, 심지어 '럭셔리'브랜드이다. MASS 브랜드의 경우 여러 마케팅 기법을 실험할 수 있지만, 럭셔리 브랜드는 '브랜드 에셋'이 가장 중요한 항목 중 하나이므로 철저히 브랜드 자산을 쌓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BMW는 Sheer Driving Pleasure라는 브랜드 슬로건 아래, Fun Driving을 핵심 속성으로 하여, 왜 우리 차를 타면 드라이빙이 재밌는지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을 집중한다. 한국을 포함한 핵심 국가에 드라이빙 센터를 설립한 것도, Fun Driving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고객 경험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BMW의 ATL/BTL 역시 달리고, 달리고, 또 달리는데 집중한다. 벤츠는 우아함, 정숙성 등을 강조하고, 볼보는 안전을 핵심 속성으로 하기에 주행신이 없는 경우도 있지만, BMW에서 주행신이 빠지는 컨텐츠는 상상하기 힘들다.
이렇게 Fun Driving과도 연관이 없고, 패션 산업을 제외한 럭셔리 브랜드에 리스크가 될 수 있는 LGBT 마케팅을 BMW가 시작했고, 역시 반응은 뜨겁다.
BMW 로고 변경 포스팅에 '화나요' 표현은 10만을 돌파했고, 이는 가장 많은 감정 표현 수치이다. 다만, '좋아요'도 역시 10만을 돌파하며 얼마나 논란이 많은 상황인지 짐작할 수 있다.
댓글들 역시 갑론을박의 장이 되었다. 보수적인 이슬람계나 고연령층의 백인들을 필두로, 앞으로 BMW는 안 산다는 의견들이 작성되고 있지만, 보다 젊은 층과 진보적인 층은 새로운 시도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더욱 놀라운 점은 공식 계정의 댓글은 브랜드의 공식 커뮤니케이션으로 인지될 수 있어 조심스러울 텐데, 부정적인 댓글들에 직접 진정성 있고, 톤-다운되고 논리 정연한 댓글로 직접 피드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부분은 단순히 이 프로필 사진 변경이 일시적이고 즉흥적인 이벤트가 아니고, 많은 심사숙고 끝에 진행된 커뮤니케이션임을 가늠할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약 2주 후 다시 프로필 사진은 변경되었다. 여전히 '드디어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이게 내가 알던 BMW 지'와 같은 조롱 섞인 댓글들이 가득하다.
또한, 변경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빠른 수의 좋아요를 채우고 있는 것을 보면, 아직 논란이 많은 마케팅임은 분명하다.
보수적인 기업마저 움직였다. 물론 BMW는 벤츠, 아우디에 비해 보다 영-제너레이션 타겟이기도 하고, 역동적이고 다이나믹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했기에 이들보다 빠를 수 있었겠지만, 그래도 엄연한 럭셔리 브랜드이고, 보수적인 자동차 업계의 대표주자이다.
다른 자동차 업계 참여의 신호탄이 될까?
폭스바겐이 디지털 로고로 변환한 이후, 다른 그룹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디지털 시대를 맞이한 로고 변경을 시작했다. 이번 BMW의 시도는 내년 이 시기가 돌아왔을 때 다른 기업들의 참여를 더욱 이끌어 낼 수 있을지, BMW 역시 지속적으로 다양성을 추구하는 마케팅을 선보일지 궁금하다. 아직 논란의 여지가 많은 마케팅이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점은 역시 다른 자동차 업계의 참가를 이끌어내기 어렵게 만드는 허들이다.
보다 이런 이슈에 덜 민감한 유럽/북미 지역에 본사를 두고, 이런 이슈에 매우 민감한 중동/이슬람/아시아 국가에 덜 판매하는 기업이 먼저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브랜딩은 판매와 무관하게 진행되어야 된다고 생각하지만, 판매 데이터를 분석하지 않고 마케팅 전략을 실행에 옮기기란 쉽지 않다. 프랑스의 르노, 독일의 폭스바겐/아우디, 미국의 테슬라(테슬라는 공식적인 마케팅은 하지 않는다) 등이 유력 후보가 되지 않을까 싶다.
한국은 어떻게 될까?
10년 전부터 LGBT가 등장한 미드와 달리, 한국 드라마에서는 종편/케이블 채널에서 조연 캐릭터가 '은연중'에 LGBT임을 암시하는 정도로 그치고 있다. 본격적으로 메인 캐릭터가 등장한 것은 '슬기로운 깜빵생활'의 '헤롱이'가 최초(이자 마지막이)지 아닐까 싶다. 이렇게 워낙 보수적인 국가이다 보니 심지어 FMCG 업계에서도 공개적으로 LGBT 마케팅을 진행하기 쉽지 않다. LGBT 고객을 포섭하고는 싶은데, 다른 타겟층에게 욕을 먹고 싶지 않은 기업들은 관련 행사를 조용히 서포트해주는 형태로 마케팅을 진행하고 있는 듯하다.
검색 결과 작년 OB맥주의 '카스'가 동성애 축제를 응원하는 포스팅을 올렸다고 한다. 역시나 외국에서는 이미 만연해진 포스팅 게시물 하나로 기사가 나고 "카스 아웃"이라는 댓글이 가장 높은 공감 수를 받았다고 한다. 심지어 OB맥주는 외국계 기업이다. 과연 토종 한국 기업이 자신 있게 LGBT 마케팅을 나설 수 있을까?
그렇다면, '한국' + '자동차' 브랜드는?
한국 자동차 브랜드인 현대/기아/제네시스/쌍용/르노삼성/한국GM은 과연 이런 마케팅을 할 수 있을까? 르노삼성, 한국GM은 그나마 외국계가 모기업이긴 하지만, 현재 한 대 판매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도전을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쌍용도 먹고살기 바쁘다. 그렇다면 사실상 한 기업의 세 브랜드 만이 남는다.
제네시스는 아직 신생 브랜드이고 브랜드가 제대로 뿌리 잡지 않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이 부분이 더 turning point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은 밀레니얼 세대의 오만함이겠지만 말이다.)
현대/기아는 틀에 박힌 마케팅만 하다가 최근 들어 B급 마케팅이나 트렌디함을 잃지 않기 위한, 즉 힙하고 영한 브랜드가 되기 위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모습을 소셜미디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심지어 최근에는 어마어마한 자금을 태워야 하는 ATL에서까지 B급 마케팅을 활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보수적인 대기업에서 실무자가 이런 기획안을 통과시키기에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을지 사실 상상이 안된다.
LGBT 마케팅도 언젠가 CSR처럼 필수 불가결한 마케팅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지금 많은 기업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당연하다는 듯이 올리는 'Black Lives Matter' 관련 포스팅도 불과 몇십 년 전에 올렸다면 매장되었을 마케팅이다.
무작정 외면하고 있으면 '다양성을 무시하는 오만방자한 기업'으로 이미지 낙인이 찍힐 수 있는 시대가 분명 올 것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필수가 되고 있는 상황에, 기업에도 자기 목소리를 내도록 요구하는 사회에, 그리고 브랜드가 MZ세대의 identity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시대에, 과연 다른 브랜드들은 BMW처럼 대담한 용기를 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