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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개구리 Jun 26. 2020

바보가 된 사람들

마음만은 늘 행복할 수 있기를...

길가에 늘어선 가로수가 쭉쭉 기지개를 켜며 파릇하게 싹 틔울 준비를 하고 있다. 곧 피어날 개나리 꽃길을 떠올리며 주 1회 찾는 요양병원을 향해 서부간선도로를 달린다. 몇 달 전부터 시작한 봉사활동으로 새로운 관계를 갖게 된 요양병원 환자들은 젊은 시절 모두 자신의 위치에서 한 목소리를 냈던 분들이지만 이제는 바보가 돼버렸다며 지난 시절을 아쉬워한다.
     
내가 하는 봉사활동은 미술치료 프로그램인데 신체의 한 부분이 자유스럽지 못한 사람들은 정상적인 사람들에 비해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조금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미술과 심리학의 결합어인 미술 치료(art therapy)는 미술 활동을 통해 감정이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 기분의 이완과 감정적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 심리 치료의 일종이다.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느낌이나 생각들을 미술 활동을 통해 표현함으로써 심리적 안정과 감정의 정화를 경험하게 하고 내면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하며 자아 성장을 촉진시키는 치료법이다.
     
어린아이들도 쉽게 할 수 있는 색칠하기나, 면봉으로 점을 찍는 기법도 그들에겐 어려운 작업이다. 언제나 둥근 원을 그려놓고 만족한 웃음을 짓기도 하고 점으로 표현하라고 해도 잘 들리지가 않아 그저 빙그레 웃기만 한다.

무엇을 하더라도 모르겠다면서 ‘너무 어려워서 하기 힘들다.’고 골을 부리는 사람, 한쪽 손이 자유스럽지 못해 오른손으로만 하자니 어렵다는 사람, 정상적인 시각으로 보면 조금씩은 바보스러운 모습이다.
     
“손이 말을 안 들어 어떨지 모르지만 내가 벽을 칠하라면 정말 잘 칠했었는데 이젠 바보가 돼버렸어요.”
건강했을 때 미장 공사를 하셨다는 어르신은 지금 상황이 아주 못마땅한 듯이 말씀하시는데 가끔은 고향집과 나무를 그려놓고 건강했던 시간들을 생각하며 추억에 젖기도 한다. 그림을 그리라고 했더니 이름만 가득 써놓았기에 무슨 이름이냐고 물었더니

“나를 버린 여자들, 다 죽여 버릴 거야.”라고 분노에 찬 이야기를 하는 어르신은 가끔 결석도 하지만 요즘엔 그림 그리기도 정상에 가까운 수준이 되었고 분노 조절도 잘하고 있다.
     
고운 빛을 띤 공작용 찰흙을 과자로 생각하고 얼른 입으로 가져가는 사람, 본드가 묻은 팝콘을 먹으려는 사람들 때문에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지만 횟수를 거듭할수록 조금씩 현실에 적응하려 하고 심리적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며 비록 신체적인 아픔이 있어 바보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마음만은 늘 행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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