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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청개구리 Jun 27. 2020

쉼표

내 삶에서 처음 가져보는 쉼표

오늘따라 하늘이 유난히 푸르다. 가을바람이 조금 쌀쌀한 느낌을 주긴 하지만 간간이 스며드는 따뜻한 햇살은 찬바람을 잠재워 주기에 충분하다. 비둘기가 떼 지어 날아다니는 공원 벤치에 앉아 지난 시간들을 추억해본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연에도 4계가 있듯 우리 삶에도 4단계가 뚜렷이 있다. 꽃 피는 봄이 있는가 하면 덥고 지쳐 땀 흘리는 여름이 있고 풍성한 열매를 맺는 가을과 눈보라 몰아치는 매서운 겨울이 있다.
가을에 태어나서일까 4계절 중 나는 유독 가을을 좋아하여 풍요로운 누런 가을 들판을 가로질러 달리는 기차로 여행하기를 즐긴다. 색색으로 물든 가을 단풍 아래 책을 읽거나 사색하기를 좋아한다. 하지만 인생에서의 가을이라 할 수 있는 지금의 나를, 내가 좋아하는 가을처럼 좋아하지는 않는다.


자꾸 어린 시절을 뒤돌아보고 즐거웠던 학창 시절을 생각하곤 한다. 과거에 집착하여 머물러만 있는 인간은 발전 가능성이 없다고 하는데... 봄바람 훈훈하게 불고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한 봄처럼 내 유년시절도 자식이라면 모든 희생을 감수하셨던 부모님의 사랑과 관심으로 무척 풍요로웠었다. 일곱 남매 교육을 지상 최대의 목표로 삼으셨던 부모님 탓에 오빠나 언니들처럼 나도 당연히 학사모를 쓸 수 있었고, 전공을 살린 직업으로 정말 열심히 일했다.
쉼 없이 하는 일은 바삐 돌아가는 기계장치가 고장을 일으키듯 내 몸에도 이상을 가져왔고 나는 오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이것이 내 삶에서 처음 가져보는 쉼표인 셈이다.


처음엔 건강하지 못한 내가 참 싫었다. '아프지 않았다면......'이란 생각을 매 시간 하는 난 부정적 인간형이 돼가고 있었다. 그러나 긍정적 사고를 물려주신 부모님의 가르침은 나의 아픔으로 인해 주변의 아픈 사람들,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돌아보게 하였다.
시간이 많은 요즘 나는 여러 움직임을 생각하며 쉬어가면서도 머물러 있지 않은 삶을 살아가려 한다. 이번 주 내내 아파트 게시판에 붙어 있는 '차량 봉사하실 분 구합니다'라는 문구가 머릿속을 자꾸 맴돈다. 그간 해온 나의 운전 실력으로 길지 않은 시간 운전 봉사 정도는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든다.
내일은 관리사무소에 찾아가서 자원봉사 신청을 해야겠다. 봉사활동은 남을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봉사하는 사람은 받는 사람보다 더 큰 것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공원 벤치를 비추던 햇살도 잠시 숨어버리고, 파드득 날갯짓하며 날던 비둘기 떼들도 제각기 나뭇가지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세상 모든 것에 이렇게 쉼표가 필요하듯 인생에서의 쉼표는 정말 없어서는 안 되는 것 중 하나이다.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들은 다른 것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가끔은 쉬어가며 곁눈질을 하기도 해야 한다.
나이 들어 한번 찍어본 이 인생의 쉼표가 내겐 큰 의미를 가져다 주리라 믿는다. '전화위복'이란 말처럼 육체의 병이 내 정신의 풍요로움을 가져다 주기를 희망한다. 쉼표 없는 삶을 살았더라면 느끼지 못했을 많은 것들을 인생의 가을에 경험하고 싶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내 삶의 늦겨울이 눈보라와 세찬 바람으로 힘들지 않고 포근하고 새하얀 눈송이 소복이 쌓이는 아름다운 겨울로 마침표를 찍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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