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히 말하자면 전문가를 찾기 어려운 전문 비즈니스 영역이다.
필자가 제약바이오업계에서 KAHN 컨설팅(https://kahnconsult.net)을 창립한 이유이기도 하다.
Market Access란 (국내의 경우) 신약 등이 보험급여권에 진입할 수 있도록 전략을 수립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Health Technology Assessment (HTA)와 마케팅이 결합된 고도화된 전술이라고, 필자는 정의한다.
보험급여권에 진입한다는 의미는 의약품을 보험등재한다는 뜻으로 그러기 위해서는 적정한 약가가 무엇인지를 평가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pricing & reimbursement 업무로 칭하기도 한다. 질환별 약리기전별 서로 다른 신약들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건강보험 규정 하에 보험급여권을 따내려면 접근법이 같은 듯 다를 수밖에 없다. 혹은 디지털 치료제처럼 새로운 접근법을 만들어야 할 수도 있겠다.
필자는 강의를 할 때 이러한 과정은 종합적인 지식과 사고, 통찰력이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의약품에 대한 약리학적인 지식을 이해하고, 의약품의 임상적 유용성과 비용효과성을 주장하고 그를 뒷받침하는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 또한, 의약품 시장에 대한 이해, 정책 방향성, 경쟁상품(비교약제)의 정확한 선정이 있어야 한다. 즉, 과학(약학), 마케팅, 정치, 경제, 법률, 작문 등의 종합적 사고가 있어야 이 일련의 과정을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다. 미시적 관점과 거시적 관점의 드나듦으로 인해 정신이 혼미해질 때도 있다. 그러나 의약품의 약가를 책정하는 것은 한 회사의 매출을 좌지우지하기 때문에 그 사안이 매우 중요하며 CEO 못지않은 책임감을 갖고 임해야 한다. 이렇게 복잡다단하고 복잡 미묘한 업무에 대해 전문가가 충분할 리 만무하다. 각 요소에 대한 전문가가 있을지언정 큰 그림을 그리고 디테일한 부분까지 진두지휘할 수 있는 사람, 게다가 일을 잘하기까지 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실은 압도적인 업무 성격으로 인해 이 업무를 지속하려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매 순간 여러 업무를 거칠 때마다 역량을 고도화하기 위한 많은 노력을 해왔다. 아카데믹 백그라운드뿐 아니라 업무 측면에서도 어떻게 하면 의약품에 대한 전문성과 통찰력을 고도화할지 늘 고민이었다. 전문성을 이야기할 때 한 우물만 파는 방식이 많이 언급되지만, 필자는 그러진 않았다. 비유하자면 몇 개의 우물을 파서 파이프라인을 연결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화제를 잠깐 돌리겠다.
필자가 의약품 관련 영문 서류를 국문으로 번역한 것을 감수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전문번역업체에 맡겼는데, 약리학적 내용이 제대로 반영되었는지 확인해 달라는 것이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지만, 메디컬라이팅 경력도 있고 하니 해볼 수 있겠다 싶었다.
번역한 글을 영문과 비교해서 읽어 가는데, 분명 한국말로 쓰여 있는데 한국말로 읽히지가 않았다.
인공감미료 맛이랄까. 이상해서 영문 한 단락을 카피해 번역기에 갖다 붙이니 그대로 번역한 글이 재현이었다. 이런.. 다음 단락, 그다음 단락. 동일했다. 동일한 브랜드의 번역기를 쓰는 것인지 토씨 하나가 틀리지가 않았다.
전문번역업체라고 하지 않았던가.
전문가 맞아? 자질을 넘어선 신뢰의 문제이다. 기분이 유쾌하진 않았다. 처음 맡기는 것도 아닐 텐데 이걸 여태 몰랐을까. 내심 염려가 되었다. 번역 내용 감수를 시작도 하기 전 대표에게 이 사실을 말씀드렸다. 그러나 내가 들은 대답은 다른 사람의 노력을 폄하하면 안 된다며 전문용어를 사용한 부분이 있을 것이니 잘 살펴보라는 것이었다. 귀를 잠시 의심했지만, 그래 필자가 끝까지 보지 않고 섣부르게 판단한 것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래서 정말 끝까지 보았고 마지막 두 번째 단락 즈음에서 번역기에서 나온 내용과 조금 다른 내용의 것을 보긴 봤다.
필자는 대표에게 조금 다르게 쓴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안내하면서 감수한 결과물을 제출하였다.
80~90%는 의역하여 파란색 표시가 되어 있는 결과물이긴 하지만 말이다. 대표는 그렇지? 하면서 필자의 실력을 검증해야 하기 때문에 읽어봐야 하겠다고 했다. 그렇지, 필자는 전문번역업체의 전문번역사가 아닌, 메디컬라이팅과 유학 경력이 있는 약학박사니까 말이다. 대표의 피드백은 한마디였다. 퀄리티 있네. 대표는 행정 직원에게 필자의 결과물을 그 업체에 전달하여 어찌 생각하냐고 물어보라고 하는 것까지 들었다.
필자는 이 사건이 여전히 충격이다.
오늘날에도 비즈니스 세계에서 대단한 전문가처럼 포장을 하지만 실상 아무것도 아닌 사람을 당해 보기도 하고 보기도 한다. 사기꾼이었나, 먹고살기 위한 생업의 일환일 뿐이었나, 되고 싶은, 혹은 잘하고 싶은 욕망이었을까. 아니면 필자의 주관적인 견해일 뿐일까. 다른 사람 속을 들어가 보질 않았으니 모르겠다만, 최소한 필자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최소한,
나의 업무에 있어서만큼 날카로운 칼날 같은 지성으로 업무를 제대로 요리해 고객에게 바치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