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오랫동안 ‘천조국’이라 불려왔다. 이는 단순한 별명이 아니라, 전 세계 국방비의 상당 부분을 혼자서 감당해 온 국가라는 현실을 반영하는 표현이었다. 그러나 이제 이 표현은 더 이상 현재의 미국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미국은 스스로를 ‘2천조국’으로 끌어올리려는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백악관이 요청한 2027 회계연도 국방 예산은 약 1조 5천억 달러, 한화로 약 2264조 원에 달한다. 이는 기존 대비 약 40% 증가한 수치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큰 규모의 증액 시도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단순한 숫자의 확대를 넘어, 이 변화는 미국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주는 신호다. 결국 이 질문으로 귀결된다. 미국은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가.
이번 국방비 증액의 본질은 단순한 군사력 강화가 아니다. 핵심은 ‘전투 준비 태세의 회복’이다. 그동안 미국은 대테러전 중심의 비대칭 전쟁과 제한적 개입 전략, 그리고 비용 절감을 중심으로 국방을 운영해 왔다. 그러나 이번 예산안은 이러한 흐름을 완전히 뒤집는다. 이제 미국은 다시 대국 간 전쟁, 즉 전면전을 상정한 군대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억제를 넘어 실제로 싸울 수 있는 군대를 만들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특히 이번 예산안에서 주목해야 할 부분은 무기체계 투자 방향이다. 미국은 ‘골든돔’이라 불리는 미사일 방어체계를 구축하려 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방어 시스템이 아니라, 극초음속 미사일까지 대응 가능한 다층 방어망을 구축해 미국 본토를 완전히 보호하겠다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미국은 더 이상 공격받지 않는 국가가 되겠다”는 전략적 메시지다.
여기에 더해 등장한 것이 이른바 ‘트럼프급 전함’이다. 이 전함은 약 3만 5천 톤급으로, 기존 미 해군 주력인 알레이버크급 구축함보다 약 네 배에 달하는 규모를 가진다. 단순한 함정이 아니라 장거리 타격, 다중 전장 통합, 네트워크 중심 전투를 수행하는 미래형 플랫폼으로 설계될 가능성이 높다. 이는 해군 전력이 단순한 함대 개념을 넘어, 하나의 ‘전쟁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미국은 왜 지금 이런 선택을 했을까. 그 배경에는 변화된 글로벌 위협 환경이 자리하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재래식 전면전이 여전히 현실이라는 사실을 다시 증명했다. 이란은 중동에서 대리전을 확장하며 글로벌 에너지 안보를 흔들고 있고, 중국은 남중국해와 대만 문제를 중심으로 미국과의 패권 경쟁을 본격화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더 이상 ‘전쟁을 피하는 전략’이 아니라 ‘전쟁을 대비하는 전략’으로 전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번 예산안에서 더욱 중요한 점은 국방비 증가 자체보다, 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방식이다. 백악관은 기후, 주택, 교육 등 주요 국내 프로그램의 예산을 축소하고, NASA 예산까지 삭감하는 방안을 포함시켰다. 이는 단순한 재정 조정이 아니라 국가의 우선순위가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복지보다 국방을 우선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하고 있으며, 이는 국가 철학의 변화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 예산안이 그대로 통과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 의회는 공화당이 다수당이지만 민주당과의 격차가 크지 않고, 중간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복지 축소와 국방비 확대는 정치적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조정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규모가 아니라 방향이다. 미국은 이미 선택을 했다. 그리고 그 방향은 명확하다.
이러한 변화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을 포함한 동맹국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주한미군의 역할은 단순한 주둔군을 넘어 전략적 거점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고, 방위비 분담에 대한 압박 역시 더욱 강화될 것이다. 동시에 한국군 역시 첨단화와 전투력 중심 구조로의 전환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국 미국이 강해질수록 동맹국의 책임도 함께 커지는 구조가 형성된다.
지금 세계는 분명히 변하고 있다. 전쟁은 더 이상 가능성에 머무르지 않고, 현실적인 선택지로 다시 등장하고 있다. 군사력은 다시 국가 경쟁력의 핵심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경제와 안보는 분리될 수 없는 영역이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미국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강하게 움직였다.
이번 국방비 증액은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선언이다. 미국은 다시 싸울 준비를 하고 있으며, 동시에 패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은 우리에게 돌아온다. 대한민국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복지와 안보 사이에서,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방향을 선택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미루는 순간, 우리는 변화의 주체가 아니라 대상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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