츨산 전 어린이집 상담에 다녀왔다. 출생 신고를 한 후에 3개의 어린이집에 대기를 걸 수 있었는데, 집 근처 국공립 어린이집 2군데에 미리 지원을 하기로 결심해서 영아 시기를 보낼 수 있는 곳 추가로 1군데만 대기를 걸 수 있었다. 복직하면 나와 현이 대신에 아기를 돌보아줄 기관을 정하는 일이라 미리 알아보고 싶은 마음에 상담 신청을 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가정 어린이집에 상담을 다녀왔다. 같은 아파트 단지라 집과 같은 구조에 원장 선생님도 아이들 위생, 건강, 교육에 열정적 이어 보이셨다. 어린이집에 대한 기본 설명이 끝나고 질문타임, 본격적으로 언제부터 아이를 맡길 수 있는지 이야기를 했다.
원장님은 본인은 아기가 적어도 12개월까지는 집에서 애착 형성이 되면 좋겠다고 하셨다. 마음속으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우리 부부는 내가 아기 생후 8개월까지, 그리고 이어서 남편이 생후 12개월까지 육아휴직을 이어 쓰면서 아기를 돌보려고 계획 중이었다. 주변에서, 육아 서적에서 적어도 3년은, 아주 적게 잡아도 18개월은 아기가 부모랑 지내야 한다고 이야기했던 것들이 마음에 걸렸었다. 우린 그래도 원장님이 이야기하신 '적어도 12개월'은 집에서 함께한 후에 기관에 맡길 수 있으니까.
우리 가족의 계획을 먼저 이야기했다.
"제가 내년 5월에 복직하고, 남편이 그 후에 9월까지 아기를 돌볼 거라 생후 12개월쯤 입소하면 될 것 같아요."
라는 말에 돌아온 원장님의 대답.
"엄마가 5월에 복직한다고요? 그럼 애기를 그전부터는 어린이집에 보내야겠네요."
"(아, 잘못 들으셨나 보다.) 그게 아니라 제가 복직해도 아빠가 9월까지 아기 돌보려고 육아휴직을 쓸 거예요."
"애착형성은 엄마랑 하는 거지. 아빠랑 하는 거 아니에요. 그런 애들은 어린이집 적응도 못해요. 엄마가 복직할 거면 그 시기에 맞춰서 보내세요. 아기 생후 6개월?"
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싶었다. 설명하시는 내내 12개월 애착형성을 그렇게 강조하시고선 아빠가 휴직하고 애기를 본다는데도 차라리 생후 6개월에 보내서 어린이집 선생님이랑 애착을 쌓게 해 주라는 얼토당토않은 이야기가 오고 갔다.
집에 오는 길에 화가 나고 속상해서 뱃속의 아기에게 말했다. '아가야, 너는 엄마도 있지만 아빠도 있어. 저분이 아빠 없는 것처럼 이야기를 하시네.'
임신 후에 아기 키우는 일에 대해 공부하고, 육아용품을 알아보면서 항상 남편 현이와 함께였다. 그래서인지 몸으로 아기를 품고 있는 건 나였지만,혼자 아기를 임신하고 있다고 억울했던 적은 없었다. 임신기 동안 들었던 생각, 감정들을 모두 현이와 공유했고, 나중에 아기가 크면 주려고 쓰기 시작한 작은 책도 엄마인 나 혼자서가 아니라 현이와 같이 마치 공유 일기를 쓰듯이 번갈아가며 썼다. 아기를 기다리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이 엄마라고 해서 아빠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운 좋게도 현이는 회사에서 배우자 육아휴직을 1개월, 3개월이라도 쓰는 분위기였고, 남편이 6개월 육아휴직을 쓰면 휴직 급여를 더 많이 주는 제도를 핑계로 이미 회사에 6개월 휴직을 쓰겠다고 이야기를 해둔 터였다. 우리는 같은 마음으로 이미 아기를 돌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원장 선생님과의 대화는 이런 아빠의 돌봄을, 아기를 향한 사랑을 송두리째 무시하는 것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앞으로 육아를 하면서 수없이 이런 차별을 겪게 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0.65라는 심각한 출산율(2023년 4분기 기준)이 사회의 문제로 대두되면서 관련해서 많은 다큐멘터리가 쏟아져 나왔다. 임신 후에 육아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이런 콘텐츠들을 현이와 챙겨보기 시작했는데, 세계 각국의 출산율과 관련 정책, 사회의 시선에 대해 다룬 EBS 프라임 다큐가 인상적이었다. 이미 출산과 육아에 대한 사회적 기반이 잘 갖추어진 나라들의 정책을 보면서 새삼 부럽기도 하고, 우리나라는 언제쯤 저런 수준의 육아 복지가 가능해질까 싶었다. 출퇴근 시간이 9 to 6가 아닌 승무원, 간호사 등의 직업을 가진 부모를 위한 24시간 보육시설을 갖춘 핀란드, 육아휴직 기간에도 근무했을 때와 거의 동일한 수준의 급여를 제공하는 프랑스...
그중에 제일 눈에 띄었던 건 스웨덴의 정책이었다. 남성의 30%가 배우자 육아휴직을 쓴다는 스웨덴은 휴직 정책상 남편이 최소 90일 이상 육아휴직을 의무적으로 써야 한다(우리나라 남성 육아휴직 사용 비율 6.8%와 대조된다). 사회적인 분위기도 아기가 태어났는데 육아휴직을 쓰지 않는 남자가 있다면 그 사람을 아기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이상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생겼다고 한다. 그만큼 아빠도 아기를 돌보는 것이 당연했다. 그리고 정책상으로도 일주일 중 2일만 출근하는 등 유연 육아기 근무가 가능했고, 아기 돌봐줄 사람이 없는 날 1~2일 휴가를 신청하면 국가에서 급여를 대신 지급해 주는 제도 등 엄마 아빠 모두 아기를 돌보면서 직업도 유지할 수 있는 세심한 제도들이 있었다.
스웨덴에서 아기 3명을 낳아 기르는 아빠의 인터뷰가 인상적이었는데, 엄마 혼자서 휴직을 사용했다면 아마 아내가 계속 일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엄마와 아빠 모두 적극적으로 육아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그 둘은 맞벌이를 하면서도 아이들 셋을 낳아 기를 수 있었다. 스웨덴의 모든 출생률 변화 지표가 '아빠의 사랑'을 배제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고있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아빠의 돌봄과 사랑을 배제한다고 느낀다. 엄마 아빠 모두 아기를 돌보는 보호자인데 어째서 아기와의 애착 형성은 엄마만 할 수 있는 걸까? '아빠가 육아를 많이 도와주나요?'라는 질문이 자연스러운 것부터 그 부분을 증명한다고 생각한다. '도와주는 것'이라는 단어에는 주양육자는 당연히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현이가 육아휴직을 쓰고 엄마인 내가 복직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부모님께 이야기했을 때, 우리 엄마조차도 '현이가 애기를 볼 수 있을까'라는 걱정을 먼저 했다. 엄마인 나도 아직 아기를 돌볼 줄 모른다. 근데 왜 엄마는 처음이어도 당연하게 아기를 볼 줄 안다고 생각하고, 아빠는 못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이런 사회적인 시선이, 기성세대부터 이어져 온 인식이, 아기를 낳아 기르기 어려운 사회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한다. 겉으로는 저출산이 큰 사회적인 문제라고 이야기하며 정부도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철저히 '개인의 문제'로 치부된다.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어> 책에는 라디오 PD인 작가가 취재했던 방송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작가는 하루에 18시간 이상, 혹은 하루종일 일하지 않고선 생계가 어려운 싱글맘, 싱글대디가 도저히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엄마 아빠가 있음에도 아이들이 보육원에서 지내야 하는 사연을 인터뷰했다. 한두 가정에게만 일어나는 상황이 아닌 아이 돌봄에 대한 안타까운 사회적인 문제였고, 인터뷰이 중 한 명은 시청 직원이 먼저 '보육원에 보내라'며제안을 했다고 했다.
이 방송이 나간 후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놀랍게도 그 반응들은 '이런 안타까운 사회문제가 있다니'가 아니라, '책임도 못질 거면서 애는 왜 낳았냐'라는 비난의 방향이었다.
작가는 다른 나라의 상황은 어떨지 궁금해서 프랑스의 지인에게 인터뷰이들의 사연을 프랑스 복지 담당자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복지 담당자는 '이 사람들 지금 어디에 있냐'며 깜짝 놀랐다고 했다. 프랑스 내에서 일어난 일인 줄 알았던 것이었다. 그만큼 그곳에서는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문제이고 상상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 글을 읽고 현이와 저출산이 사회 문제로 대두된 지 몇십 년이 흘러도 우리나라에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쉬워지지 않는 이유를 깨달은 것 같았다. 가장 중요한 건 사회 인식이었다. 한국에서 아이를 기른다는 건 철저하게 '개인의 문제'였다. 부모가 된 입장에서 생계유지를 위해서 아이를 시설에 맡겨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가슴 찢어지는 일인가. 그런데 그 정도 능력이 안 되는 사람은 아이를 애초에 낳지 말았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게 '사회의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개인을 비난하기 이전에 그 부모들이 보육원에 아이를 맡기지 않고도 함께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있는 제도적인 방법이 없을지, 없다면 다른 나라는 어떻게 지원하고 있을지 대안을 먼저 생각해보아야 하는 게 아닐까.
엄마에게만 돌봄의 의무를 지우는 사회적인 시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엄마가 되어서 아이보다 일을 먼저 생각하다니, 엄마라면 그 정도 희생은 해야지.. 마치 엄마 개인은 아이만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것처럼 여긴다. 엄마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한 사람으로서 직업의 세계와 가정의 세계를 모두 가꿀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현이가 신생아 시기에 육아휴직을 쓰겠다고 하자 상사분이 했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엄마 있는데 아빠가 옆에서 뭐 하려고. 할 거 없을 텐데?' 아기에게는 엄마가 필요하고, 엄마가 모든 것을 다 하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 엄마와 아빠 모두, 두 명이 적극적으로 아이를 돌본다면 한 명이 혼자 노력하는 것보다 더 아이를 기르기 좋은 사회가 되지 않을까한다.
아직 육아를 경험해해 보지 못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가진통이 오고 가고를 반복하고 있으니 직접 해보고 나서야 '애착형성'이니, '모성애의 중요성'이니 하는 것들에 대해 좀 더 힘을 내어 목소리를 낼 수 있겠지 싶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와 현이의 아이를 향한 사랑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가 처음 결혼할 때 '음식은 여자가 해야지, 그래도 집안일은 여자가 다독이는 거다'라고 했던 양가 부모님도 이제는 모두 요리하는 현이를 당연하게 여기게 된 것처럼, 육아도 우리만의 방법을 찾으리라 믿는다.
쉽지 않겠지만 사회적인 시선도 조금 더 빠르게 변화하기를 바래본다. 스웨덴도 처음부터 아빠의 육아를 당연하게 여겼던 것은 아니었다. '아빠 육아휴직 90일 의무화' 제도가 시행되기 직전인1995년 남성의 육아휴직 비율은 겨우 0.5% 였다.제도가 생긴 후에야 현재 사회 모습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고 한다. 차라리 법적으로 강제성을 띄어서라도 아빠가 아기를 돌보는 모습을 더 많은 사람들이 보고 느끼며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가 되기를, 그래서 엄마 아빠 모두 직업을 포기하지 않고도 가정을 꾸릴 수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