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소프트웨어의 문제는 이미 익숙한 문제이지만 해결되지 않고 있다
"(키오스크가) 안 되잖아! XX! 나 모르니까 못한다고 얘기하잖아" (노인)
"욕은 하시면 안 되죠" (알바생)
"돈 줄 테니까 줄 거 줘요. 아메리카노 두 잔! 라떼 두 잔! X 같은 거(키오스크) 만들어 가지고 나이 먹은 사람 죽으라고 만든 거야 뭐야" (노인)
(출처: "나이 먹으면 죽으라는 거야?"…'진상 손님' 된 노인의 사정 [이슈+], 한국경제, 2023.2.11)
디지털 갑질: 잘못된 소프트웨어와 고객에게 전가된 불편함
디지털 갑질은 사용자 경험을 무시한 채 설계된 소프트웨어에서 발생하며, 우리의 일상과 업무에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카페 키오스크 도입으로 불편을 겪은 노인의 사례는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인건비 절감을 위해 도입된 키오스크가 고령층에게 큰 불편을 초래했고, 이에 분노한 노인은 "나이 먹은 사람 죽으라는 거냐"며 항의했다.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고령층의 64.2%가 키오스크 사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한국소비자원의 조사에서는 복잡한 작동 방식과 작은 글씨, 주변 시선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았다.
재난문자 역시 디지털 갑질의 대표적 사례다.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연평균 54,000건의 재난문자가 발송되며, 사용자는 지나치게 많은 알림에 무감각해졌다. 일부 사용자는 재난문자를 끄기도 했지만, 그 과정조차 복잡했다. 특히 운전 중 재난문자가 도착하면 길 안내 화면을 가려 안전에 위협을 주기도 했다.
전화 자동응답 시스템(ARS)도 비슷한 문제를 보인다. 복잡한 메뉴와 선택 과정에서 사용자는 상담사 연결을 위해 0번을 누르게 된다. 이처럼 비효율적인 시스템은 문제 해결보다는 사용자에게 부담을 주는 장치로 변질되고 있다.
한 일식 오마카세 식당은 전화 예약 대신 모바일 서비스로 예약을 받도록 하여 많은 고객을 불편하게 했다. 필자는 생소한 시스템에 당황해 예약을 시도하다 포기하고 다른 식당에 예약을 했다. 이후 해당 식당은 전화 예약을 재도입했지만, 이미 떠난 고객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는 디지털 시스템이 오히려 고객에게 추가적인 불편을 주는 전형적인 디지털 갑질이다.
전자정부 서비스는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지만, 사용성에서는 여전히 문제를 보인다. 복잡한 인증 절차와 민원 시스템으로 인해 많은 사용자가 유튜브나 블로그에서 사용법을 먼저 학습한 뒤 서비스를 이용한다. 이는 직관적이지 않은 시스템의 한계를 보여준다.
반면, 팬데믹 시기 공적 마스크 재고 정보 제공은 성공적인 디지털 서비스의 예다. 정부는 별도 사이트 대신 국민들이 자주 사용하는 앱에 정보를 연동했고, 개발자들의 자발적 참여로 서비스가 빠르게 구현되었다. 이는 사용자 중심의 접근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며, 좋은 소프트웨어와 나쁜 소프트웨어를 직관적으로 구분한다. 불편한 소프트웨어를 반복해서 사용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미리 공부하고 준비하거나, 아예 사용을 회피한다.
2000년대 초부터 웹 서비스와 모바일 앱에서는 고객 경험(UX)이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많은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프로젝트는 고객 경험을 고려하지 않고 개발자 중심으로 설계되고 있다. 이는 모든 불편이 고객에게 전가되는 디지털 갑질로 이어진다. 그러나 오늘날 사용자는 더 이상 나쁜 경험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를 "좋은 경험의 불가역성(Irreversibility)"이라고 한다.
디지털 갑질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 고객과 직원 모두에게 스트레스와 비용을 발생시키고, 조직의 효율성까지 저해한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성공하려면 기능뿐만 아니라 사용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
디지털 갑질도 예방 및 대처 방안이 필요하다.
기존의 ‘갑질’ 문제는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이뤄지고 있다. 많은 조직에서 부정 방지 교육과 함께 갑질 방지 교육이 정기적으로 시행되며, 공무원 갑질 방지 방안, 직장 내 갑질 방지 방안, 아르바이트 갑질 해결을 위한 매뉴얼이 마련되어 있다. 이 매뉴얼에는 신고와 조사, 피해자 보호, 사후 관리까지의 구체적인 프로세스가 포함되며, 고위 관리자들을 위한 자가 진단 체크리스트와 재발 방지를 위한 교육도 포함된다.
그러나 '디지털 갑질'에 대한 예방 및 대처 방안은 마련되어 있지 않다. 소프트웨어가 가해자이기 때문에 불만을 제기할 대상도 없고, 고객센터에 문의해도 담당자는 해결할 권한이 없다. 문제 해결은 오랜 시간이 걸리며, 대부분의 경영진은 소프트웨어를 직접 사용하지 않아 사용자의 불편을 체감하지 못한다. 정부나 금융기관의 디지털 프로젝트가 실패해도 조직 내에서 큰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디지털 갑질로 인한 고객 불만이 커지면 기업은 더 많은 직원을 투입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예를 들어, 공항의 셀프 체크인 키오스크는 인건비 절감과 신속한 서비스 제공을 목표로 도입되었지만, 결국 직원이 배치되며 도입 취지와 어긋났다. 이처럼 사용자가 불편함을 느끼고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근본적인 시스템 개선 없이 임시방편으로 대응하는 경우가 많다.
직원의 업무 시스템에 대한 불만은 더 심각한 문제다. 직원들은 업무를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불편함을 감내하며 문제를 드러내지 않는다. 소프트웨어를 비판하면 무능력으로 평가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조용히 이전 시스템을 사용하거나 문제를 참고 넘긴다. 그 결과, 잘못된 시스템의 문제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으며, 대처 방안도 마련되지 않는다.
디지털 갑질을 해결하려면 예방과 대처 방안을 체계적으로 마련해야 한다. 실태 조사를 통해 문제를 파악하고, 불만 접수와 처리 프로세스를 구축해야 한다. 고객과 직원의 불편을 조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해결하고, 초기 설계 단계부터 사용자 중심의 접근을 도입해야 한다. 또한 경영진이 직접 디지털 시스템을 사용해 사용자 경험을 체험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디지털 갑질을 방치하면 조직의 효율성이 저하되고, 고객과 직원 모두가 피해를 입는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성공하려면 사용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설계와 경영진의 관심이 필요하다. 더 이상 잘못된 시스템의 비용을 사용자와 직원에게 전가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