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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석 Dec 10. 2024

디지털 갑질: #10 용어를 사용자 친화적으로 정리하자

사용자에게 혼란을 초래하는 용어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디지털 갑질을 예방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의 두번째는 사용자 친화적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은행에서 공인인증서를 갱신하라는 알림을 받았다. 이를 위해 은행 사이트에 접속해 보니, 공인인증서는 사라지고 '공동인증서'와 '금융인증서'라는 두 가지 인증서가 있다고 한다. 어라, 분명히 '공인'인증서였던 것 같은데? 낯선 이름의 두 인증서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설명을 읽어보았지만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결국, "나중에 해야지" 하고 사이트를 닫았다.


며칠 후, 급히 은행 이체를 해야 할 일이 생겼다. 어쩔 수 없이 인증서를 갱신하려 다시 사이트를 열었다. 전에 봤던 설명을 다시 읽어보았지만 여전히 어렵다. '공동인증서'와 '금융인증서'라니, 이게 말장난인가 싶다. 결국 주변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네이버나 유튜브에서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다.


그림. 은행 이용을 위한 인증서 설명을 해주는 콘텐츠 (출처: https://m.blog.naver.com/tmdtjq80/223290587525)


이 상황은 단순히 나만의 경험이 아닐 것이다. 공인인증서가 폐지되고 공동인증서와 금융인증서로 대체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유사한 혼란을 겪고 있다. 둘 중 어떤 인증서를 선택해도 큰 차이는 없지만, 이전처럼 USB에 저장해 가지고 다니려면 공동인증서를 선택해야 한다.


디지털 갑질을 방지하기 위해 용어를 사용자 친화적으로 바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는 또 다른 사례는 은행 앱의 메뉴 이름 문제다. 나는 한 은행의 UX 개편 과제를 진행한 적이 있다. 모든 메뉴를 아래 그림처럼 정리했다.


한 은행 모바일 앱의 메뉴명: 고객의 용어가 아니라 은행직원의 업무 용어이다.


가장 큰 문제는 메뉴 이름들이 은행 직원의 업무 기준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예를 들어, 고객이 원하는 기능은 특정 계좌에서 다른 계좌로 돈을 보내기, 이번 달 카드값을 남기고 저축 계좌로 돈 옮기기 같은 간단한 작업이다. 하지만 이런 단순한 요구도 고객이 은행원이 사용하는 용어를 재해석해 적합한 메뉴를 선택해야만 실행할 수 있다.


왜 이런 문제가 발생했을까? 인터넷 뱅킹이 보편화되기 전에는 이런 기능들이 모두 은행원이 사용하는 내부 시스템의 일부였다. 그 결과, 고객이 직접 사용하는 시스템에서도 여전히 은행원이 쓰던 메뉴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고객 관점에서는 직관적이지 못한 메뉴 이름이 혼란과 불편함을 초래하게 된다.  


위 사례들은 사용자를 배려하지 않은 용어의 전형적인 문제를 보여준다. 복잡하고 낯선 용어는 사용자가 서비스를 이용하거나 이해하는 데 큰 장벽으로 작용한다. 2021년 전자정부 이용 실태 조사에서도 사용자 불만족 원인의 58.4%가 '지식 부족으로 인한 신고서 작성의 어려움'이었다(출처: 조세금융신문, 2022.7.22).


'간이과세자', '원천징수', '경정청구', '중간예납', '공제한도' 같은 용어들은 전문가들에게는 익숙하겠지만, 일반 사용자들에게는 난해하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어려운 용어들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때 발생한다. 잘못된 선택은 사용자의 스트레스와 혼란을 가중시키며, 경우에 따라 잘못된 결정을 초래할 수도 있다.


이와 대비되는 좋은 사례가 있다. 바로 토스(Toss)다. 토스는 '입금'과 '출금'이라는 금융권의 전통적인 용어를 '채우기'와 '꺼내기'로 바꾸었다. 이는 사용자들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용어를 단순하고 친근하게 재구성한 결과다. 토스의 이런 변화는 사용자가 금융 서비스를 이용할 때 느끼는 심리적 부담을 크게 줄이고, 서비스의 접근성을 높였다.


하지만 이런 용어를 바꾸는 작업은 단순히 단어를 대체하는 것 이상으로 복잡하다. 특히, 내부 이해관계자들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큰 어려움이 따른다. 이미 기존 용어에 익숙해져 있는 관계자들에게는 새로운 용어로 전환하는 것이 불필요하거나 비효율적으로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명확하고 쉬운 용어는 사용자 경험을 개선하는 데 필수적이다. 모호하거나 전문적인 용어는 사용자들에게 혼란을 줄 뿐만 아니라 서비스 사용을 망설이게한다 (심하면 포기한다). 이런 문제는 금융이나 의료, 교육, 법률과 같이 전문성이 높은 분야일수록 심화되기 쉽다.


2003년 삼성전자는 사용자 매뉴얼 프로젝트를 통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려 했다. 표준 용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전사적으로 공유하며 모든 부서가 통일된 용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국문학 전공의 전문 인력을 UX 조직에 채용해 용어 정리를 체계적으로 진행했다. 이는 고객이 제품을 쉽게 이해하고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사용자 친화적 용어 사용이 디지털 갑질 방지의 출발점

디지털 시대에 성공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단순히 기술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용자가 서비스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돕는 명확하고 친근한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조직은 다음과 같은 노력을 해야 한다:

사용자 관점에서 용어를 검토하고 직관적으로 바꾼다.

모든 부서가 일관된 용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표준을 정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한다.

사용자 테스트와 피드백을 통해 용어가 실제로 잘 이해되는지 지속적으로 확인한다.


명확하고 친근한 용어는 단순한 변화를 넘어, 더 큰 효과를 가져온다. 사용자는 서비스를 더 쉽게 이해하고, 기업은 신뢰를 쌓고 서비스의 만족도를 높임으로써,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할 수 있다. 디지털 갑질을 방지하기 위한 첫걸음은 용어를 사용자 중심으로 재정비하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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