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방식의 혁신으로 비용을 최적화하며 고객 경험을 혁신한다.
많은 기업들이 고객이 사용하는 웹사이트나 앱의 UX에는 신경을 쓰지만, 정작 직원들이 매일 사용하는 업무 시스템에는 상대적으로 관심이 부족하다. 직원들은 주어진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업무 시스템이 잘못 설계되면 직원들은 실수를 하고 비효율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으며 업무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게 된다. 결국 기업의 생산성을 저하시키며 큰 경제적 손실로 이어진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기업들은 직원 경험(Employee Experience)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IBM과 Apple이 협업한 MobileFirst 프로젝트는 대표적인 사례로, 업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직관적이고 효율적인 업무 시스템을 구축하여 직원들이 빠르고 정확하게 일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이는 단순한 IT 시스템 개선을 넘어, 기업의 운영 방식 자체를 변화시키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했다.
특히, 인건비가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밀레니얼 및 Z세대가 기업 내 주요 인력으로 자리 잡아가는 현 시점에서 업무 시스템의 디지털 최적화는 필수가 되었다. 최근 많은 대기업들이 "일하는 방식의 혁신"을 목표로 디지털 전환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기업의 비용 최적화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업무 몰입도를 높이고,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돕는 핵심 전략이 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업무시스템 개선을 등한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래와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참조: DX by UX, 이동석, 2023; https://brunch.co.kr/@dongseok17/27)
업무 시스템은 '비즈니스 핵심'이 아니라는 오해: 기업들은 매출 증가나 고객 확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대외적인 서비스에는 많은 예산과 자원을 투자하지만, 직원들이 내부에서 사용하는 시스템은 상대적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업무 시스템은 기업 운영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지만, 고객을 직접 상대하는 서비스가 아니라는 인식 때문에 중요한 비즈니스 투자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 번 개발하면 끝'이라는 잘못된 접근: 많은 기업들은 업무용 소프트웨어를 일회성 프로젝트로 개발하고, 한 번 구축하면 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소프트웨어는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최적화되어야 한다. 고객용 서비스는 끊임없이 업데이트하면서도, 내부 직원이 사용하는 ERP나 CRM 같은 내부 시스템은 5~10년 전에 만든 것을 그대로 방치되는 경우가 흔하다 (10년에 한번씩 개편한다).
기존 시스템에 대한 '현상 유지 편향': 기업 내 IT 부서나 의사결정권자들은 기존 시스템을 변경하는 데 따르는 리스크를 과도하게 우려하는 경우가 많다. 기존 시스템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는 것이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특히, 업무 시스템을 변경하면 직원들의 재교육이 필요하고, 전환 과정에서 업무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 주요한 이유로 작용한다.
비용 절감 우선주의와 단기적인 ROI(투자 대비 수익률) 중심의 투자: 많은 기업들은 IT 투자를 할 때 ROI를 중요하게 여긴다.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디지털 서비스는 새로운 매출을 창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투자하기 쉽지만, 업무용 소프트웨어는 비용 절감 효과가 주요 성과로 측정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IT 부서와 현업 부서 간의 소통 부족: 업무용 소프트웨어 개발 및 개선은 IT 부서의 역할로 간주되지만, 정작 이를 사용하는 직원들의 요구사항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업 부서와 IT 부서 간의 커뮤니케이션 부족은 업무 시스템의 비효율성을 초래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다. 현업 부서의 직원들은 "업무가 불편하다"는 피드백을 주지만, IT 부서에서는 기존 시스템의 유지보수와 기능 개발에 집중하느라 이러한 피드백을 적극적으로 반영하지 못한다. 그 결과, 직원들이 불편을 감수하며 기존 시스템을 그대로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계속된다.
'기능 중심' 개발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함: 많은 기업들이 업무 시스템을 개발할 때 기능 구현을 최우선 목표로 삼는다. 즉, 필요한 기능을 갖춘 시스템을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며, 실제 사용자의 경험(UX)이나 편의성은 고려 대상에서 제외된다.
한 가지 더 중요한 요인이 있다. 업무시스템의 UX와 고객이 쓰는 웹사이트나 앱의 UX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이를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고객 UX의 목표는 사용자가 서비스를 쉽게 이해하고, 빠르게 목표를 달성하며, 긍정적인 경험을 통해 다시 방문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하지만 업무 시스템 UX의 목표는 직원들이 업무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실수 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기업들은 업무 시스템 UX를 고객 UX와 동일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UI만 예쁘게 만들고, 일부 기능만 추가하는 방식으로는 직원들의 생산성을 향상시킬 수 없다.
업무시스템의 UX는 고객용 웹/앱과 다르다. 그래서 다른 디자인 역량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니 현재 많은 기업에서 UX 전문가를 채용하고 있지만 대부분 고객 UX의 전문가들이며 업무 시스템 UX를 전문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인력은 매우 부족한 상황이다. 업무 시스템 UX는 복잡한 업무 프로세스를 이해해야 한다 고객 UX 전문가들은 주로 일반 사용자(User) 중심의 인터페이스를 설계하지만, 업무 시스템 UX는 현업 직원들이 수행하는 복잡한 업무 프로세스를 분석하고 최적화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금융권의 리스크 관리 시스템, 병원의 전자의무기록(EMR), 대기업의 공급망 관리 시스템(SCM) 등은 전문적인 도메인 지식을 빠르게 파악할 수 있는 UX 전문가가 필요하다.
나는 고객 UX와 직원 UX를 둘 다 디자인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었다. 삼성전자, LG전자, SK텔레콤에서 일반 사용자들 대상의 모바일 서비스를 10년 정도 디자인하다가, 업무용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삼성SDS로 이직을 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지만 원래 UX가 태동한 업무용 소프트웨어의 UX를 경험하게 되었다 (마이크로소프트 엑셀의 광고가 그 대표적 사례이다. 이 광고를 보시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Ox0mrt2Jqo). 이후 업무시스템의 UX를 10년 이상 수행하고 있다.
업무용 소프트웨어의 UX 수준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가장 기본적인 단계는 정보 제공 수준(Information Level)으로, 이 수준에서는 사용자가 필요한 데이터를 조회할 수 있지만, 실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인사 시스템에서 직원의 근태 기록을 확인할 수 있지만, 출퇴근 시간 수정 요청이나 연차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문서를 작성해서 제출해야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 단계에서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이루어질 뿐, 사용자의 업무 효율성은 크게 개선되지 않는다.
그 다음 단계는 기능 제공 수준(Function Level)이다. 이 수준에서는 단순히 정보를 조회하는 것을 넘어, 특정 기능을 활용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사용자의 개입이 많고, 비효율적인 절차가 포함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비용 정산 시스템에서 영수증을 직접 입력하고 승인 요청을 할 수 있지만, 자동 입력 기능이 없어서 사용자가 매번 수작업으로 정보를 입력해야 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기능이 제공되긴 하지만, 업무의 흐름이 최적화되지 않아 사용자의 부담이 크다.
가장 이상적인 수준은 업무 지원 수준(Work-Supportive Level)이다. 이 단계에서는 소프트웨어가 단순한 기능 제공을 넘어서, 사용자가 빠르고 정확하게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업무 흐름이 최적화되며, 반복적인 작업이 최소화되고, 사용자 실수를 방지하는 기능이 포함된다. 예를 들어, AI 기반의 비용 정산 시스템이 영수증을 자동으로 인식해 비용 항목을 분류하고, 회사의 정책을 반영해 자동 승인 가능 여부를 알려주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시스템은 사용자의 개입을 최소화하면서도 업무 정확도를 높이며, 불필요한 수작업을 없애 생산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
현재 많은 기업들이 사용하는 업무용 소프트웨어는 여전히 정보 제공 수준이나 기능 제공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직원들은 비효율적인 프로세스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하지만 디지털 전환의 목표는 단순한 기능 추가가 아니라, 직원들이 보다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업무용 소프트웨어는 직원들이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하며, Work-Supportive 수준의 UX를 구현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업들은 업무 흐름을 면밀히 분석하고, 자동화 기능을 도입하며, 직원 경험(UX)을 중심으로 업무 시스템을 설계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업무 시스템의 UX 개선은 단순한 편의성 향상을 넘어, 조직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다.
이제 업무시스템의 디지털 갑질을 방지하고 회사의 업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제언을 정리해보겠다.
직원들이 일하는 방식의 혁신이 핵심 전략임: 직원들의 일하는 방식을 혁신하는 것은 단순한 편의성 개선을 넘어, 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높이는 핵심 요소다. 불필요한 반복 업무를 줄이고, 실수를 방지하며, 핵심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환경이 마련될 때, 직원들은 더욱 창의적이고 전략적인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업무 시스템을 단순한 기능 개발이 아닌 '업무 지원 도구'로 접근해야 함: 기존의 업무 방식 그대로를 소프트웨어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환경에서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UX를 설계해야 한다. 직원들이 최소한의 노력으로 업무를 처리할 수 있도록, 데이터 자동 입력, AI 추천 기능, 자동화된 워크플로우 등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사용자 중심의 업무 프로세스 설계: IT 부서 또는 PI 컨설턴트의 주도가 아닌, 현업 부서와의 협업을 통해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며, 업무 프로세스를 분석하여 직원들이 가장 불편해하는 부분을 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특히 사용자 중심으로 기획하고 검증할 시간적인 여유를 찾아야 한다. 아직도 많은 소프트웨어 개발이 UX 기획 없이 바로 시작된다.
업무 시스템 UX를 개선하는 전담 조직을 구성해야 함: 기업이 고객 UX를 개선하기 위해 UX팀을 운영하듯, 직원 경험(EX, Employee Experience) 개선을 위한 조직을 운영해야 한다. 단순한 UI 디자이너가 아닌, 업무 프로세스를 분석하고 최적화할 수 있는 UX 전문가가 필요하다. 특히 금융, 의료, 제조 등 특정 산업군에 특화된 UX 전문가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부 인력이 부족할 경우 전문가들을 찾아서 함께 일해야 한다.
실제 사용자 피드백을 반영하는 지속적인 개선: 업무 시스템을 한 번 구축한 뒤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개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 정기적으로 직원들의 피드백을 수집하고, 실제 업무에서 불편한 점이 없는지를 분석하여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한다.
업무시스템의 UX를 개선하면 직원들은 업무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할 수 있다. 이는 곧 기업의 비용 절감과 직결된다. 직원들이 비효율적인 시스템을 다루느라 낭비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실수로 인한 오류도 감소한다. 또한, 업무 만족도가 높아지면 직원들의 몰입도가 증가하고, 기업의 경쟁력도 강화된다.
고객 경험(CX)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직원 경험(EX)이다. 직원들이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기업만이 진정한 디지털 전환을 이룰 수 있다. 이제는 단순한 기능 제공을 넘어, 직원들이 더 스마트하게 일할 수 있도록 돕는 업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