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이라떼 Apr 12. 2024

첫 인스타 라이브 방송의 쓴 맛

 

인스타그램을 만든 지 5년이 되었다. 

엄마표 영어를 하겠다고 만들었던 인스타그램인데 실은 중간중간 슬럼프도 오고 그렇게 열심히 인스타를 하진 않았던 듯하다. 나의 관심은 쉴 새 없이 다른 곳으로 뻗어나갔고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 팔로워 수는 정체되었다. 어느 순간 영어보다는 나의 호기심을 이끄는 일들이 계속 생겨났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한 때 인스타그램 계정을 삭제해 보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난 뭘 해도 안 될 것 같아서... 내가 원하는 게 정확하게 뭔지도 모르겠고 방황하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주기 싫어서, 회피성향이 발동해서 일지도 모른다. 회사에선 그렇게 사표를 던지고 나왔고 결혼으로 도피했다. 그런데 아이를 낳고 나니 난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었다. 옛날처럼 그렇게 맘에 안 든다고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모든 걸 다 없었던 일처럼 리셋할 수는 없었다. 그러기엔 나를 쭉 지켜봐 주셨던 팔로워분들에게 미안해서, 그분들과 쌓았던 추억들이 인스타그램에 쌓여있으니까. 그렇게 어느 순간 가늘고 길게라는 마음으로 인스타를 지속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의 라이브 방송은 그렇게 열심히 들어가면서 정작 나는 라이브 버튼조차 켜본 적이 없었다.




인스타그램초창기와는 달리 요즘엔 많은 라이브 방송으로 팔로워들의 피로도가 극에 달해있는 상태다. 모든 인스타계정들의 참여도가 예전 같지 않은 지금에 나는 왜 라이브 방송을 시작했을까. 5년 동안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라방을 해보겠다고 늦은 저녁 세수를 하고 화장을 하고 머리를 손질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장소는 어디서 해야 하나. 줌은 가상배경이 있지만 인스타는 가상배경이 없으니 가장 배경이 깔끔한 거실로 나가서 주섬주섬 방송을 위한 세팅을 시작했다. 두 근 반 세 근 반 떨리는 마음은 방송 시간이 다가오자 더욱더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잘 안 쓰던 핸드폰 거치대가 열일한 오늘

홍보가 부족했던 탓일까,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들어와 주시진 않았다. 살짝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준비된 내용을 모두 소개하며 방송을 진행했다. 익숙한 닉네임의 인친분들이 들어와 주시니 어찌나 반갑던지, 다들 늦은 밤 귀한 시간을 내서 들어와 주신 건데 투덜거리지 말아야지 하고 마음을 바꾸니 어느새 참여숫자는 신경 쓰이지 않게 되었다.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하고 끝내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니 떨림도 멈추고 하고 싶었던 말이 입 밖으로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최대한 준비한 대본을 바탕으로 소개를 이어나갔다.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셨던 쑥쌤이 라방 도중 나에게 이렇게 말하셨다. 


정말 이것저것 여러 가지 일을 하신다고. 


맞다.


한 우물만 파도 모자란데 여러 우물을 파고 있는 사람이 바로 나. 


그마저도 여러 우물을 알차게 파고 싶은 욕심까지 더해진...


그런데 결국 이것저것 여러 가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종착역은 늘 하나였다. 바로 '책'이다. 엄마표영어를 할 때도 엄마표 수학을 할 때도 말이다. 세월이 흐르고 생각해 보니 책으로 아이랑 나눈 대화들이 추억이 되고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만약 이것저것 해보려는 시도가 없었다면 나는 인스타그램을 지우고 싶었던 그때의 나에게서 한 발짝도 성장하지 못하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을 테다. 


제한된 시간, 알려드려야 할 사항들을 체크하며 빠짐없이 하고 싶은 말들을 다 했다. 늘 그렇듯 지나가고 나면 아, 이걸 더 할 걸 그랬나 싶지만 이미 시간은 사라지고 난 후다. 담에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아쉬움을 남기는 게 발전의 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요즘 독서토론으로 중학교 아이들을 만나며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바로 "모르겠어요"인데, 정작 성인이 된 우리도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잘 모른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흥미를 가지는 게 뭔지 본질을 모르고 살면 남들의 이야기에 쉽게 휘둘리고 끌려다니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지금 내가 잘 살고 있냐고 누가 묻는다면 자신 있게 '네'라고 말하기엔 조금 어렵겠다. 하지만 성공이든 실패든 현재 내가 벌이고 있는 일들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들이니 그 결과를 담대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생겼다. 예전엔 문제를 내가 아닌 외부에게서 찾으려고 했다. 아니, 지금 내가 당면한 문제는 내가 만들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면서 다음을 향해 나아가 보도록 하자.

.

.

.

아차차! 라이브를 다 끝나고 나서야 알았다. 이원 라이브는 내 인스타 프로필에 뜨지 않는다는 걸. 


어쩐지 왜 다들 안 들어오시나 했는데 결국 제대로 라이브방송 위치를 설명하지 못한 나의 문제였다. 기다리게 해 드려서 어찌나 죄송했는지, 인스타 오래 했어도 라이브는 초보 그 자체였던 나였다. 문제는 외부가 아닌 나에게 있는 게 맞다는 사실. 첫 라이브 방송의 맛은 이토록 쓰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끓인 죽이 젤 맛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