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관점에서 문제 해결 실마리 찾기
UT 이후 우리가 풀어야 할 핵심 문제는 '더 쉽게 꺼내 쓸 수 있는 정리 형태’를 찾는 것이었다. 그동안 북카이브는 간단한 태그를 활용해 정보를 분류해왔지만, 타겟 유저(비문학파)에게 이 방식은 충분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들이 느끼는 정리와 활용에서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형태로 개선이 필요했다.
그럼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개선이 필요하다는 건 알지만, 구체적으로 어디를 어떻게 디벨롭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타겟 유저를 더 만나보면 되겠지만 당장 유저 인터뷰를 할 수 있는 리소스도 없었고, 유의미한 정량 데이터도 없는 상황이었다. 여러 서비스를 탐색하며 레퍼런스를 찾아보기도 했지만 마땅한 개선 방향을 찾기는 어려웠다.
나는 다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처음부터 차근차근 생각해 봤다.
“북카이브가 제공하고자 하는 핵심 가치는 뭐지?”
북카이브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지식 관리’이다. 줄곧 ‘지식 관리’라는 말을 써왔지만, 정작 난 이 개념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심지어 분류학(Taxonomy)이라는 학문이 따로 있을 정도로 딥한 영역인데, 우린 그 영역에 익숙하지 않았다.
북카이브의 본질적 개념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데, 아무리 유저를 만나거나 데이터를 본다고 뭐가 달라질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부터 이 개념을 제대로 알고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러던 중 마침 ‘세컨드 브레인’이라는 책을 알게 되었다. 세컨드브레인(Second Brain)이란, 지식, 아이디어, 생각 등 정보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정리해 나의 두 번째 뇌처럼 활용하는 지식관리 시스템을 말한다.
북카이브가 추구하는 ‘지식 관리’와 맞닿아 있는 개념이었고, 더 깊이 공부할 수 있을 것 같아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세컨드 브레인 개념을 다루는 책으로, 세컨드 브레인 구성 과정인 CODE 프레임워크를 소개한다.
CODE는 Capture(수집) - Organize(정리) - Distill(추출) - Express(표현) 네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곧 북카이브 유저들이 책에서 유용한 정보를 발견하고 기록하는 과정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각 단계에서 설명하는 포인트들이 북카이브 사용 경험과 연관된 것이 많아 개선 방향을 잡는 데 많은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Organize 단계를 읽으며 북카이브의 태그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 감이 잡혔다.
[힌트]
정보는 자신의 우선순위와 목표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리되어야 한다.
책에 따르면 사람들은 대부분 듀이십진분류법에 따라 정보를 정리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즉 책으로 따지면 과학, 경제, 인문학처럼 장르별로 구분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실제로 그 정보를 활용하는 데에는 효과적인 방식이 아니라고 한다. 자신의 우선순위와 목표에 따라 당장 활용할 수 있는 단위로 정리되어야 융통성 있게 정보를 꺼내 쓸 수 있게 된다.
[인사이트]
일상 속 구체적인 활용 단위로 태그를 분류할 수 있도록
이전에는 태그를 ‘이렇게 쓰면 좋다’라는 방향 없이 단순히 구절을 나누는 용도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 부분을 읽고 명확해졌다. 북카이브로 저장한 정보를 잘 써먹을 수 있게 하려면, 일상 속 활용 맥락을 기준으로 태그를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브랜딩 사례’, ‘팀 빌딩’, ‘문제 해결’ 등 현재 업무에 바로 적용 가능한 키워드로 태그를 사용하는 것이다. 물론 사용자들이 태그를 듀이십진분류법이 아닌 활용 단위로 잘 사용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인지하고 유도하는 장치가 필요할 것이다.
[힌트]
개인 지식 관리는 기억 - 연결 - 창조 세 단계를 거쳐 이루어진다. 서로 관련 없는 정보들 간 연결이 만들어질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창조된다.
책에서는 ‘연결’을 통한 지식 창조와 활용을 강조하는데, 이를 통해 북카이브의 태그가 분류 그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 다른 책에서 수집한 정보이거나, 관련이 없는 분야라고 하더라도 태그를 통해 그 인사이트 간 뜻밖의 연결성을 발견할 수도 있게 된다.
[인사이트]
태그 안에 2뎁스 구조 나누기
어떻게 태그를 연결의 수단으로 잘 쓸 수 있게 만들까? 더 섬세한 연결을 할 수 있도록 하려면 태그로 쉽게 필터링해 볼 수 있어야 하지만, 현재 북카이브는 태그들이 수평 나열되어 있어 개수가 늘어날 경우 필터링해 보기가 불편해진다. (실제로 꽤 많은 유저가 표했던 우려)
그래서 우리는 태그에 상위-하위의 2 뎁스 체계를 생각해냈다. 예를 들어 ‘팀 빌딩’, ‘문제해결’ 등의 하위 태그들은 ‘창업’이라는 상위 태그로 한 번 더 묶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정보들을 더 큰 범위로 묶어 볼 수도, 쪼개어 볼 수도 있어 인사이트 간 ‘연결’을 더 입체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힌트]
아이디어를 연관 짓는 과정을 촉진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핵심(essence)만 남을 때까지 추출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과거에 쓴 메모를 봤을 때 이해할 수 없거나 읽어 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면 그 메모는 쓸모 없는 것이다. 미래의 자신에게 찾기 쉽고 이해하기도 쉬운 지식을 선물한다고 생각해야 한다.
이 부분을 읽고 깨달았다. 북카이브의 정리 형태가 좋은 방식은 아니라는 것을. 당시에는 저장한 기록이 그대로 줄글 형태로 저장되어 쌓이는 형태였다. UT에서 홈 화면에 대한 첫 인상에 대해 ‘정리가 잘 안 되어 보인다’라는 의견이 몇 있었는데, 이 문제가 원인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사이트]
AI가 생성해준 제목으로 핵심 보여주기
여기서 힌트를 얻어 AI 제목 생성이라는 다음 피쳐를 고안했다. AI가 구절 맥락에 맞는 핵심 포인트를 제목으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태그로 필터링해 본다고 해도 각 구절들의 핵심을 바로 파악하기가 어려우면 꺼내 쓰는 과정에 허들이 될 수 있다. AI가 요약해준 한 줄 핵심을 제목으로 보여준다면 구절들을 일일이 읽어볼 필요 없이 제목만 보고 필요한 구절인지 아닌지를 파악할 수 있다.
[힌트]
개인적이고 구체적이며 검증된 정보는 실제로 사용할 때에 비로소 ‘지식’이 된다. (중략) 알고 있는 것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야 자신감을 얻는다. 그 전까지는 이론에 불과하다. 소비보다 창조하는 일에 시간과 노력을 더 많이 투자하라
책에서는 지식이 단순 저장을 넘어 가공의 단계를 거쳐 표현되거나 쓰일 때 내재화가 된다고 말한다.
이는 실제로 인터뷰를 통해 관찰한 유저 행동 및 말과도 일치했다.
[실제 유저의 말]
“기본 메모앱에 책 문장을 그대로 일단 적어둬요. 그리고 시간이 날 때 한 번 다듬어서 블로그에 올려요. 가공해서 블로그에 올리지 않으면 메모장에 마구잡이로 저장해둔 러프한 글들이 그대로 남게 되고, 그럼 다시 보지 않게 되더라구요.”
[관찰한 유저 행동]
독서 모임 참여, 글을 정리해 블로그에 업로드, 구절에 대한 내 생각 적기 등
이처럼 책에서 얻은 정보를 다듬거나 공유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글을 읽고 나서야 그 행동들이 곧 정보를 글 또는 말로 다시 표현함으로써 진짜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사이트]
정보 내재화를 위한 가공 단계 추가하기
현재 북카이브는 구절을 있는 그대로 저장만 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얻은 힌트를 통해 앞으로는 저장을 넘어 이를 바탕으로 가공해 지식을 내재화할 수 있도록 디벨롭 할 예정이다. 현재는 간단하게는 내 생각 적기부터 다른 사용자와의 소통까지 내재화를 돕는 다양한 가공의 형태를 고민하고 있다.
이 외에도 책을 통해 얻은 크고 작은 인사이트와 아이디어들이 정말 많았다. 하지만 당연하겠지만 책의 모든 것을 그대로 반영하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책에서는 가장 효과적인 분류법으러 ‘PARA 분류법’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이 방법은 복잡도가 높아 북카이브에는 적합하지 않다. 대신 그 구조에서 일부 아이디어를 차용해 북카이브에 더 잘 맞는 방식으로 발전시켜 나가려 한다.
책을 읽으며 흥미로웠던 점은, 책에서 이야기한 몇 가지 인사이트들이 사실은 유저 인터뷰에서 언급된 내용과 맞닿아 있었다는 점이다. 당시에는 그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지나쳤지만, 책을 읽고 나서야 그것이 북카이브의 핵심 가치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임을 깨달았다.
물론 책에서 얻은 이 인사이트들을 곧바로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유저들을 만나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실제로도 책을 통해 구상한 위 아이디어들 바탕으로 추가 유저 인터뷰를 진행하며 그 방향이 적합한지 아닌지를 확인해 나갔다. 결국 답은 책이 아닌 유저에게서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장 유저를 만날 수 없거나 데이터가 부족한 상황에서는 다른 방식의 접근도 필요하다. 문제의 근본을 더 깊이 이해하고 사용자에게 이를 전달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을 알아야 한다.
해결책의 방향을 찾지 못할 때, 때로는 유저나 레퍼런스 외에도 다양한 관점에서의 탐색을 통해 그 실마리의 단초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