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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희선 Apr 15. 2024

단상

봄날에 만난 폭우

오랜만에 교보문고에 책 사러 가려고 문을 나섰다.  비속식에 우산을 들고 나서긴 했지만 비는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가 아닌 제법 빗줄기를 만들어내는 여름날 장맛비를 닮아 있었다. 빗속에서도 봄꽃들은 여러 가지 색깔들로 빛나고 있었다. 빗물에 맑게 씻기 운 나뭇잎과 꽃잎들의 광채가 유난히 눈길을 끌었다.  빗 속에서도 사진을 찍고 싶은 충동으로 휴대폰을 꺼내려고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았지만 휴대폰은 없었다. 가방에도 없었다. 한참을 걸어왔기에 건늠길만 건너면 지하철역인데 이대로 다시 들어가면 나오기 싫어질 텐데 휴대폰에 지하철을 탈 수 있는 카드가 있기에 어쩔 수 없이 가던 길을 다시 돌아서 집으로 향했다.  

빗줄기는 더 강해지고 바람까지 불어 치기 시작했다. 우산으로 막아 낼 수 있는 빗줄기가 아니어서 운동화는 말할 것도 없고 코트자락 바짓가랑이 심지어 가방까지 다 젖어버렸다. 잠깐 쏟아낸 빗물은 제법 많은 양의 물줄기를 만들어 지하수도로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꼭 마치 여름날 장맛비의 빗물처럼 무서운 속도로 빨려 들어가는 빗물들을 보고 있노라니 작년 장맛비로 인해 피해를 입었던 일들과 사건들이 떠오른다. 가슴 아팠던 사건들이... 그래서인지 빨려 들어가는 물줄기가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어제가 봄날 같지 않던 30도를 웃도는 열기를 불러오더니 오늘 바로 그 열기에 보답하듯이 쏟아내는 강한 빗줄기에 사뭇 놀랍기만 하다. 이것의 자연의 섭리인가? 인간이 쌓아온 온난화 현상들인가? 벚꽃이 지기 무섭게 여름이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 너무 당혹스럽다.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봄날과 가을은 짧아지고 추운 겨울과 더운 여름만 길어질 것 같은 이 찝찝한 기분, 현관의 거울에는 빗물의 세례를 받은 물창봉이 된 여자가 경악한 모습으로 내다보고 있다.

빗물이 뚝뚝 떨어지는 코트를 벗어버린다.

오늘 외출은 이것으로 막을 내리야 하는 것이 아쉽다.  다시 나가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게 된 것이 마음에 걸리고 밖에는 아직도 너무 큰 빗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나의 야심 찬 외출을 제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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