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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뚜 Mar 08. 2022

너는 나의 반려자

고양지집사로 사는 이야기

아이들 밥 챙겨먹이고 학교보내려면 아침7시언저리엔 일어나야한다.문앞에서 덜거덕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다.블루녀석이다.그새 배가 고파서 먹이통을 발로 밀고 물그릇을 달그락 거리는 모양이었다.녀석이 우리집에 입주했을 때가 생후 8개월정도였고 몸무게가 2.9키로였다.평균 고양이수명이 10~15년 남짓인 것에 비추어 나이를 사람나이로 환산하면 11살 아동청소년기에 해당하는 것이었다.야리야리하고 작은 것이 어찌나 날쌔던지.지금은 들어가지 못하는 서랍장밑을 기어들어가는건 기본이었다.당시 10살이던 B가 블루에게 언니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걸 보고 너보다 언니라고 "언니~~"라고 하라고 슬쩍 놀렸었다."아니야~~"라며 B는 입을 삐죽거리며 눈을 흘겼었다.그 후 B의 학교 미술시간의 테마는 블루였다.'블루야~언니가 예쁘게 키워줄께~사랑해'문구를 손수 그린 파란색 액자에 새겨넣어 B가 가져온 날, B와 블루의 서열정리는 그걸로 끝이 났다.

지금 블루가 3년정도 되었으니 28살 처녀다.사람의 것보다 빨리 도는 시계인 줄 알았지만 벌써 이리 되었다니 새삼 놀랍다.S의 나이를 이미 넘어버렸고 어느 날엔 내 나이도 추월해버리겠지.


블루는 내가 암흑속에서 희망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던 그 시기에 우리집에 살러왔다.정확히말하면 데려왔다.아이들이 졸라서가 우선이지만 내 한몸 건사하기도 어려운 생활에 하나라도 웃음을 늘리고 싶었다.또한 한참 많이 쓰고 있던 반려동물의 '반려'라는 말이 나에게는 좀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던 것도 같다.옆에 있는 사람반려자를 잃을 위기에 처하니 동물반려자라도 데려오고 싶은 무의식의 발로는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초보집사라 덜컥 유기묘를 데려왔다가 한 생명을 책임지지 못하게 될까 두려워 이리저리 알아보던 끝에 간 곳이 분양샵이었다.부끄럽지만 그곳에서 만난 게 블루다.분양샵에선 중성화술을 꼭 해야하냐고 묻는 나에게 그렇지않다며, 고양이에 따라서 발정났는지도 모르게 지나가는 경우도 꽤 있다고 답했다.안그래도 부인과질병이 있어 적출수술을 권유받은 적 있던 나는 아무리 동물이라도 억지로 수술하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던 중이었다.데려와서 1년여넘게는 별 탈이 없었다.우리 블루는 하는 지도 모르게 지나가는 그런 타입인 거 같다며 우리끼리 좋아했다.동물병원에서 수술하는 게 고양이수명을 늘려준다는 이야기를 했단 말을 들었을 때도 상업적인 의도는 아닌가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여름.드디어 그것이 오고 말았다.블루가 평상시 하지 않던 행동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상체는 엎드리고 궁뎅이는 하늘향해 쳐들었다.평소 냥 소리한번 내지않던 애가 몸 어디 한군데라도 만질라치면 부르르 흥분해서는 애살스럽게 냐옹거렸다.애타게 무언가를 바라는 것처럼.밤에는 어찌나 아기울음소리를 내는지 더워서 문을 열어놓고 잘 아파트내 다른 집에서 시끄럽다고 항의가 들어오지는 않을까 조마조마했다.그래도 아픈게 아닌 이상 내 사전에 블루의 몸에 칼을 대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1달 반쯤 지나니 그 행동은 잦아들었다.그러나 3주쯤 지나니 또 그러는 게 아닌가.인터넷을 찾아보니 3~6주 간격으로 한다고 써있었다.이런!그렇게 몇번의 주기동안 특유의 울음소리때문에 밤잠을 설치던 어느 날, 평소 수의사가 꿈인 B가 이야기했다.책을 찾아봤는데 임신도 하지 않고 중성화수술도 하지 않으면 고양이 자궁내 염증이 생길 확률이 많아져 오래 못 산다고 했다.생리기간동안은 고양이도 괴롭다고.그말에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수술을 결정했다.


마취되어 수술을 받는 블루의 사진을 보는 건 괴로웠다.털깎고 찢고 떼어내고 다시 봉합.깨어난 블루는 맥아리가 없었다.마음이 짠했다.블루에게 병원가기 전에 수술할 거라고 말해주긴 했으나 인간의 언어를 알아들었을 리는 만무했다.자궁이 떼어내진 걸 알기는 할까.이후 블루의 발정난 행동은 우리집에서 자취를 감추었다.밤에 요상한 울음을 내는 것도 멈췄다.나는 이웃에게 당당해졌으나 블루에게는 미안해졌다.집사로서 능력이 부족해 새끼를 양육할 엄두도 못냈고 아파트에 사는 탓에 남의 이목도 신경써야했으니까.블루와 이별하는 고통을 빨리 겪고 싶지않아서 수술했던 거였으니까.


블루는 소리없이 살이 쪄갔다.호르몬탓인지 식탐이 늘었다.나의 미안함은 맛있는 간식을 사서 쟁여놓는 것으로 대체되었다.나역시 정신없는 일상을 살아가던 어느 날, 가늘었던 블루의 몸이 6.2키로에 달하게 되어서야 정신이 버뜩 났다.잇몸이 부어 데려간 동물병원에서 다이어트 좀 해야겠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이대로가다간 영락없이 뚱냥이가 되어 각종 질병을 달고 살겠구나.


이때부터 다이어트에 강제돌입한 블루는 아침이면 문앞에 얼른 와서 문열고 나온 나를 향해 뚫어져라 애절한 눈빛을 발사한다.나와 눈빛교감이 되었다 싶으면 나를 더 압박하기위해 냐옹거린다.

"밥 줘라 냐옹.배고프다 냥"

그릇에 있던 사료를 비운 지 1시간쯤 되면 또 배고파진 블루는 슬쩍슬쩍 나에게 눈맞춤을 시도한다.

"안돼.블루.살빼야 해"

앞으로도 오래 살려면 다이어트 좀 하자.우리는 서로의 반려자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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