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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뚜 Mar 24. 2022

현재를 산다는 것

B가 어제부터 목이 아프다하더니 아침부터 열이 났다.틀림없는 그 증상이었다.나의 격리해제일 바로 다음날 증상이 나타나다니.고열로 온몸이 아프다는 B를 태우고 도착한 병원의자는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못서있겠다는 B를 업고 기다렸다.제법 무게가 나가서 힘겨웠는데 생각보다 빨리 검사를 받았고 B는 예상대로 확진되었다.코로나발병 후 2~3일이 가장 많은 바이러스가 분출된다하여 조심에 조심을 했었다.그간 거실에서 B 혼자 이불펴고 자는 생활을 했었는데 마지막에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다니.격리일 끝무렵에 B가 확진되는 건 돌려봤던 시나리오 중 가장 안좋은 것이었다.또 다른 격리의 시작.일상의 무너짐을 의미하는 것이기에.B는 더이상 거실에서 혼자 자지 않아도되고 밤에 움직이는 블루의 소란함을 견디지않아도 되어 그 부분에서만큼은 안도하는 듯 보였다.


요양원에 가 있는 영희씨는 덕분에 그곳에 머무는 기간이 더 길어졌다.코로나유행초기에 14일이던 격리기간이 언젠가부터 7일로 줄어들었었다.8일째도 전염력이 약하게나마 있을 수 있다는데 사회전반적인 기능을 생각해 그렇게 정한 모양이었다.하지만 우리집에선 1%의 전염가능성이라도 없어야하므로 영희씨가 집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주간보호센터에서는 요양원입소기간이 더 길어지는 것에 대해 좋아하지않는 기색이었다.돌봄비용때문인 듯했다.그래도 어쩔 수 없다.영희씨에겐 작은 불씨라도 큰 위협이 될 수 있으므로.빵빵하게 보일러를 돌려 늘 후끈했던 영희씨 방은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갑게 식은 지 몇일째다.주인없는 방은 더 넓어보였다.간간히 블루가 가서 매트를 긁었고 내가 창문을 열 때 외엔 들어갈 필요가 없어진 방이 되었다.


S에 이은 나의 확진으로 지난 일주일은 모든 것이 정지되었다.늘 하던 일의 패턴은 무너졌다.오로지 남은 가족이 옮지않게하기위해 신경을 바짝 쓰며 소독제를 집안곳곳에 뿌리고 다녔다.S와 B,영희씨에 관한 연락을 여기저기 취하고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죽음'과 자주 연관됐던 질병이기에 증상이 악화되지않도록 약먹고 내 몸이 어떤 지 예민하게 살피기에도 바빴다.


이럴때 남편이 있었다면 어땠을까?든든했을까?란 생각도 해보았다.비대면진료로 약을 처방받아도 약국에 갈 사람이 없어 난감했다.집안에 나말고 돌봐 줄 어른이 없다는 사실은 나를 우울하게 만들기도 했다.숨이 차고 손이 떨릴 땐 코로나로 격리치료하다 돌연 죽음을 맞이했다는 기사가 떠올랐다.119를 불러 병원에 들어가는 것조차도 힘들다는데 나도 그렇게 되는 건 아닌지 순간 부정적인 생각이 감돌았다.내가 그렇게 될 리 없다고 의식을 더 선명히 하려 애쓴 시간이었다.


투병하는 아내를 간호하는 남편의 비중이 굉장히 낮다는 조사결과를 봤다.반면 아내는 남편이 아프면 열에 아홉은 간호를 한다고 했다.결과가 안타까웠다.주위에 유독 사이좋은 부부들이 많아 잘 믿기지는 않지만 조사결과라니 안믿기도 어렵다.금슬좋은 작은언니네 부부도 언니가 확진됐을 때 형부에게 밥심부름을 시키지않고 직접 차리는 게 속편하다는 언니말을 곱씹어 생각해보면 조사결과가 맞겠단 생각이 든다.


영희씨는 요양원에서 잘지내고 있는 듯했다.그쪽에서 보내준 사진 속 옷차림과 머리스타일에서 그새 낯선 부분이 보였다.내가 모르는 옷을 입고 평소 하지 않던 헤어스타일을 한다는 것이 내 안에 허전함을 불러일으켰다.떨어져 지낸 지 이제 고작 1주일이란 게 실감이 안났다.마치 한달은 족히 된 느낌이었다.앞으로 2주는 더 있어야하는데 그때는 영희씨의 모습에 어떤 낯섦이 추가될까.목욕할 때 온몸에 3~4시간 물을 퍼붓고 있어야 직성이 풀리는 영희씨가 그걸 어떻게 해결하고 있는 지 걱정이었으나 다행히 별탈없이 지내고 있다했다.치매말기를 지나고 있는 영희씨라도 그곳이 집이 아님을 온몸으로 느끼기에 다르게 행동하는 것일거라는 게 원장의 추측이었다.이제 집에 가기까지 몇일 남았다고 하루가 지날 때마다 이야기해주고 있다고 했다.그곳이 계속 살 것이 아니라는 걸 알기에,조만간 집으로 돌아갈 것이기에 사진 속 영희씨가 웃고 있는 건 아닌지.실제로 요양원에 입주하게 된다해도 저리 밝게 웃을 수 있을까....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간 증상인지 약기운인지 몽롱한 정신으로 일어나 아침준비를 했었다.전염시키지않겠단 일념으로 집중해 B의 그릇에 옮겨담고 각자 나눠주고 나도 먹었다.다시 수거해와서 1회용그릇과 수저버리고 닦을 것 닦았다.다른 생각이 파고들 틈이 없는 일상이었다.내 건강까지 좋지 않으니 다른 걱정은 할 여력이 없었다.나와 S의 회복에만 집중할 수 밖에.문득 이렇게 하루하루에 집중해 살다보면 속상한 마음이 옅어질 날이,아이들미래에 대한 걱정과 부담도 줄어들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늘 미래에 대한 걱정을 달고 사는 내가 하루를 온전히 살아내는데에만 집중하며 산 날이 코로나확진되어 살기위해 애썼던 날들이란 것이 묘했다.현재를 살라는 말을 참 많이도 듣고 살았어도 그게 그리도 어려웠었는데말이다.매슬로우의 욕구5단계의 가장 하위에 있는 생존을 위협당하면 다른 욕구를 가지기 어렵다는 것이 온 몸으로 이해가 되었다.그럼 앞으로도 내가 엄한 생각에 빠져들지 않도록 하기위해 생존에 문제를 만들어야 하는 걸까?흠..그렇게까지 하지는 말자.부정적인 생각을 떨치기위해 극단으로 치달을 필요는 없으니까.대신 적당히 내 몸이 힘들 운동과 적당히 빠져들 세계를 꾸준히 만들어보자고 내 자신에게 권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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