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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뚜 Mar 31. 2022

괜찮아

나에게 괜찮다고 하는 사람이 없다면 나라도 말해주고싶어

간근무를 하던 어느 날이었다.난데없이 전화가 울렸다.한참 전 퇴근한 후배직원이었다.

"저 ㅇㅇㅇ인데요..제가 서랍을 잠갔는지 모르겠는데 사무실에 가셔서 한번 확인 좀 해주실 수 있어요...?"

말투에 미안함이 묻어있었다.퇴근한다고 차몰고 30분을 갔다가 다시 돌아와 서랍을 확인하고 갔었는데 또 확인해달라고?조금은 어이가 없는 상황이긴 했으나 내안에도 이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비스무레한 게 자리잡고 있기에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그놈의 서랍때문에 몸은 퇴근했으나 정신은 퇴근을 못하고 있는 그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그러게 회사는 작작 좀 할 것이지.직원들에게 문잠가라,서랍잠가라,컴퓨터비번걸어라,작은 메모하나도 남기지마라,걸리면 경위서써라 시도때도 없이 들들 볶아댄 결과다.


내가 가끔 챙겨보는 드라마 중 '기상청사람들'이란 드라마가 있다.내내 잘하다가 어느날 실수한 직원을 두고 동료들끼리 이야기를 나눈다.

동료 A: "사람인데 실수할 수도 있지"

동료 B:"공무원이야.실수하면 안되는 사람이고"(혀를 차며 사무실을 나간다)

특성은 다르지만 엇비슷한 조직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저 대사를 들으며 괜한 울분이 새어나오는,어쩔 수 없다는 이해가 되기도 하는 나를 발견했다.지금은 휴직으로 한발짝 떨어져 있어 저 상황을 자주 느끼지는 않지만 그 전엔 출근하는 매일 매시간 부담을 안고 살아야했었다.학습의 효과였다.건너편팀 아무개직원이 한 실수가 매스컴을 타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비난을 한몸에 받는 것도 모자라 조직의 처벌을 받는 걸 여러번 목격한 탓이다.계속 잘하다 한번 삐끗하면 조직을 욕먹이는 당사자로 신문기사를 장식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은 늘 내 삶의 언저리에 머물렀다.회사에서 느꼈던 긴장은 살아오면서 장착하게 된 만성적인 내 불안과 만나 그 덩치가 더 커졌다.


태생적으로 나는 불안을 장착할 수 밖에 없는 환경이었다.나이많고 아픈 아버지와 후처인 엄마사이에서 태어난 자식이었고 자연에서 뛰어논 것을 제외하면 편치않은 유년시절을 지냈다.그리고 대학생이 되자마자 가난을 온몸에 두르고 갑자기 대도시로 뛰어들게 되었다.어른의 보호의 손길이 천천히 사그라드는 과정없이 갑자기 본격적인 성인의 삶으로 내던져져 그저 살아내느라 어느 시기는 옥탑방을,어느 시기는 반지하방에서 잠을 청했었다.그 기간중에 내 방의 창문을 열려는 누군가의 타켓이 된 적이 있었다.그때 괜스런 불안으로 사람의 발길이 닿을 거 같지않은 한쪽구석 창문을 잠근 것이 나를 구한 결정적인 행동이었다.


이후로 창문을 확인하고 지갑을 확인하는 행동은 그 횟수를 더했다.전엔 한번씩 확인하고 말았었다면 이제는 2번씩 확인해야 직성이 풀렸다.나가며 가스벨브를 잠갔는지 확인했으면서 다시 돌아와 눈으로 또 이상없음을 확인해야 불안이 내려갔다.그저 꼼꼼하다는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운 행동과 감정이었다.거듭 확인하니 실수는 조금 줄긴 했으나 완벽하진 않았다.그럴 땐 횟수를 더 늘려서 확인했다.그렇게 했는데도 잘못 처리된 일이 나타날때면 나를 몰아부쳤고 절망스러운 기분을 느꼈다.자꾸 확인한다는 건 단순히 그 행동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확인하면 불안은 내려가지만 에너지를 거기에 쏟으니 남들에 비해 시간은 2~3배로 걸리고 다른 것에 눈돌릴 여유가 더 없어져 심적으로 지쳐갔다.더 예민해지고(20~30대엔 예민하다는 말을 받아들일 수 없어 섬세하다는 말로 포장하곤 했는데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된 듯하다)더 불안해졌다.

인정욕구가 원체 많았기에 나의 실수를 받아들일 마음의 여유가 더 없었다.작은 잘못에도 스스로를 구석으로 몰고 실수를 곱씹었다.과하게 눈치보고 그래서 주눅들고 코빠져있는.


지금도 여전히 강박이 있다.가스벨브를 잘 잠갔나 불안이 솟구칠 땐 엘리베이터를 타려다 다시 들어가 확인한다.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고 나도 자러갈 때면 베란다창문은 잘 잠겼는지,대문은 이중잠금까지 되었는지 두번세번이고 확인한다.하지만 그 정도는 과거에 비해 조금은 내려갔다.한자리에서 3~4번 이뤄졌던 지갑확인작업은 이제 1~2번으로 줄었다.

업무를 하면서 확인에 확인,또 확인을 했었는데 이제는 다시 확인하는 정도까지만 하고 있다.의식적으로,때론 다른 것에 정신팔려서.


나아진 시기를 보면 40대를 지나면서였지 싶다.인생의 대부분에서 어느정도 편해지는 게 40대임이 내 인생에서만큼은 틀림없지 싶다.물론 이혼과 엄마의 치매로 내가 짊어지고 있는 부양의 의무는 그전보다 더하지만 그걸 버티는 힘만큼은 과거보다 좋아졌다.인정욕구도 내안에서 여전히 춤을 추지만 과하지않도록 가끔 들여다보고 있다.


얼마전까지도 나의 강박이 창피했고 떨쳐버리고 싶었다.그 마음이 여전히 내 안에 있다.인생의 반에 해당하는 시간에 갖고 살았던 이것이 금방 없어질 리는 만무하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안전에 대한 불안은 나를 위기에서 구했다.습관이 형성된 그 배경에 대해 되짚어보다보니 스스로를 좀더 이해해볼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강박증이 없었다면 냉정히 지나쳤을 일들에 대해 좀더 관대함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나에게 이야기해주고 싶다.


이거라도 해야했던 거야.때론 너무 무서워서 내가 안전하다는 걸 스스로에게 자꾸 각인시켜주고 일깨워주기위한 나만의 비밀스런 노력이었던 거야.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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