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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뚜 Apr 11. 2022

그녀의 컴백

치매엄마와 사는 이야기

영희씨가 돌아왔다.얼굴가득  웃음을 띠고.거의 25일만이다.주간보호센터직원의 부축을 받으며 들어온 영희씨는 내가 누군지 몰라봤다.얼굴은 익숙하게 느끼는 듯 한데 관계가 어떤지,이름이 뭔지 기억하지 못했다.신고 온 신발은 낯설었다.입소할 때 패딩운동화를 신고 갔는데 할머니단화로 바뀌어 있었다.요양원에서 새로 사서 보낸 것인가?신발창을 들어보니 낯선 이름이 양쪽 바닥에 쓰여 있다.대충 느낌이 왔다.그러니까 다른 할머니의 신발을 잘못 신고온 것이다.요양원에 전화하니 잘못 보냈다며 뇌출혈로 요양병원에 가신 분의 것이니 그냥 버리라했다.착잡했다.그 분의 기대되지않는 컴백이 영희씨얘기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내 엄마의 신발도 언젠가 누군가의 대체품이 되어 저런 대접을 받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낯선 이름의 신발 주인이 너무 아픈 고통을 느끼지는 않기를 그 순간만큼은 기원했다.



온 가족의 확진으로 위험해진 영희씨를 탈출시키기위해 선택한 요양원단기보호.가족이 확진된 터라 받아주는 곳이 없어 발을 동동 구르다 영희씨의 거처가 겨우 정해졌었다.

몇년 전 3일 이용했던 단기보호시설에서 돌아온 후 영희씨는 몇일을 골이 난 사람처럼 심통이 나있었고 멍했었다.말을 걸어주는 사람없이 방안 침대에 멀거니 앉아있다 밥먹고 또 누워있는 생활을 반복해서일꺼라고 짐작했었다.집떠난 영희씨의 후유증이 오래갔었기에 이후 왠만하면 단기보호는 이용하지않으려고 노력해왔다.그러다보니 여행이나 나들이는 쉽지 않았고 코로나시국인 게 차라리 다행이었다고 해야할까.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좋은 곳으로 자주 여행가는 지인들을 보면서,아이들의 여행가자는 끈질긴 요청을 받으면서 활동에 제약을 받는 상황에 강한 회의감을  느꼈을 것이기 때문이다.아이들에겐 코로나때문에 가기 어렵다고 대부분 이야기를 해왔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그건 영희씨를 여기저기 맡겨야하는 번거로움,맡긴 이후의 후유증을 감당하고 싶지않았던 내 마음때문이었다는 것을.




영희씨가 없는 동안 나는 갖가지 감정을 느꼈다.온기빠진 방을 들여다보며 헛헛함을 느꼈고 이른 아침마다 현관문비번을 마음대로(물론 사전허락을 받은 것임)열고 들어오던 요양보호사,오후엔 주간보호센터직원이 없어 마음이 푸근했다.누군가 내 보금자리의 비번을 알고 있으면서 사춘기 딸들이 있는 이 집을 수시로 오간다는 사실은 짜증이 나기도,긴장이 되기도 했었다.기분에 따라 남과 이야기섞고 싶지 않은 날도 어쩔 수 없이 얘기를 주고 받아야하는 번거로움을 그 기간만큼은 안 겪어도 된다는 사실에 안도했다.여행을 가면서 이리저리 영희씨를 부탁하지않아도 되 홀가분한 마음으로 여행을 계획하다 일순간 영희씨가 여길 정작 떠나는 그 날이 온다면 어떨지 생각했다.


이 시기동안은 홀가분함이 제일 컸다.영희씨의 끼니를 차리지않아도 되서 좋았다.내가 부담하는 고생이 덜하니 언니들에 대한 서운함은 많이 내려갔다.자주 연락을 주고받다 엄마부양계기로 연락이 전보다 뜸해졌었던 작은언니와는 전화를 평소보다 많이 했다.나의 말투에서 서운함,속상함이 전에 비해 눈에 띄게 줄어든 걸 언니도 느꼈을 것이다.

이런 각양각색의 감정들은 어디까지나 영희씨가 수일 뒤면 돌아온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는 것이어서 미래의 그 날과는 사뭇 다를 것이다.




유난히 깔깔깔 거리며 엊그제 집으로 돌아온 영희씨는 오늘아침까지도 별스럽지않은 일에 숨넘어가게 웃어 재꼈다.요양원에서 웃음약이라도 처방받고 온 건가 싶다.집에 온 것이 기뻐서 그러는 것인가.그전엔 자리에 누워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유독 앉아있는 시간이 길다.순간순간을 오래 누리려는 듯이.


오랫만에 영희씨식사를 준비하면서 국,찌개가 아닌 식빵피자를 만들어 토마토와 같이 드렸다.중간에 허기질 까봐 영희씨가 좋아하는 감자도 껍질을 벗겨서 쪘다.자기를 위해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영희씨를 기쁘게 하는 것도 같았다.

"엄마, 집에 오니까 좋아?"

".......이이"

"요양원에서 잘해줬어?반찬 맛난거 많이 해줬어?"먹는 것에 진심인 영희씨다.

".......이이..."

"뭐 해줬는데?"

".......이이....국수도 해주고.....맛있게 해줬어"

"목욕은?목욕은 어떻게 했대?"

"..........(고개를 흔들며)어버버버"

"엄마 목욕으은??뜨거운 물 오래 뿌리고 싶어서 어떻게 했어어??"

"...............거기서 전~~수 목욕시켜줘....."

기억하는 게 용하다.

안 그래도 깔끔하게 자른 머리하며 그 새 살이 좀 오른 듯한 볼이 눈에 띄었던 차였다.둥그스름한 영희씨의 뒷태가 귀엽게 보였다.가지고 갔던 내복과 옷들도 새로 빨아서 보낸 흔적이 역력했다.

고마웠다.자식 아닌 누군가가 내 엄마를 진심으로 돌봐줬다는 사실에.영희씨가 잔치국수를 얼마나 맛있게 잡쉈을까.국수를 해주면 "맛있게 자알 먹었다"고 숟가락 내려놓으며 힘주어 말했던 영희씨였는데.

내친 김에....오늘 저녁은 잔치국수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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