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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뚜 Mar 07. 2022

선배

헛헛한 마음에 오랫만에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선배 뭐하세요?"


당연히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을 거라는 걸 알지만 그냥 하는 첫 마디다.


"어~ㅇㅇ아~~~근무하지~"


느릿느릿한 말투를 들으니 여기저기 일처리에 바빴던 내 마음도 한템포 느려지는 것 같았다.대학다닐때 친하게 지냈었던 선배는 이혼한 지 벌써 수년째인 돌싱이다.이혼경력에서도 이미 선배인 셈이다.그 시절 애인도 아닌 나에게 감성터지는 안부편지를 보내오기도 했었는데 지금 생각해도 독특한 구석이 있는 냥반이다.고시준비한다고 굳이 무너져가는 시골집방을 얻어서 거기서 먹고 자질 않나,마음이 괴로울 때 지리산등반을 가질 않나.선배의 폭발하는 감성에 비해 시험운은 없었던 건지 공부를 꽤 했다.원했던 자리보다 낮은 자리로 결국 합격한 선배는 연수원에서 경상도아가씨와 눈이 맞아 그야말로 장거리연애를 꽤 했었다.가족의 반대로 결국 혼인으로 이어지진 않았지만 그 일은 선배의 가슴에 멍으로 남았다.


시험준비를 하면서 보장된 미래없이 혼자 밥먹고 혼자 공부하는 생활을 계속 하다보면 멘탈이 무너지고 지치는 시기가 한번씩 찾아왔었다.우연히도 당시 내가 있던 노량진에서 선배도 공부하고 있어 한번씩 찾아가 밥을 먹었다.마음을 울리는 위로라거나 응원같은 건 기억에 없다.대단한 이야기를 한 것도 아니었다.밥시간 때 식당앞에 서있는 수험생들틈에 섞여 긴 줄을 서다가 안에 들어서서 식판에 밥을 푸고 반찬을 담고 밥을 먹었다.가난한 수험생신세에 노량진의 인기있는 밥집 식권을 나에게 나눠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불안한 미래를 견디는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이 있다는 것에 위안받았던 것 같다.내가 먼저 합격을 하고 뒤이어 선배도 눈을 낮춰 합격소식을 전했지만 나의 휴직과 적체된 승진으로 지금은 다른 조직에서 나보다 훨씬 잘나가고 계신 냥반이다.


30여년의 세월동안 연락이 끊어지다시피했던 시간도 있었다.그러나 1~2년에 한번 통화하던 사이가 내 이혼과 더불어 연락횟수가 더 늘어난 요즘이었다.


선배의 배우자도 안면있는 사이라 여전히 잘 살고 있는 줄 알고 선배에게 안부를 물었다가 예상치 못하게 이혼했다는 말을 들었었다.그 즈음 이혼을 진행중이었어서 누구한테 이야기도 못하고 속앓이를 하던 나는 선배의 그 말에 큰 부담없이 털어놓을 수 있었다.


선배는 어린 막내하고만 면접교섭을 하고 있는데 얼마전 아이와 갈 스케이트장얘기를 하면서 아이엄마에게 같이가자고 제안했더니 거절하더라는 얘기,미안했다는 이야기를 이혼 후 몇년이 지나서야 서로 주고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부쩍 외로워하는 것 같아 새로운 사람을 좀 소개받으라고 권했더니 소개도 안들어오고 만날데가 없다했다.남들은 어디서 그리 잘도 만나는지 모르겠다며 우스개소리를 했다.그러면서도 한번은 나에게도 인생의 화양연화같은 기회가 올 거라는 믿음이 있다고 했다.큰언니,작은 언니에게 섭섭함을 넘어선 내 감정에 대해선 언니들을 너무 미워하지말라고도 했다.사람이 독을 품으면 자기자신을 제일 먼저 다치게 하는 거라고.엄마가 촌남자와 동거에 들어갔을 때 명절연휴 딱히 갈데 없던 나를 선배가 자기 시골집에 초대했던 때 그 누나들이 선배에게 어떻게 대하는 지를 인상깊게 보았던 나였다.5남매 중 막내였던 선배는 형,누나들에게 있어 그저 챙겨주기만 하고 싶은 막둥이였었다.아직도 그러냐는 물음에 선배는 그렇지않다고...형제들도 자기 삶을 사느라 허덕여서 홀아비가 된 자기를 챙길 여력이 없다고도 전했다.


나중에 누구 못만나면 혼자사는 사람들모아 공동체하나 만들어 쉐어하우스처럼 살자고 선배에게 제안했다.나도 선배도 농담반 진담반.집을 짓고 여럿이 살자.아플때 서로의 보호자가 되어주는 거다.마당이 있으면 좋겠더라.개도 좀 키우고.그러다 눈맞는 커플이 있으면 나가서 살라고 하면 된다.뭐 이런 잡스런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을 기약하며 끊었다.


가는 시간이 야속하고 다가올 미래가 두려울 때 책에서 답을 찾기도 하지만 사람만한 것도 없다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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