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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뚜 Mar 10. 2022

구열초가 뭐라고

치매엄마와 사는 이야기

B를 낳고 1년여의 모유수유를 끊은 지 얼마되지 않은 때였다.수유중에는 안했던 터라 새롭게 시작하는 월경에 대해 기대가 있었다.출산전엔 심했다가 아이낳고는 거짓말처럼 하나도 안 아프게 되었다는 지인도 있었기에 나도 그럴 수 있을까 기대했다.


시작날 드르륵드르륵 긁어대듯 배가 아파왔다.통증은 3~4일후까지 계속 되었다.그간 안해서 그런가?생각하고 넘겼는데 두번째 월경도 비슷했다.안되겠어서 병원을 갔다.자궁선근증이라고 했다.경계선이 확실한 근종과는 다른 종류로 자궁내막이 자궁근육을 뚫고 들어가 그 안에서 매달 월경을 하는 거라 통증이 심할 거랬다.근육안에 뭉쳐있거나 여기저기 흩뿌려져있어 수술하기는 까다롭다면서.젊은 여의사가 별 스럽지않게 말했다.

"아이도 다 낳았고 하니 그냥 적출수술하시죠"

서른 아홉되던 나에게 그 말은 충격이었다.이미 큰언니도 영희씨도 수술한 과거가 있기에 언젠간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그러나 그 시기가 그리 빠르게 올 줄 몰랐고 나와 같은 염색체XX를 가진 사람에게조차도 정말 별일이 아닌 것인지 의아했다.힘풀린 다리로 병원을 나오면서 눈물이 연신 흘렀다.


육아로 잠을 제대로 못자고,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빨아들이고, 살은 살대로 찐 내가 만든 병이었다.그렇다면 그렇게 나를 방치하게 된 원인은?애들아빠가 원망스러웠다.몸과 마음이 편해야 혈액순환도 잘된다.두아이 육아,조합일로 나는 그럴 수가 없었던데다가 별안간 짜증을, 그것도 자주 내던 남자는 말다툼하는 날이면 회피하듯 집을 나가버리곤 했었다.그러고는 집안행사가 있든 선약이 있든 연락을 받지 않고 속을 끓게 하다가 곤드레가 되어 새벽에나 들어왔다.남자도 가장으로서 고된 점이 있었으리라만 지금은 이해하고 싶지않다.더 세월이 가면 그때는 가능할지도.

아버지와 싸울 때마다 집짓는 일꾼들 밥해 나르느라 허리가 다쳐 반병신이 되었다고 고래고래 달겨들던 영희씨가 생각났다.그 모습이 추함으로 각인되었기에 나는 그러지않겠다고 다짐했다.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다고 원망하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되는 말이 아니니까.그저 분에 찬 말이기만 하니까.


구역질,심한 몸살,배를 쥐어짜는 고통으로 몇일을 꼼짝없이 누워만 있던 나는 수술없이 내 병을 고쳐보겠노라 인터넷을 훑고 돌아다녔다.자궁에 혹이 있는 사람이 피할 음식이 있었다.먼 지방이라도 잘 고친다는 병원이 있으면 찾아갔다.진료실 내 유리가벽 뒤 앉은 대기환자들에게 내 몸의 정보가 그대로 발설되는 어이없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모 병원에서 처방해주는 영양제와 진통제주사를 받아왔다.배에 주사를 놓기 시작한 지 몇개월쯤 되던 날에서야 알았다.진통제는 위에 염증을 일으킬 소지가 많다는 걸.아무 문제없는 위를 가졌던 나는 그날 이후 위염환자가 되었다.


그 즈음 영희씨가 시골에서 올라왔다.올라올 때마다 콩이니 사탕이니 가져왔었는데 이번엔 생수병에 담긴 시커먼 액체였다.집에 도착한 영희씨는 한잔씩 마시라며 권했다.구열초랑 이것저것 넣어 다려달라고 읍내 기름집에 맞췄다고 했다.월경통이 있다는 얘기를 영희씨한테 그전에 했던 차였다.구열초?인터넷을 아무리 검색해봐도 나오지 않았다.혹시 부인과에 효능있다는 구절초를 말하는 것인가?구절초냐고 물으니 다시한번 구열초!라고 강조했다.냉한데 좋다고.큰 언니도 당신이 해준 이걸 먹고 냉증이 없어졌다면서 확신에 차서 말했다.구열초가 당최 뭔지.글자도 모르는 영희씨가 딱딱 짚어서 기름집에 다려달라고 했을 거 같지는 않고 대충 권하는 거 넣었을 거 같은데 잘못 먹었다가 여기서 더 심해지기라도 하면 어째.해올라면 한약처럼 1회용팩에 깔끔하게 하나씩 포장해달라고 하지.촌스럽게 생수병에 저게 뭐야.싫다고 완강히 거부하는 나에게 영희씨는 몇일을 두고 화내고 얼르고...안먹히니 우는 거로 시위했다.안먹겠다는데 그러는 게 미웠다.그러다....생각해서 가져온 건데, 또 영희씨의 역성을 감당하는 게 고달파서 딱 한잔만 그 앞에서 마시자싶어 잘 보라며 컵을 비웠다.그리고 이후 천천히 먹겠다고 하고는 보관하다가 어느 날....하수구에 몰래 부어버렸다...


이렇게 내가 엄마를 무시하게 된 건 어린 시절부터인 것 같다.외할머니는 1년에 한두번 우리집에 머물다 가셨는데 나이든 아버지와 나이차이가 별로 나지않아 사위인 아버지에게 늘 존대말을 썼다.그날도 부엌일하고 있는 엄마를 빼고 방안에서 할머니와 아버지가 대화를 하고 있었다.아버지는 장모에게 아내의 못마땅한 점을 이리저리 한껏 늘어놓았다.반찬을 제대로 안해준다.설거지그릇을 땅땅 일부러 내려친다 등등.외할머니는 "쟤가 좀 모자라요.그래도...어떡하겄어요."명절에 온 배다른 오빠들이 아버지와 엄마험담을 하는게 듣기 싫었던 차였다.외할머니도 엄마를 저렇게 생각하는 구나.나는 곧이곧대로 믿어버렸다.우리엄마는 그런 사람인거야.그때이후 영희씨가 답답했다.사춘기가 되어선 더 쏘아부쳤다.영희씨는 울음으로 대처했다.성인이 되어 서로 떨어져있으면서 좀 나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엄마는 뭘 잘 모른다는 인식,남에게 무시당하지않도록 내가 옆에 있을 땐 챙겨야한다는 부담감,나는 그런 모자란 엄마의 자식이라는 열등감은 이미 내안에 뿌리깊게 자리잡혀있었다.

외할머니의 그 말이 사위의 비위를 맞추려 했던 것이고 딸을 부탁하는 말이었다는 걸 진심으로 깨닫게 된 건 아이를 키우게 된 후로도 한참이 지난 시점이었다.


다시 한번 영희씨가 구열초(실은 구절초)를 다려준다면 이젠 잘 먹어줄 수 있을 거 같은데 치매5년차인 영희씨는 누구와 이야기하는지 그저 알 수 없는 말을 궁시렁대며 고개를 흔들어대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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