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하지 않더라도-
유한함 앞에 초연해진다는 것
'끝'에 대한 두려움이 나를 압도하던 때가 있었다.
끝에 대한 두려움은 곧 결실에 대한 집착이 되었고, 나는 늘 새로운 시작을 망설였다. 결실을 맺지 못한 채 도중에 허무하게 끝나버릴까 두려웠다. 간신히 시작한 후에도 마음을 오롯이 쏟아내길 꺼렸다. 마음을 쏟으면 뭐하나, 어차피 끝날 텐데. 그 '무언가'가 사라진 후 또는 끝난 후 혼자 남겨지는 것이 두려웠다.
과연 그 모든 것은 영원해야만 가치 있는가- 를 반문하게 된 건 비교적 최근이었다.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본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영화가 던진 질문은, '끝이 보이는 사랑은 아름답지 않은가?'.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는 것이었다.
영화는 연인 간의 사랑에 포커스를 맞추지만, 어디 그뿐이겠는가, 세상에 유한하면서도 아름다운 것들은 연인 간의 사랑 외에도 참 많다. 대부분의 마음들이 그렇고, 대부분의 기억들이 그렇고, 대부분의 도전이 그러하며, 인간 그 자체가 그렇다. 아름다움의 상징인 꽃조차 한철 아름답고 지는 것을. 어쩌면 모든 아름다움이 영원하길 바랐던 나의 마음은 욕심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유한함 앞에 초연해지는 연습을 하려 한다. 한 철 반짝이고 사그라드는 그 모든 것들을 그 '한 철'동안만큼이라도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연습을, 그리고 두려움 없이 그 시간에 뛰어드는 연습을 해 나가야지. 꽃이 질 것을 두려워하느라 꽃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그 순간만큼은 아름다움에 몰입할 수 있도록. 그리고 무엇보다 꽃이 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랑할 수 있도록.
세상의 무엇 하나 영원하지 않다지만, 영원함에 대한 집착에 눈이 멀어 그 모든 반짝임을 놓칠 수는 없다. 유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한 그 아름다움들을 만끽하며 살아야지. 끝났더라도, 또는 끝날지라도 그것대로 좋다. 그럼에도 아름다운 시간들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