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뚝뚝한 딸의 고백
며칠 전 한국 시각으로 새벽에 아빠한테서 뜬금없이 보이스톡 통화가 걸려왔다.
유학 생활 몇 년 동안 아빠가 먼저 전화를 하신 적이 손에 꼽혀 '무슨 일이지?' 하는 생각에 급하게 받으니,
"딸~ 그냥, 새벽에 깼는데 네 생각이 너무 나서..."
하는 뜻밖의 말이 들렸다.
그러고는 전날에 남동생과 월미도에서 데이트를 했는데,
우연찮게 발견해 들어간 재즈바가 꽤 좋아서 너랑도 같이 가고 싶었노라고 두런두런 말을 이어가시던 아빠.
그러다 조금 머뭇거리며 하신 말씀은, 취업이 어렵고 하니 박사 입시 또한 준비해 보아도 좋겠다고, 아빠랑 엄마는 건강하니까 앞으로도 네 학업이야 얼마든 서포트해 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생각지 못하게 길어진 취준 기간 동안 엄마와는 가끔 통화하면서 자의로, 타의로 상황 업데이트를 한 적이 있어도 아빠와 이런 얘기를 직접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동안 고민과 걱정을 이만저만하신 게 아니구나, 싶어서 죄송스럽기도 하고
그 와중에 날 안심시키려 "더 공부하고 싶으면 해라" 먼저 독려를 해 주시는 게 감사하기도 하고...
조금 더 어렸을 때 비슷한 말을 듣고는 버럭 짜증을 내기도 했다.
"박사 지원은 뭐 취준보다 쉽나? 알아서 할게요!" 아마 이랬을 거다.
그 기저에는 '날 못 미더워하시는구나' 하는 생각과, 앞으로 엄마아빠한테 몇 년이고 더 경제적인 짐을 지워드리기 싫다는 압박감, 그리고 평생 의사로서 한 길만 걸어온 부모님이 내 앞에 놓인 여러 개의 옵션과 거기에 따라 달라질 내 미래를 다 이해하실까 하는 의구심이 있던 것 같다.
그런데 몇 년 안 되는 나이를 먹고 보니, 여유가 생겼다.
특히 마지막 의구심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간단한 것이었다.
당연히 모르시지. 만약 의사가 아니라 회사생활을 이곳저곳에서 이어온 부모님이셨어도 지금, 2024년에 청년들이 각각 취업과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면서 마주하는 고민들은 절대로 100% 이해하실 수 없을 것이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부모님이 당신들의 청춘 때 겪으신 일들을 100% 이해할 수 없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부모님께서는 그것을 알고 계심에도 어떻게든 나를 돕고 싶다는 절박함에 가까운 마음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그저 50대, 60대의 사회구성원으로 사시기도 벅찬 삶 속에서 석사 졸업하고 6개월이 막 넘어가는 스물네 살 여자아이에게까지 계속 이입하시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면 짜증을 낼 수가 없다. 어차피 완전한 고뇌와 선택은 나의 몫이라고 선을 긋고 보면 부모님의 조언은 잔소리가 아니라 보너스 같은 것이란 깨달음이 든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냥 "먼저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너무 감사하지, 이미 알아보고 준비했어요. 근데 박사도 지원한다고 뽑히는 건 아냐~ 나 다 떨어질지도 몰라~" 장난식으로 받아치고 말았다.
그런데 그렇게 말하면서도, 짜증이 비운 자리를 다른 복잡한 감정이 채워 눈물이 났다.
'어떻게 이토록 나를 사랑할 수 있지?'
나는 알지, 지금 이게 불투명하다고 말하기엔 이른 시점이란 걸. 요즘 사람들 평균 취준 기간이 11개월이라는데, 6개월 한 거 가지고 취업은 어렵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단 걸. 박사도 정말 잘 생각해 보고 걸어야 하는 길이라는 걸.
근데 위에 적었듯이, 부모님은 나만큼 잘 아실 수가 없다. 그럼에도 해 보라신다. 자꾸 돈은 걱정하지 말란다.
모르면서, 어떻게 이만큼 응원할 수 있지?
이제는 하시는 말씀 하나하나보다, 그 안에 담긴 마음이 보인다.
그리고 부모님이 그렇게 걱정하지 말라는 '돈'을 벌기 위해 달려온 지난날이 상상이 돼서 가끔은 속상하기도 하다.
특히 아빠는 정말 취미생활도, 여행 가 보신 곳도 별로 없고, 어딜 가든 숙소 안에서 티비 보는 게 제일 편하다 말씀하시는 분이다. 아빠가 아는 세상이 좁다고 느낄 때에 그것이 내 세상을 넓히기 위해 아빠가 치른 희생이 아닐까 생각하면 내 마음도 물에 젖은 신문지처럼 먹먹해진다.
한 가지 사소한 예로 가족들과 함께 외식한 어느 날에,
일부러 덜 익힌 식감의 파스타를 '알 덴테' 파스타라 부른다고 설명한 적이 있다. 뼈에 붙은 스테이크 고기도 쓱싹쓱싹 썰어 부모님 앞에 놓는데 엄마는 "어떻게 그런 걸 다 알아~?" 하시고 아빠는 "내가 그래도 칼 다루는 의산데 어떻게 네가 나보다 고기를 잘 써냐" 하고 웃으셨다.
그때, 내 눈앞에 내가 아닌 이탈리안 셰프에게 '알 덴테' 파스타를 처음으로 소개받고 스테이크용 칼을 따로 잡는 20대의 엄마 아빠가 스쳤다. 그 외에도 내가 보낸 사진 속의 그리피스 천문대, 라 호야 비치, 베가스 서커스 같은 장소를 직접 도는 내 또래의 엄마 아빠... 그런 것을 상상하면 목에 뜨거운 것이 걸린다.
엄마 아빠가 나를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더 열심히 사시게 되는 것처럼,
나도 엄마 아빠를 생각하면 더 열심히 살고 싶어진다. 그냥 열심히가 아니라 잘 살아서, 언젠가 엄마 아빠가 나를 대신 보낸 넓은 세상에 발이라도 담그시게 함께 여행하고 싶단 꿈도 생겼다.
때론 그 욕심이 눈에 보이는 결과가 있기 전까진 말을 아끼려 드는 무뚝뚝한 모습으로 잘못 발현되기도 하지만, 이것 또한 앞으로 성장하면서 스스로 더 잘 다루게 되겠지 싶다.
나를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길환'과 '상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