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님하고는 일하기 힘들어요. 저는 커니 님이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나이 어린 선배 직원은 회사 메신저 대화창을 열며 말했다. 대화창을 보니 왜 내가 해야 하냐 너는 왜 안했냐 등의 대화가 오고 가며 소리 없는 싸움을 하고 있었다. 난 누구와 싸우는 일은 거의 없다. 회사에서는 더더욱 그렇고, 되도록이면 궂은일을 내가 하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사실 내일모레 50인 내가 20대와 시시비비 가리며 말다툼을 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고, 싸워야 한다면 내가 양보하고 만다.
45세 스타트업 신입으로 발을 담그고 6개월이 지났다. 6년에 겪을 일을 모두 겪은 거 같다. 윗사람은 2번이나 교체되었고, 컨펌받고 진행했던 일을 혼자 준비하고 실행하고 있다. 새로운 업무는 계속해서 과중되고 있고, 누구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요즘 나의 사수는 네이버다.
스타트업이라 전환이 빠르기에 나의 위치를 좀 더 확고하게 다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확고란 더 많은 일의 부담을 의미할 뿐이다. 즉, 내가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할 때가 점점 많아지고 있다. 어떨 땐 이 돈을 받고 이 일을 하는 게 맞나 싶다. 그런 생각이 들 때는 날 다시 다잡는다.
내일모레 50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게다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건 돈을 떠나 큰 행운이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는 가끔은 불안하다. 옆에서 대표님이 '어휴' 하면 나를 보고 한숨을 쉰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대표님이 커니 님을 믿으니깐 하신 건 보지도 않으신데요. 신뢰가 어마어마해요.'라는 말을 듣는 순간 기분이 좋기보다는 부담감이 몰려온다. 나이 어린 선배 직원이 나의 질문에 '아니에요.'라고 답하면 이것도 모르는구나 생각할까 봐 조마조마하다. 어떤 일이든 잘할 수 없지만 어떤 일이든 잘하고 싶기에 더 열심히 더 오랫동안 생각하고 일하고 있다.
나이 어린 선배 직원이 급여 인상을 얘기하는 게 어떠냐는 말에 나의 콘셉트는 '가성비'라 말하니 '푸훗'하고 웃는다. 그리고 지금 회사 사정상 나보다 더 나은 사람을 뽑기 힘들다고 말한다.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은 아니다.
그 일은 커니 님 아니면 안돼요.라는 말을 듣고 싶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은 없다. 이런 생각을 한 내가 참 이상적인가 싶다.
오버타임을 하면서도 내가 받는 급여가 적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회사에서 많은 걸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이렇다.
나는 외부로 나가는 이메일을 작성해서 대표님께 직접 컨펌 요청을 한다. 단순히 내용의 문제가 아니라 글쓰기 방법에 관한 부분이 크다. 외부로 나가는데 적합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지 그 정도를 묻는다. 대표님의 컨펌이 떨어지면 이 정도는 적당하구나라고 체감한다. 그리고 그 선을 지켜 일을 한다. 외부 사람들과 미팅을 하고 얘기를 하면서도 사람들을 보고 배운다. 저들은 저런 언어로 일을 하고, 저런 몸짓을 하는구나. 매번 배운다. 그중에는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지 생각한 부분들도 많다. 이러한 다양한 배움을 난 돈을 받아가며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내가 받는 돈이 결코 적다고 생각하지 않다가도 이 배움이란 경험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일과 배움을 분리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다만, 어디 가서 배울 수 없는 것들을 배우는 이 활동 자체가 너무 소중해서 감히 급여 인상을 얘기하기가 여전히 미안하다. 아직 난 많이 모자라기에 나의 콘셉트는 '가성비'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