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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디 May 19. 2020

딸기가 좋아!

5월, 가정의 달에 알게 된 엄마의 취향


 5월은 내게 많은 생각을 주는 달이다. 제작년에는 조장 역할만 골라서 맡았던 팀프로젝트들에 골골 앓았고, 작년에는 힘들었던 3년의 대학 생활을 위한 보상으로 미국 여행을 다녔으며, 올해는 생각지도 못한 코로나19라는 복병으로 집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있다. 이렇듯 매년 다르게 다가오는 5월이지만 왜인지 올해는 ‘가정의 달'이라는 5월의 별명이 좀더 깊이 와닿는 것 같다. 정신없는 학교생활에 몸을 내던질 필요도 없고, 타지에 떨어져 있는 것도 아니고, 본의아니게 종일 집에만 머무르며 일상의 대부분을 가족 구성원들과 보내고 있으니 그럴 수밖에.


 가족들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만큼 가족을 향한 애틋함은 사라지고, 익숙함만 남게 되니까. 일주일에 한 번씩 몰아 듣던 잔소리를 하루에 몇 번씩 나눠 듣는 것도 어찌나 괴로운지 모른다. 네가 기숙사에서 집에 들어온 뒤로 식비는 두 배, 온수비는 무려 세 배가 올랐다느니 하는 말들을 계속 듣고 있으면 ‘역시 가족은 일주일에 한 번씩만 봐야 딱 좋아…’ 하는 철없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드는 것이다. 그래서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 기숙사에 머물렀던 시절이 그립다가도, 또 밤마다 딸기 먹자~” 라며 나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그리고 온가족이 거실에 둘러앉아 탐스러운 딸기를 집어먹다 보면 ‘그래도 집이 최고네' 싶다.


 익숙함이라는 얄궂은 벽에 가려져 소중함을 잘 느끼지 못하다가도, 떨어져 봐야 비로소 그 존재가 와닿는 것들이 있다. 조금 유치해 보일 수 있지만 내게는 딸기가 그랬다. 고등학교 때부터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 늘 기숙사에 살았던 내게 과일이란 일종의 사치였다. 물은 없으면 죽고, 밥은 못 먹으면 배고프지만 과일은 사실 이도저도 아니다. 그렇다고 큰맘 먹고 사먹자니 몇 번 집어먹다 보면 금세 동이 나고 말아 입맛만 쩝쩝 다시게 된다. 결국 그렇게 우선순위에서 점점 밀려나 결국에는 안 사먹게 되는 게 과일이었다. 그렇지만 개중에서도 딸기는 겨울철이 되면 꼭 일주일에 몇 번씩 떠오르곤 했다. 사먹을까, 사먹을까 싶다가도 결국 생활비를 보며 포기하기를 반복했다.


 그래서였나? 이번 주말 한 번 집에 내려오지 않겠냐는 엄마의 카톡에 자동 반사기마냥 뜬금없이 “딸기 먹고 싶어" 라고 보냈다. 그냥 머릿속에 부유하던 생각을 꺼낸 것뿐이었는데, 주말에 집에 내려가 보니 냉장고에 딸기가 한가득 쌓여 있었다. 그때 그 겨울철 원없이 집어먹던 딸기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내가 너무 맛있게 먹자 엄마는 “기숙사에서 과일 좀 챙겨먹고 그래" 라고 나무라셨다. “과일이 얼마나 비싼데“ 내가 톡 쏘듯 답하자마자 “술 먹는 것 좀 줄이고 먹으면 되지, 맨날 술 먹는다고 펑펑 쓰니까 그렇지" 라며 또다시 잔소리가 박혔지만 딸기가 달콤해서 기분은 좋았다.


 그런데 본의아니게 집에 쭉 머무르게 되면서, 보이지 않던 것들이 점점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내가 “딸기 먹고 싶다"라고 던졌던 말을 겨울이 지나 봄이 되어서도 계속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매일매일 밤마다 엄마는 잘 씻은 딸기들을 거실에 내어놓고 “딸기 먹자~” 라고 한결같은 톤으로 나를 부르셨다. 나는 딸기를 좋아하고, 엄마는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딸기를 좋아하게 됐다. 딸기만이 아니었다. “나는 이 라면이 맛있더라" 라고 툭 던진 말에 그 종류의 라면을 한 박스씩 사오셨고, “이거 어디서 샀어?” 라고 묻기만 해도 또다시 그것들을 사 오셨다. 그때 깨달았다. 딸기는 엄마의 사랑이었고, 엄마의 취향은 나였다는 것을.


 코로나19 때문에 모두가 힘든 나날들을 보내고 있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집이라는 한 공간에 옹기종기 모여 지내면서, 개인의 삶을 서로서로 양보해야 하다 보니 충돌할 때도 싸울 때도 많다. 친구들과 밤에 통화하는 것조차도 눈치 봐야 한다는 사실이 답답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매일 밤 거실 상 위에 마치 우리 가족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는 붉은 딸기들을 보면 답답함이 씻겨내려가는 기분이 든다. 이제 여름이 되면 딸기를 먹기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엄마의 사랑은 딸기에서 또다른 무언가로 옮겨갈 것이다. 이를 깨달았다는 것만으로도, 올해 5월은 그간의 모든 5월들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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