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의 매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당신에게 추천하는 배구 만화
이 글은 하이큐에 대한 스포를 다수 포함하고 있습니다.
최근 퇴사를 하고 며칠 쉬어볼 요량으로 본가에 내려갔다. 본가가 부산이라 그동안 가고싶었던 바다에도 매일 가고 미뤄둔 일들도 하나씩 해보려고 했건만. 마침 올림픽 시즌이 시작되어 하루종일 올림픽 경기를 챙겨보는 것만으로 충분히 바빴다.
고3 수험생인 동생도 올림픽에, 특히나 배구에 빠져서 시합을 보는 내내 '우리 언니들'이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너네 언니 여기있다'고 했더니, '언니도 배구를 했으면 내가 이렇게 응원해줬을텐데......' 라는 말을 남겼다.
배구 경기가 쉬는 날 동생이 식빵언니 유튜브를 틀었다. 영상이 몇 개 자동재생되는 동안 김연경, 양효진, 김수지 선수가 함께 하이큐를 보는 영상(링크)을 보게 되었다.
내 동생의 '배구 언니들'은 일본 만화 특유의 비장함 넘치는 대사에 몸서리치고, 과장된 플레이에 '이게 말이 돼?' 하고 어이없어 했지만 배구 경기를 그려내는 디테일함과 선수들의 생각이 현실성 있다며 '배구를 잘 아는 사람이 그린것 같다'는 평을 남겼다.
그러다 오늘치 올림픽 경기가 다 끝나고 심심했던 어느날 밤, 그 때 그거 한 번 볼까? 하고 하이큐를 시작했다.
일본 애니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하이큐라는 이름은 여러번 들어봤다. 배구 만화란 것도 알고는 있었던 것 같은데 당연히 전혀 관심 없었다. 하지만 배구의 맛을 알고나서 보니... 이거 너무 재밌는걸...? 1화를 보자마자 순식간에 빠져들었다. 일본 애니 문법에 익숙한 나와 동생들은 물론이고 60대에 접어든 아빠마저 다음날 출근을 앞두고 새벽 3시까지 봤다...
그렇게 5일만에 시즌 1-4까지 다 봤다. 완결이 아직 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 반, 아쉬움 반으로 어쩔줄 모르다 이 글을 쓰고 있다. 배구의 매력을 알게 된 사람들이라면 분명 하이큐의 매력에도 빠질 것이라고 생각하며.
하이큐의 첫번째 매력. 배구
무엇보다 배구를 디테일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 하이큐의 가장 큰 매력이다. 일본만화 특유의 미친 섬세함으로 룰과 플레이 방식 뿐 아니라 선수들의 자세나 마인드까지도 상세하게 묘사한다.
처음에는 '올림픽 배구 너무 재밌는데 더 보고 싶다.' 하면서 하이큐를 봤는데 플레이 하나하나를 디테일하게 다루고 있어서 오히려 실제 경기보다도 재미있었다. TV에서 해주는 배구 해설이나 배구를 몇번 해본 동생이 해주는 얘기가 배경지식의 전부였는데 하이큐를 보면서 디테일한 룰과 '그래서 이런 플레이를 하는 거군' 하는 전략적인 부분까지 이해하게 되었다.
하이큐의 두번째 매력. 강한 상대를 하나씩 도장깨기해가는 맛
이건 픽션으로서의 매력인데, 강한 상대를 만나서 하나씩 도장깨기 해가는 게 딱 원피스같은 느낌이다. '나는 에이스가 될거야!' 를 외치는 주인공 히나타도 그렇고. 팀을 이루어서 싸운다는 점도 그렇고, 무엇보다 싸우는 과정에서 인물들이 성장하면서 이길 수 없을 것 같던 상대를 꺾었을 때의 그 쾌감!
"이겼다"는 단순하고 명확한 그 기쁨을 성인이 되고 나면 느끼기 어려워진다. 나는 그래서 다들 게임을 많이 하는게 아닐까 생각하는데. 하이큐에서 승리에, 점수 하나에 리시브 하나에 기뻐하는 걸 보고 있으면 나까지도 힘이 솟는다.
하이큐의 세번째 매력. 고등학교 시절
프로 배구팀이 아니라 고등학교 배구팀 이야기라는 것도 하이큐의 크나큰 매력이다. 영원히 계속될 수 있는 팀이 아니라, 이 팀으로 뛸 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너무나 이 시간이 소중하고 아깝고 아련하게 느껴진다. 만화 전체에 등장하는 모두가 이 사실을 너무 잘 알고있기 때문에 모두가 한 게임 한 게임 소중하고 절박하다.
언제나 나는 고등학교 이야기에 끌린다. 학교가는게 너무 즐거워서 일요일 밤이면 두근거려 잠못드는 고등학교 시절을 보낸 나는 아직도 학교물 특유의 분위기에는 대책없이 빠져드는 삼십대가 되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시간이 너무 소중하고 행복해서 그 시간을 하나도 빠짐없이 즐기기로 다짐했다.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쳐서 바보같이 나중에 그리워하면서 슬퍼하지 말자고. 그렇게 매일을 곱씹고 미리 그리워하면서 살았지만 그래도 그 공기, 그 분위기를 만날 때면 이렇게 맥을 못춘다.
하이큐의 네번째 매력. 마음을 울리는 각 인물의 스토리
다양한 인물과 다양한 팀이 등장한다. 각 팀이 플레이하는 방식도, 각 선수가 배구를 대하는 태도도 각자 다르다. 각 선수들의 개인기를 살리는 팀, 팀으로서 안정감을 중요시하는 팀, 이기기 위해서는 뭐라도 하는 팀... 그냥 타고나서 잘하는 놈, 배구가 좋아서 미쳐서 하는 놈, 그럭저럭 잘하지만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 놈... 그리고 어떤게 옳다 그르다 얘기하지 않는다. 각자의 입장이 있고, 각자의 이유가 있다.
하이큐의 등장인물들은 저마다 서사가 있다. 지나가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던 애들도 하나씩 자기 이야기를 가지고 등장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들이 결코 가볍지 않다는 게 하이큐의 정말 큰 매력이다. 한번 쯤 해봤을 생각들. 꼭 고등학생 때가 아니라도, 지금도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을 자리잡은 고민들을 '너만 그런 거 아니야' 하고 위로해준다.
하이큐에서 주인공 히나타는 누구보다 운동신경이 뛰어나고 점프력이 좋고 빠른 스피드로 사람들을 놀라게 하지만 작은 키 때문에 자주 자괴감에 휩싸인다. 오이카와는 가장 뛰어난 세터로 주목받고있지만 자기에게 없는 재능을 가진 후배를 보며 이길 수 없다고 좌절한다. 하지만 좀 더 보고 있자면 그들은 문제를 해결할 자기만의 방법을 찾는다. 어쩔 수 없지 하고 주저앉았다면 그대로 끝났겠지만. 결국은 찾아내고 만다.
남들이 보기엔 너무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누구보다 잘 해나가는 사람들조차 두렵고 불안하고 스스로를 끝없이 의심한다. 내가 가지지 못한 부분만을 보며 쉽게 자괴감에 빠진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런 감정을 덜 느꼈으면, 느끼더라도 좀 더 빨리 털고 일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하이큐가 궁금해졌다면, 넷플릭스와 왓챠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넷플릭스에는 시즌 1~3까지, 왓챠에서 전 시즌(1~ 4)을 볼 수 있습니다.
*위 글에서 하이큐의 여성 대상화나 여성혐오에 대해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시청에 참고 바랍니다.